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8
이집트 시간으로 오전 6시 30분, 거실로 나와 일출을 찍는다. 창밖 아파트 옥상 위로 해님이 등장하는 찰나. 앱으로 시간과 함께 저장한다
오전 7시 30분, 딸아이의 도시락을 사진으로 남긴다. 나중 어떤 도시락을 싸야 할지 고민할 때, 참고용으로 좋겠다.
오전 9시, 카키색 네모 가방, 모자와 선글라스를 몸에 붙이고 건물 밖으로 출근한다. 잠시 멈춰서 걷는 길을 촬영하고 ‘아무튼, 산책’이라 표기한다. 에덴 카페에 들어서니, 이른 시간이라 한가해 그런지 낯익은 직원이 반갑게 인사.
오후 4시, 플루트를 꺼내 새 악보를 연습하고, 진행한 페이지는 사진으로 남긴다. 오늘은 다섯 곡.
밤 11시, 전등을 끄고 누워 희미한 빛이 스며드는 창문을 향해 핸드폰 렌즈를 들이댄다. ‘11:01’이란 시간이 새겨진 화면 옆에, ‘굿나잇’이라고 한글.
이렇게 하루에 네댓 장의 사진을 묶어, 한국에 있는 지인에게 매일 저녁 톡으로 전송한다.
카이로에 도착한 지 꼭 7일. 본국보다 여섯 시간이 느린 이곳 시차에 적응하느라 첫날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밤을 새웠다. 이튿날부터는 한국에서 지키던 작은 루틴을 유지해 보려 애썼다. 고되지만, 오히려 유익이 많았다.
그 시작은 지인의 요청이었다. 나보다 다섯 살 어린 그녀는 울산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경주로 시집가며 꽤 고생을 한 듯하다. 허약하고 우울한 기색이 엿보였지만, 지적이고 단단한 면모가 있어 마음이 끌렸다. 교회에서 만나 오래 알고 지낸 그녀는, 내가 해외로 이사하기 며칠 전 연락을 주었다. 경주의 전통 가옥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던 자리에서, 조심스러운 부탁을 건넸다.
“언니, 지난번에 혼자 매일 플루트 연습한다고 했잖아요. 저도 무언가를 매일 지속하는 일을 함께 해보고 싶었어요.”
“좋지. 나랑 같이 해. 플루트 연습 인증도 같이 하고. 뭐든 매일 지속하고 싶은 게 있으면 시작해 봐.”
6월 중순, 그렇게 우리의 ‘작은 모임’이 시작됐다. 그녀는 매일 아침,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성실하게 인증 사진을 올렸다. 7월 중순이 되자, 남편과 함께 매일 산책로를 걷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왔다. 그녀가 보낸 사진과 문장에서 묻어나는 건강하고 즐거운 일상.
그녀는 내게 고마움을 전했지만, 실은 내가 그녀 덕분에 일상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덕분에 일곱 시간 넘게 푹 자고, 매일 집 밖으로 나가 걷고, 악기를 꺼내 무뎌진 손가락을 훈련시킨다. 처음엔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존재가 고맙게 느껴진다.
사람 속에 살아간다는 것은 큰 복이다. 이곳에서는 매일 반복되는 짧은 정전과 단수를 겪는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 센다. 사람도 그렇다.
매일 함께 성경을 읽고 단체방에 나누는 소중한 동생들, 함께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작가 모임, 그리고 나 혼자만 일상을 열심히 떠들지만 편안한 우리 가족 단체방. 이 모든 곳에 내가 무언가를 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늘 내가 지지받고 있었다.
사람은 관계 안에서 서로를 붙들며 살아가는 존재다. 부부, 가족, 친구, 동료, 사회, 국가, 그리고 지구마을까지도.
좋은 인연의 끈을 꼭 붙들려한다.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어제는 출국 전, 두툼한 책을 선물로 안겨주신 초월재에 사는 선생님 부부께 책 사진과 안부를 전했다. 한국에서 함께한 교회 단체방에도 이곳에서의 적응 소식을 나누었다.
좋은 사람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작은 수고라도 지속해야 함을. 그들의 응원 덕분에 하루를 거뜬히 버텼다. 사람이 귀하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