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정원

2. 겨울

by Jina가다

이집트에도 추운 겨울이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몰랐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라디에이터나 온수 매트가 필요한 계절이 이곳에도 온다는 것을. 이집트로 이주하며 늦가을 정도 의류와 생필품만 챙겨 왔다. 뜨끈한 온돌이 그립고, 한국에 두고 온 롱 코트와 오리털외투가 아른거린다.


12월부터 2월까지, 북아프리카의 이곳은 분명한 겨울에 해당한다. 아침이면 집 안 가득한 냉기. 초겨울 일교차로 이집트 독감에 걸리고 말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휘감고서야 물러난다는 이곳의 감기. 두통으로 시작된 고통은 한 달이 지나서야 온전히 멈추었다.


두통과 장염, 그리고 독감까지 겹쳐 칩거 생활 7일째. 어떻게 알았는지 근처에 사는 한국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진심으로 염려하고 격려하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오랫동안 잊고 지낸 듯하다. 인연은 이런 관심으로부터 더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일곱 살 어린 친구가 밑반찬을 만들어 집 앞으로 가져오겠다고 했다. 반찬 몇 가지쯤일 거라 생각했는데. 차에서 내린 그녀의 손에는 랩으로 꽁꽁 감싼 냄비와 박스 크기의 보냉 가방이 들려 있었다.

“아이가 기다려서 가볼게요. 맛있게 드시고, 빨리 나으세요.”


소공녀 세라의 저녁 테이블처럼 유리 반찬통은 하나둘 끝없이 식탁 위로 올라왔다. 둥근 냄비 속에는 뽀얀 닭곰탕 국물 위에 종이결처럼 가늘게 썬 대파 고명이 동동 떠 있었다. 화장기 없던 그녀의 얼굴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손이 많이 가는 한국 반찬을 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을지.

“엄청 맛있어요. 엄마, 이분은 엄마를 많이 좋아하네.”

“나도 그 이모 엄청 좋아해.”


요리 팁뿐 아니라 사랑을 전하는 방식까지 가르쳐 준 사람. 내 마음이 얼음처럼 차가워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천 명이 넘는 한인회 단체방 안에서는 매일같이 크고 작은 도움의 손길이 오간다. 비자에 관해 묻는 일, 집을 구한다는 소식, 중고 물품을 나눈다는 글. 한국에 귀국하는 이에게 아이 안경테 수리를 부탁하는 문장도 보았다. 먼저 이집트에 잘 정착한 이들은 기꺼이 시간을 내어 긴 답글을 달아주었다. 소식을 눈으로만 훑고 있는 나 역시, 언젠가는 다급히 도움을 청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 정원은 내 거야. 나 말고는 아무도 여기서 놀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일이야.”

대문 손잡이를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있던 내 모습을 생각하며 오스카 와일드의 『거인의 정원』 속

황량한 정원을 마음에 그려 보았다.

그녀의 위대한 도시락은 내가 한인 사회를 향해 조심스레 문을 열게 만든 계기였다. 말과 행동을 조심하느라 사람들이 만나자는 약속에도 쉽게 답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공식적인 모임에만 한 발을 살짝 담그고 서 있었다.


“담을 허물어야겠어. 내 정원은 영원히 아이들의 놀이터가 될 거야.”

천사였던 아이를 정원에 들였던 거인이 마침내 영원의 정원으로 초대받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다음 주, 입양 보낸 강아지를 확인하러 가자며 동행을 부탁받았다. 사실은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바쁜 일정을 핑계 삼아 거절하려 했다. 아무래도 외로운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녀의 정원에도, 나의 정원에도 이제는 문을 열어야지. 서로의 겨울 끝에서 봄을 데려오는 천사가 되어주기 위해.



겨울이 중얼거리는 눈송이들을 들으려

거리의 공기는 차가워집니다.

《신발의 눈을 꼭 털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