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6
한국을 만나면 그냥 반갑다.
이집트 문명박물관에 들렀다가, 깜짝 이벤트처럼 대한민국을 만났다. 한국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포스터, 고운 한복과 전통 악기들. 전시관으로 향하는 복도 양옆에는 한국을 알리는 의상과 악기들이 반듯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침 그날은 박물관에서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특별 주간. 단 6일간 열리는 행사였다.
입구 왼편에는 한복을 입은 남녀 마네킹이 열 개쯤 줄지어 서 있었다. 저고리와 치마를 곱게 입은 여성 마네킹, 갓과 도포를 갖춰 입은 남성 마네킹.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한복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색동저고리, 족두리, 고무신까지 갖춘 장신구들은 디테일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예쁜 것들로 잘 꾸며놓은 전시여서 다행이다. 한국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기꺼이 멈춰 서서 살펴보고, 직접 입어보기도 하며 추억을 만들 수 있을 듯했다.
오른편에는 전통 악기들이 놓여 있었다. 징, 북, 장구, 꽹과리, 심지어 한국인도 잘 모를 생황까지도. 중간중간에는 붉고 푸른 청사초롱. 그 사이를 지나며 레드 카펫을 밟는 귀빈의 셀렘과 즐거움을 누린다. 행사는 주이집트 한국 문화원이 마련한 자리였다.
한국에 있을 때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익숙한 물건들. 낯선 이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반가운 존재들과 마주하니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친근함에 이끌려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들어갈 때 한 번 멈췄던 발걸음은, 돌아 나올 때에도 다시 한번 멈춰야 했다.
이집트에 도착한 셋째 날, 처음으로 들른 중국 식료품 가게.
길게 이어진 가게 안쪽에서 젊은 두 여성의 대화가 들려왔다.
“이거 괜찮더라.”
“그래? 나도 하나 사야겠네.”
매장에 익숙한 듯 여기저기서 자연스럽게 물건을 고르는 모습. 같은 국적의 그녀들과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괜히 마음이 놓였다. 그네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스쳐 지나간 인연만으로도 따뜻해졌다. 고개를 들어 오래된 나무 선반을 살피다가, 커다란 봉지에 쓰인 ‘당면’이라는 한글을 발견했다. 괜히 심장이 ‘콩닥’.
까르푸 도심에서 우버 앱으로 택시를 호출했을 때 배차된 차량이 ‘현대 아반떼’라는 알림.
단지 국산차라는 이유만으로도 얼굴이 보고 싶었다. 기다리는 3분 동안, 몰려오는 차들 사이에서 회색 아반떼를 친구 기다리듯 둘러봤다. 낡은 문을 열고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 앉았지만, 운전기사에게 친절히 대답할 수 있었다.
이 낯선 땅에서 보낸 보름. 아직은 적응 중이기에 내 나라와 닮은 모든 것이 반갑다. 이런 마음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몰라도, 곳곳에서 한국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가장 반가웠던 건, 한인 교회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이었다.
무려 30년을 이곳에서 버텨온 분들을 만났다. 그들은 여전히 김치를 담그고 식혜를 만든다. 이곳에서 자란 배추와 무 그리고 루콜라를 가지고도 김치를 만들어내는 그녀들. 그네들의 정성스러운 음식과 따뜻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 받으며 한국의 ‘정(情)’을 충전하고 있다.
내 나라는, 어디서든 그립고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