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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식탁에 오른 울산 바다

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10

by Jina가다

밥솥 미역국

10분 알람이 울린다. 뚜껑을 열어보니 아직이다. 5분 더 취사 버튼을 의지하니 짠내 섞인 해초향이 부엌 가득 퍼진다.

오늘은 밥솥에 미역국을 끓였다. 인덕션용 냄비를 사려했지만,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두 번이나 실패. 아직 국 하나 제대로 끓일 도구가 없다. 그래도 오늘 아침만큼은 미역국을 먹겠다고 마음먹었다. 여행용 미니 전기밥솥을 꺼냈다. 자취하는 아들이 밥솥에 수육을 삶아 먹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시도한 용기.


딸아이가 동료에게 받아온 사골 고형분말 한 덩이를 솥에 먼저 넣었다. 생수를 솥 삼분의 이만큼 붓고, 미리 불려둔 울진 돌미역을 가위로 잘라 넣었다. 물에 담가둔 마른 황태 다섯 줄기도 가위질해 보탰다. 후추, 소금, 참기름, 참치 액젓을 살짝 더하고 뚜껑을 덮었다. 잠시 후, 뽀얗게 우러난 사골 국물 위로 떠오르는 탱글탱글한 미역.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자 군침이 절로 삼켜졌다.

쌀밥 한술을 오목한 그릇에 담고, 그 위에 미역국 한 국자 떠올렸다. 싱크대 옆에 서서 호호 불어 삼키는 국밥. 입천장은 뜨거웠지만 웃음이 났다. 이렇게 빨리 한국 음식이 그리워질 줄이야.


“마른 나물이랑 양념 좀 챙겨줄까?”
출국 전, 주변 언니들이 물었을 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 나라 음식에 적응해야죠.”


그런데 떠나는 날, 농사짓는 지인이 지퍼 달린 두툼한 비닐 가방을 건넸다. 꼭 필요한 것만 담았다며. 커다란 이민 가방에 그대로 넣어 온 울산 언니표 한국 식재료는 푸짐했다. 돌미역, 미역귀, 황태포, 멸치, 고춧가루. 막상 이곳에 와 보니 그렇게 귀할 수가 없다. 냉동실과 부엌 하부장에 따로 공간을 마련해 차곡차곡 저장해 두었다.

오늘 밥솥 미역국 사진은 꼭 그 언니에게 보낼 참이다.

식구들을 깨워 따뜻한 미역국에 밥을 말아 주고 싶다. 밥솥에 국을 끓였다 하면 다들 놀라지 않을까.


떠나오니 건네받은 선물들이 하나같이 귀하다. 울산 언니의 재료를 꺼낼 때마다 그녀의 웃는 얼굴이 동동. 지인들의 따뜻한 숨결도 그립고, 한국의 음식도 그리워진다. 이곳 가족들의 외로운 마음은 내 손으로 채워야지. 뜨거운 국물 한 그릇이 내일을 견디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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