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러질 것에 싸매인 사람들
말장난이지만 그 한끗 차이가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
나는 프리랜서다. 그래서 매일 가는 장소가 다르다.
그날은 용산으로 갔다. 직장에서 만나면 인사 정도만 하는 담당자가 있다.
그것도 자리에 앉아 있을 때일 뿐이다. 사람마다 풍기는 느낌이라는 것이 있다.
다 말하지 않아도 매사 버겁고, 무엇인가 모르게 괴로운 사람.
딱 그런 분위기다. 늘 표정은 굳어있고, 웃으며 인사는 하지만 눈은 팔자 눈썹으로 걱정이 많은 얼굴.
어제는 그분이 먼저 말을 걸었다.
"선생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나이 질문을 받아 본 것이 얼마만인가 싶은데, 대답해 주면서도 질문의 이유를 물었다.
내가 엄청 동안 같아서 물어본 질문은 아니었을 것이므로.
그렇게 차이 나는 것 같지 않은데, 나와 같은 젊음이 부럽다고 했다.
나는 나이 먹어가는 것이 아깝고 안타까운데, 나의 젊음이 부럽다니. 누군가의 시선에는 내가 부러움의 대상이구나 했다. 누군가를 부러워 해봤어도, 누군가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니 그동안 나 스스로의 평가를 점검해야겠다는 생각도 겸했다.
그러면서 뜬금 담당자는 '불안증'에 대해 이야기했다. 무엇인가 기대고 싶고, 위로 받고 싶고, 자기도 주체하지 못한 감정들로부터 덜고 싶은 모습이었다고 할까. 이야기가 갑자기 불안증으로 튀는 게 의아했지만, 그 선생님은 아무 걱정 없을 것 같은 내 모습이 부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반려견과의 이별과 카드 취소에 대한 환불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하루면 취소 메시지가 뜨는데, 이번 건은 이틀이 지나도 문자가 오지 않는다며,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굉장히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어떤 연관인지 잘은 모르지만, 두서 없는 대화에서 어쩔 줄 모르는 그의 세계를 맞이해 본다. 도움이 필요해 보였으나 내 손이 미치는 거리와 품는 그릇은 한계가 있을 것이므로, 전달되지 않을 응원 정도 하고 나왔다.
시답잖은 대화였지만, 자꾸 끄집어보게 되는 상황이었다. 얼마나 우리가 편협하게 생각하는지도 되짚어보았다. 서로 다 알지 못하는데 쉽게 평가 내리고, 타인을 부러워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불안해 한다. 누군가의 부러움이 나의 불안에 위로가 되는 것도 웃기다. 사실 나 또한 어쩔 줄 몰라하는 감정이 며칠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나보다 더 폭풍 같은 사람을 보고서 괜찮다 위안 받는 것이 참 간사하게도 느껴진다.
결국은 내가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 문제다. 약할 때도 있고, 자신만만할 때도 있는 게 사람이지만, 남탓, 환경탓하지 말고 오늘 하루 성실히 잘한 나에게 칭찬 한 마디 정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남 부러워하지 말고 나에게 더 잘해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 선생님 또한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남은 하루 알차게 지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