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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움의 무게, 팁의 온도

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7

by Jina가다

팁을 억지로 꺼내야 하는 내가 이상한 걸까. 팁을 주지 않기 위해 도움을 거절하게 되는 어색한 순간이 아직 어렵다. 황토색 유니폼 건물 관리인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엘리베이터용 열쇠 버튼을 눌러주고 짐을 들어주면서 팁을 요구한 뒤로부터는 고개만 살짝 움직여 가볍게 인사한다. 과한 친절이 때로는 부담스럽다.

식기세척기가 작동하지 않자, 집주인을 통해 건물 상주 기술자를 불렀다. 영어는 불통. 그는 빠른 아랍어로 뭔가를 설명했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손짓발짓도 한계가 있어 결국 딸아이가 챗GPT 통역기를 켰다. 기술자의 말을 입력하고, 번역된 한글 내용을 읽고.
'하수관이 막혀 배수가 되지 않습니다'

딸은 손전등을 켜서 싱크대 아래를 비추며 기술자의 작업을 도왔다.


잠시 후, 집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팁으로 100파운드(약 3천 원)를 주시면 나중에 정산해 드릴게요.'
지갑을 뒤져보니 100파운드짜리 지폐가 없다. 대신 200파운드를 건넸다.

“팁은 돈을 접어 주먹 안에 쥔 채 자연스럽게 건네는 게 좋아요.”
딸이 조용히 말했다.

“200파운드 준 거, 잘한 걸까? 계속 이만큼을 기대하게 되는 건 아니야?”
“글쎄요.”

둘이 마주 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시험 삼아 식기세척기를 작동시켜 보니, 시원하게 물살 흩어지는 소리. 빈 통이 잘 돌아간다.


이집트에 도착한 이후, 돈을 다루는 일이 유난히 신경 쓰인다. 마트나 상가처럼 가격이 정해져 있거나, 카드 결제가 가능한 택시는 괜찮다. 그 외에는 대부분 현금을 요구한다. 아직 돈 계산이 서툰 이민 적응자.

동네 작은 까르푸 매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계산대 옆에 따로 서 있던 직원이 내 물건을 봉지에 담더니, 어느새 그것들을 들고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에스컬레이터를 지나 집까지 배달해 주려는 눈치다.

“라, 라!(노노!)”
손을 흔들어 물건을 되찾았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내가 들 수 있을 정도의 무게였고, 어느 정도 팁이 적당한 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어제 뉴 카이로 대형 마트에서 겪은 일이 있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계산대 옆에 서 있던 직원이 무거운 생활용품으로 가득 찬 내 카트를 밀고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어디로 가는지 묻던 직원은 건물 밖 택시 정류장까지 앞장서서 걸었다.

택시는 5분 후 도착 예정.

“이젠 괜찮아요.”

그는 끝까지 기다렸다가 짐을 실어주려 했다.

“기다려서 짐까지 실어주면, 팁을 두 배로 줘야 할 것 같아요.”

딸이 말했다.

나는 50파운드(약 1,500원)를 팁으로 건넸다. 커피 한 잔 값 정도. 그의 표정이 별로다.


이사 초기라 자주 장을 봐야 하는 시기. 팁이 뭐 그리 큰일이라고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지. 그래도 또 익숙해져야지.

단순한 친절일 뿐인데, 호의가 아닌 대가를 기대하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질 때면 어쩐지 어색하다.
팁은 고마움의 표현이라지만, 오히려 팁 없는 한국이 아직은 편하다.


나보다 하루 늦게 입국한 남편은 살림을 담은 대형 캐리어 여섯 개를 들고 집 앞에 도착했다. 개당 23킬로 넘는 그 짐들. 회사에서 보내준 이집트 현지 운전기사는 계단을 두 번이나 오르내리며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집 앞까지 옮겨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남편이 200파운드 지폐를 내밀었지만 그는 몇 번이나 손사래를 치며 활짝 웃고 돌아섰다. 이마에 땀이 흥건했던 젊은이. 현관에서 캐리어를 옮기며 무게를 체험하는 내내 남편과 나는 운전기사의 고마운 봉사를 얘기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베풀 수 있는 도움이라면, 그건 결국 가족 간의 사랑 아닐까. 고마움의 무게를 저울에 올리지 않아도 되는 관계. 그 마음이 오래 유지되면 좋겠다. 부부 사이에도,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계산이 들어가면 복잡해진다.

이제는 부모인 우리에게 도움을 건넬 만큼 자란 자녀들. 가끔은 그들의 ‘팁’을 기대하게 되는 나 자신에게 자주 되뇌는 말이 있다.

‘사랑만큼은, 대가 없이 베풀자.’
‘감사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자.’


딸에게 팁을 요구하지 않는 나는, 매일 아침 엄마표 도시락을 싼다. 그저 빈 도시락과 감사히 잘 먹었다는 말 한 마디면 보상이 되는 수고. 이집트에서 출근하는 딸아이에게 오늘은 김밥을 싸주러 부엌으로 향한다.

‘딸아, 오늘도 맛있게 먹고 안전하게 돌아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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