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산책
산책은 숨비소리를 내기 위해 수면 위로 오르는 해녀의 발길질이다.
산책은 나 자신을 만나러 나가는 외출이다.
영감을 갈구하는 기도의 시간이다.
산책은, 살고 싶다는 발버둥이다.
이집트에 이사 온 다음 날부터 나는 산책을 시작했다. 낯선 땅이 두려웠기에, 가만히 웅크리기보다 먼저 정탐에 나섰다. 집 건물 1층의 서점과 아이스크림 가게를 시작으로, 백 미터 떨어진 슈퍼마켓까지 반경을 넓혔다. 그다음 날에는 우버를 타고 박물관으로 향했다.
언어도, 인종도 다른 북아프리카의 공기 속에서 멈춰 있으면 울음이 먼저 밀려올 것 같았다. 그래서 매일 집 밖으로 나갔다. 외출할 때마다 타임스탬프로 사진을 남겼다. 하루의 과제를 완수하듯 짧은 산책을 두 달 넘게 이어갔다. 반년이 지나자 한 시간 거리 안에서는 어디든 홀로 움직일 수 있는 거주민이 되어 있었다. 두려움보다 먼저 움직인 전략 덕분에.
산책은 나를 만나러 가는 외출이다.
여행을 떠나는 날이면 빠짐없이 새벽 산책을 나선다. 잠자리에서 막 일어난 가장 자연스러운 얼굴로 세상과 마주한다. 숨소리와 발소리만이 또렷이 들리는 시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나를 조용히 그려보는 때다.
어제의 실수가 떠오르기도 하고, 새로운 계획이 움트기도 한다. 막연한 두려움이 스치면, 그 위에 기도를 얹는다. 일출을 기다리며 바닷가를 걷기도 하고, 이름 모를 동물의 움직임에 한참을 멈춰 서기도 한다. 아무 생각이 없어도 괜찮다. 그저 살아 숨 쉬는 나 자신이 고맙고, 세상이 맑게 열려 있어 반갑다.
아침 산책은 하루를 건네받는 특급 초대장이다.
산책은 영감을 갈구하는 기도의 시간이다.
“삶에서 만나는 가장 심오한 교과서는 자연이다.”
헤르만 헤세의 이 문장을 마음에 품고, 매일 아침 15분씩 자연을 만나러 나섰다. 이름도 고운 경주 ‘물미 마을’에서 보낸 2년 동안, 나는 사계절의 교과서로부터 삶의 순서를 배웠다.
봄이 오면 싹이 트고 꽃이 피고 마침내 열매를 맺는다. 인생 또한 그렇게 순서를 밟는다는 사실을 자연은 말없이 보여주었다. 이웃의 텃밭과 과수원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노란 애기똥풀을 한 줌 꺾어 돌아오기도 했다.
천천히 걷는 15분은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먹이를 저장하는 거미처럼 작은 깨달음을 하나씩 모았다. 그 산책 덕분에 지금 나는 이 땅에 관한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게 되었다.
오늘도 스모그로 인해 종일 집에 머물던 나는, 잠시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듯 현관을 나섰다. 작은 카페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산책을 권하는 글을 쓰는 중이다.
숨을 고르기 위해, 다시 살아가기 위해 매일 나는 산책을 떠난다.
없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과 있는 것에 대한 기분을 가지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오후가 있다.
바다를 산책하는가 싶었지만
결국 내 내면의 광활한 우주의 어느 구석을 산책하고 있었네.
집에 돌아와 신발 속의 모래를 털며
생각하는 것이다.
모래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나와, 오늘 산책한 바다와, 내일 만날 세계가.
정고요 <산책자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