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5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집트 섬유 산업에 대해 알지 못했다. 우리 대한민국의 섬유 제품이 세계 최고라 믿었다.
“면 셔츠를 여럿 챙겨가야겠지?”
“엄마, 이집트 면이 얼마나 좋은데요. 거기 가서 사요.”
딸이 두 해 전에 이집트에서 사 입고 온 티셔츠가 좋아 보이기는 했다. 진정 몰랐었네.
박물관에서 마주한 미라의 천은 아이보리색 리넨이었다. 까맣게 변한 미라의 몸을 감싼 리넨은 나일강 유역에서 자란 아마(亞麻) 식물을 정성스레 가공해 만든 것이라 한다. 가볍고 시원하며 부드러운 질감의 이 천은 기원전 4천 년경 이미 정교한 직조 기술로 완성되었다.
이집트의 섬유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로, 선사시대인 기원전 5천 년 무렵부터 그 역사를 시작한다.
19세기 무함마드 알리(Muhammad Ali) 시대에 이르러 면화 재배는 국가 산업으로 성장했다. 이로써 이집트는 고품질 면직물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였고, 오늘날에 이르러서 ‘이집션 코튼’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면화로 인정받게 되었다. 방직공장·수출산업·전통 수공예가 공존하는 섬유 산업은 이집트 경제의 핵심 축을 이룬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동네 코너에 예쁘게 앉은 코튼가게도 달리 보이고, 이곳에 와서 구입한 부드러운 수건도 새삼 좋아 보인다.
문명 박물관 섬유관에 들어섰다. 2층으로 이어지는 전시관에는 고대 이집트의 섬유 역사부터 현대 의류에 이르기까지의 연대기 순으로 펼쳐져 있었다. 입구에는 고대 여성들이 물레를 돌려 실을 뽑고 직조하는 모습 그림이 전시되었다. 이슬람 시기의 장면도 볼 수 있었다.
바로 옆 유리관 속에는 삼베처럼 보이는 긴팔 원피스가 눈길을 끌었다. 특히 상의 소매 부분에 정교하게 잡힌 주름은 감탄을 자아냈다. 고대 이집트 의류에 이미 주름 가공 기술이 적용되어 있었던 것이다. 상의 전체에 잔잔히 들어간 주름은 마치 정성스레 누빈 옷처럼 품위 있는 인상을 주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의복, 벨트, 머리 장식에 이르기까지 섬세한 장식을 중시했다. 흰색 리넨에 주름을 잡아 전체를 덮기도 했고, 혹은 소매 등 일부에만 포인트를 주는 방식도 즐겨 사용했다. 여인들은 리넨을 빨고, 짜고, 무거운 도구로 눌러가며 빛의 무늬를 입히듯 정성스럽게 주름을 만들었다.
신왕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실의 굵기를 달리해 세탁 후 자연스럽게 물결치는 주름을 유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마치 나일강의 물결이 천 위에 번져드는 듯한 기술이었다.
직물 염색 재료 전시 코너에서는 다양한 천연염료의 원재료가 소개되어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녹색을 얻기 위해 말린 곤충 가루, 헤나, 갈잎, 우드 식물, 샤프란 꽃밥, 강황 뿌리 등 풍부한 자연 자원을 활용했다. 그들은 색의 강도와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 매염제 사용법을 일찍이 익혔다고 한다. 소금이 섞인 금속 용액에 천을 넣고 오랜 시간 끓였는데, 가장 널리 사용된 매염제는 명반과 레몬즙이었단다.
유리관 속 한편에는 투탕카멘 무덤에서 출토된 허리천(로인 클로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로 77cm, 세로 95cm의 삼각형 리넨 천은 허리에 묶어 착용하는 속옷 형태로, 실용성과 편안함을 갖춘 고대 섬유의 일면을 보여준다. 놀랍게도 이 무덤에서 같은 형식의 허리 천이 100점 이상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는 섬유가 고대 이집트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산이었는지를 시사한다.
전시관 한가운데에는 현대 이집트 전통 의상을 걸친 마네킹이 자리했다. 의류가게 쇼윈도처럼 다양한 의상을 보여주었다. 외투 형태의 ‘질밥’, 망토형 드레스인 ‘아바야’, 머리를 덮는 스카프 ‘타르하’, 그리고 명칭을 알 수는 없었지만 고풍스러운 의상들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이집트 전통의상을 직접 마주한 이후부터, 거리에서 보게 되는 옷과 스카프에 대한 나의 인식이 달라졌다. 이제는 단순한 차림이 아닌, 오랜 역사와 자긍심을 담은 문화로 다가온다. 아름다운 한복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우리 민족처럼, 이집트인들도 자신들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착용하겠지. 문화를 깊이 있게 알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그 가치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다.
박물관을 찾는 즐거움은 바로 이런 곳에 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 시대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손끝에서 직조된 문명도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