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입김
‘어, 오늘은 새로운 옷이네.’
집 밖으로 나서는 길, 혼자서 조끼를 차려입은 그 녀석을 보았다. 왼쪽 다리에 붕대를 감은 녀석은 여럿이 서 있어도 단번에 눈에 띈다. 외국인이 많이 사는 이집트 마디에는 유난히 개와 고양이가 많다. 특히 근육질에 빼어난 외모의 이집트 개들이 무리를 이루는 우리 동네. 이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외출할 때마다 겁에 질려 온몸을 떨었다. 건물 안팎에 앉아 있던 경비 직원 바웹이 도와주고, 길 가던 이들이 안심시켜 주었다. 이제는 모른 척, 당당한 걸음으로 걷는다. 그래야 개들도 나를 자연스럽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그나저나 붕대 감은 녀석은 어디서 저렇게 다리를 다쳤을까. 누가 저렇게 정성스럽게 흰 붕대를 감아주었는지, 잘 오린 예쁜 옷을 입힌 이는 누구인지도 궁금해진다. 3교대로 근무하는 주변 바웹 아저씨들의 얼굴을 하나씩 살펴본다.
오전 10시 영어수업을 위해 15분쯤 도로변을 걸을 때면 진풍경이 펼쳐진다. 가끔은 지각할 지경인데도 고양이 식사 사진을 한 장씩 남긴다. 커피와 견과류를 파는 고급 식품 가게 넓은 마당에서 열리는 열 마리 고양이들의 단체 급식.
“매일 아침이면 볼 수 있어요.”
신기하게 바라보는 나를 향해 찻잔을 들고 있던 주인장이 말했다. 그는 매일같이 열 주먹의 사료를 띄엄띄엄 놓아두고 길고양이들을 먹여 살린다. 동네 골목 곳곳에서도 동물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이들. 옆집 아이를 대하듯 먹이를 건네고, 관심도 덜어준다.
사랑을 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비용과 시간, 번거로움까지 함께 계산해야 하는 일이니까.
생각해 보니, 시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을 새삼 발견하게 해 준 것도 길고양이였다. 맏며느리에게 새로운 가풍을 가르치려 엄한 얼굴로 눈물을 쏙 빼게 하던 아버지. 시골집에 도착하면 절을 올리고 무릎을 꿇은 채 훈계를 들어야 했던 분. 하와이 가족여행 중에도 자녀교육을 운운하며 노를 발하던 장면으로 기억돼 있었다. 냉정하고 이해타산이 철저한 어른으로만 생각했다. 일 년 몇 차례씩 시골집을 방문하면서 내가 보고 느낀 만큼만 아버지를 그려왔다.
“어머니, 고양이를 키우시네요? 지난번에는 없었잖아요.”
“학교에서 불쌍하게 굶고 있던 녀석이라고 니 아버지가 데려왔어. 원래 짠한 미물 보면 못 견뎌해.”
얼음장같이 차가운 분이라고만 여겼던 아버지. 앞모습만 보고 있었는데, 그분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 손에서 자라난 식물들은 하나같이 잘 자랐다. 마당 화단과 장미꽃 아치도 아버지가 만들고 가꾼 것이었다. 손자들을 위해 키운 수박은 마트에서 파는 것만큼이나 복스러웠다. 암소들은 새끼를 잘 낳았고, 닭들도 제법 알을 자주 내어주었으니 말이다.
강과 호수를 얼게만 하는 아이스맨이 아니었다.
입김을 따뜻하게 불 수 있는 심장을 가진 분.
그날 이후로 아버지의 본심을 자주 발견했다. 때문에 나는 작은 고집을 피우기도 하고, 소심한 반대 의견도 낼 수 있는 강심장 며느리가 되었다. 더 이상 울지 않고, 따뜻한 마음씨에 호소했다. 가끔씩은 아버지도 고귀하고 따스운 숨을 내뱉을 수 있도록.
오늘도 건물을 지키는 아저씨에게, 택시 기사에게, 카페 주인장에게 34도씨쯤 되는 인사를 건넨다. 내가 돌려받는 인사는 35도씨를 훌쩍 넘는 듯하다. 불쌍한 동물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의 손길에 자주 눈이 간다.
덕분에 나는 따뜻한 눈을 뜰 수 있게 된 것 같다.
배를 드러내고 잠든 개를 보면 웃음이 나고, 숨바꼭질하듯 모습을 드러내는 고양이를 만나면 괜스레 궁금해진다. 누구든 온기를 품고 있다는 신뢰 덕분에 씩씩한 인사도 건넨다. 때로 입김 같은 작은 미소와 도움이 우리를 버티게 하기에.
세상 모든 것이 우리 앞에 얼어붙을 때
마음의 벼랑에 고드름이 슬고 무릎이 시릴 때
손끝이 차갑고 발목마저 꺾일 때
우리가 온기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걸
우리 스스로가 증명하는 아름다운 숨.
고명재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