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는 항구로 가는 통과의례
오랜만에 바깥에서 사람을 만났다.
잠자기까지 바쁜 요즘,
사람을 만나 맛있는 밥을 먹고, 시원한 빙수를 먹었다.
말 한 마디 없는 음식에게서 위로를 받았다.
사잇길의 가지 탕슉은 정말이지...
가지에 무슨 일을 한 거야,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가지를 즐겨 먹지 않은 나인데, 다음 만나는 사람과 한 번 더 가서 먹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
아, 10월이므로 메뉴가 바뀌었으려나. 무튼.
생채기 잔뜩 난 세 사람이 모여 위로하고, 격려하는 시간에 시편을 들었다.
내가 앓고 있는 애닳는 마음 시편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서일까.
시편을 꼭 읽어보라던 분이 계셔서 나도 마음 흐트러질 때마다 즐겨 찾는 성경 구절을 나눠보았다.
시편 107편 23-32절
23.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24.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25.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26.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27.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28.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29.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30.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3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32. 백성의 모임에서 그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그를 찬송할지로다
처음에는 마음에 걸리는 단어들만 보였다가 잘 보이지 않았던 단어를 보게 된다.
그래서 성경은 스펙트럼이 넓다고 말하는 것일까.
(사역자가 아니어서 어떤 지식도 없다. 이단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개인 생각이다. 이 글을 공개하는 이유는 누구 하나 마음에 힘을 얻는다면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발행하는 것이니 오해하지 마시길.)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관찰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본다고 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들에 있던 사람들이 광풍에 정신없이 솟구쳤다 곤두박질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위험 때문에 영혼이 녹는단다.
성경에 광야가 참 힘든 곳이라고 나오는데, 광야는 발 디딜 곳이라도 있지 깊은 바다는 발 디딜 곳도 없다.
의지할 곳 하나 없는 깊은 바다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은 영혼이 녹을 만큼 깊은 두려움과 불안의 연속이다. 영혼이 탄다는 느낌은 알 것도 같은데,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영혼이 녹을까? 그 감각을 지레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깊은 바다에 갈 선원이라면 바다를 조금은 알아서 경험과 지식이 많을 텐데,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단다. 세상에서 겪는 어려움 중 내가 가진 지식이 바스라질 정도로 의미 없을 때가 있다. 그런 혼돈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래도 평화롭다는 이야기일까... 어쨌든 나의 생각이 전혀 힘을 쓸 수 없는 상태. 그 얼마나 내 존재까지도 부정하고 싶은 답답함일까. 그래도 그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는단다.
참, 다행이다.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알아서. 한 번도 직접 뵌 적 없고, 이야기만 들었을 뿐인 그분의 이름을 고통 중에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그가 그 소리를 듣고 고통에서 인도하고 광풍을 고요하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C.S 루이스가 고통은 하나님의 확성기라는 말을 남겼을까. 고통 때문에 그제야 신의 이름을 부르는 인간인데. 그 이름을 부른 자들은 고요함을 지나 이내 평온에 빠진다. 기뻐하는 일에 더 기쁜 소식인 바라는 항구에 도착한단다. 내게 하신 그 기적 같은 일들로 하나님을 찬송한단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 앞, 리더의 자리에서.
이 말씀을 읽으면 번잡했던 생각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정돈되면서 생각이 하나로 모아진다.
그에게도 이런 평안이 있기를 바라면서 함께 나누었다. 모두가 살기 힘든 세상.
그 어느 누구 하나 광풍 같은 마음 속을 알아줄 이가 없고, 거대한 파도를 작은 손바닥으로 막기에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우리는 신이라는 그분의 이름만 부르면, 그가 광풍을 잠잠하게 해준다고 했으니, 평온함에 기쁜데도 바라는 항구에까지 도달하게 하신다고 했으니 노래가 절로 나올 일이 아닌가.
이 모든 기이한 일을 한 신에게 영광을 돌릴 감격함이 샘솟지 않겠는가.
무미건조하다 못해 쩍쩍 갈라지는 마음 밭에 싹을 틀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금이나마 받은 은혜 흘려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