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회사, 단체, 지명, 그리고 모든 고유명사는
일부 사건을 모티브로 했지만, 실제와는 일절 관계가 없이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유사한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그리운 만 이천봉
북한에서 돌아온 진명훈 회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왕 회장 신변 상태에 대한 완벽한 보안조치였다. 그와 이진수, 김희규, 단 세사람만 공유하는 극비 방안을 마련했다.
먼저, 왕 회장을 태산병원 최고층 VIP 병실에 입원시키고, 병실 문 앞에 경호원을 배치했다. 담당 의료진 외에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도록 차단했고, 병원장에게는 ‘왕 회장의 상태에 대해 절대적으로 보안을 유지하라. 만약 누군가 왕 회장의 건강을 물어오면 북한 방문 후 감기 기운이 있어 잠시 쉬시는 거로 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리고 자택과 병원을 오가는 모든 동선은 새벽 또는 심야에만 집중되었고, 차량과 병실이 바로 연결되도록 관리되었다.
진태양은 완벽한 침묵과 은폐 속에서 ‘존재하고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팬텀이 되어가고 있었다.
진명훈 회장은 현실을 직시했다.
원산 특각 사건 이후 아버지 진태양의 정신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예전의 상태로 회복이 불가하다는 사실을 입밖에 낼 수 없었지만 확실하게 깨닫고 있었다.
이제 아버지는 태산의 마에스트로가 아니라, 핵심 리스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모든 판은 무너진다. 남북정상회담도, 대북사업도, 그룹의 회생도... 그것은 블랙홀이었다. 그는 외부에 그 어떤 ‘이상 신호’도 새어 나가지 않도록 철두철미하게 신경을 썼다.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이 닥쳤다고 해서, 남북정상회담과 대북사업의 발걸음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그것만이 태산그룹을 살릴 수 있는 생명수였기 때문이었다.
태산그룹은 이 생명의 물을 마시기 위해 금강산관광 사업권 대가 4억 9,000만 달러, 금강산관광 시설 투자 3억 8,000만 달러, SOC 사업권(전력 통신사업, 철도사업, 통천비행장 건설, 임진강 댐 건설, 백두산,묘향산,칠보산 등 명승지 관광사업) 30년간 독점 유지 대가 5억 달러, 개성공업지구 투자 3,300만 달러 등 우리 돈으로 1조원이 훨씬 넘는 총 14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진명훈은 밀려오는 불안감과 두려움 속에서도 이 원대한 계획의 첫 단추인 금강산관광 사업 개시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그러나, 명훈은 관광이 개시되기까지 숱한 난관에 직면했었다.
일단, 태산그룹 최고경영진 일부에서조차 물꼬만 터주고 정부에 맡겨야지 그룹이 직접 추진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매우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반대 의견을 강하게 제기했지만, 진 회장은 한직 발령과 해임이라는 과감한 인사조치로 묵살해 버렸다.
북한 군부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았다. “군사 요충지인 장전항을 어떻게 관광지로 개방한단 말인가! 해안포나 진지같은 군사시설이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나섰다. 강경한 반대에 사업이 한동안 지연되자, 김정일이 직접 나섰다. “미국과 남조선 위성이 이미 자기네 집 앞마당처럼 다 들여다 보고 있는데 무슨 노출 타령이냐?”는 한 마디에 모든 반대는 침묵으로 전환되었다. 역시 북한에서 김정일은 신(神)이었고, 그 신을 움직인 건 돈이었다.
온갖 고비를 넘고 어려움을 뚫으며 드디어 1998년 11월 18일, 역사적인 금강산관광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출발지인 속초 국제여객터미널은 새벽부터 수많은 인파들이 붐비는 가운데 축제 분위기와 엄숙한 긴장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첫 출항에 오르는 826명의 관광객들은 대부분 60~70대 실향민들이었다.
그들은 설렘과 초조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일찍감치 줄을 서 있었다. 혹시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여 한손에는 빛바랜 흑백 사진이, 또다른 손에는 비상약이 들려 있었다.
방송 카메라에는 ‘내 생애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과 ‘꿈에도 그리던 고향 산천’을 본다는 희망에 들떠 눈물을 훔치는 노인들의 모습이 곳곳에 잡혔다.
관광객들을 태울 ‘태산금강호’는 2만 7천톤급의 대형 크루즈선으로, 새벽 어둠 속에서 조명을 받으며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전 9시 30분,
드디어 배가 힘찬 뱃고동을 울리며 부두를 떠나가자, 터미널에 남은 수천명의 인파가 일제히 손을 흔들며 외쳤다.
“잘 다녀오세요!”, “남북 통일!”, “평화 통일!”
현장 중계를 하던 아나운서들마저 목이 메여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가슴 벅찬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방송사들은 이 순간을 ‘분단 53년만의 바닷길 개방’, ‘역사적인 첫 뱃고동’이라는 자막을 올리며 현장의 감동을 생중계했다.
그러나, 보수 언론과 경제신문들은 금강산 관광을 냉철한 입장에서 분석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매년 북한에 지불되는 천문학적 관광 대가가 우리 경제에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민간기업 주도의 대북사업이 정권 부침에 따라 좌우될 위험성은 없는가?’라며 날카로운 시각으로 비판했고, 안보적으로는 ‘군사적 긴장 완화 효과는 의문’, ‘북한의 외화벌이 수단으로 전락’ 등 부정적 기사를 게재하고 있었다.
정치권은 예상대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햇볕정책의 구체적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강조하며 대북 포용정책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그리고 정권 출범 9개월 만에 이룬 역사적 쾌거를 통해 IMF 극복과 국민 통합이란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데 큰 동력이 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반면, 야당은 ‘순수 관광사업이 아니다. 정부가 민간기업을 앞세워서 북한 정권에 정치적 자금을 대주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국민의 혈세가 북한의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견제에 나섰다.
여러가지 입장들이 혼재된 가운데 경제계에서는 ‘소 떼 방북’에 이은 ‘금강산 관광 개시’로 진태양 회장의 카리스마와 저돌적인 추진력이 재조명되면서 태산그룹 계열 회사들의 주가가 급등했다.
1999년 2월, 진명훈 회장은 금강산관광의 스타트가 성공적이었다는 판단에 따라서 그룹 내부적으로 대북사업 관리체계 정비에 나섰다. 대북사업 전담회사 ‘태산유니언’을 설립하고, 김희규 태산건설 사장을 초대 사장으로 겸직 발령했다.
동시에, 소 떼 방북에서 성공적인 역할을 한 요시다를 태산유니언 고문으로, 이진수를 태산증권 부회장으로 승진시켜 요시다 전담 관리와 함께 북한과의 교섭을 총괄토록 했다.
대북사업 추진 인력 및 조직 정비를 마친 진명훈은 곧바로 요시다에게 극비 지시를 내렸다.
“북한에 남북정상회담 의사를 타진하라!”
권력의 미끼, 카지노
1999년 5월의 어느 날.
이진수가 진 회장 사무실로 김영규를 데리고 왔다. 김영규는 1989년 태산전자가 방위산업 진출을 검토할 때 이진수가 당시 미국 방산업체 한국지사장이라며 인사시켰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실체는 무기 중개상이자 정치 브로커였다.
진 회장은 김영규의 실체를 알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도움으로 김대진 정부 출범 직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최고의 실세였던 강갑철을 소개받았을 때였다.
때는 1998년 3월.
김영규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 이제 태산그룹 회장에 취임도 했으니 정권의 실세들을 좀 알아둬야 하지 않겠어요. 내가 강갑철 고문을 잘 아는데 소개해 드릴까요?”
김영규는 어릴 때 진 회장의 옆 동네에서 살았다는 인연을 빌미삼아 진 회장을 형이라고 불렀다.
진명훈은 김영규의 제의를 받고나서 강갑철 고문을 만날 지 여부에 대해 고민하며, 그간 있었던 권력들과의 거래를 곱씹어 보았다.
태산은 과거 전태환, 노우석 대통령 시절에 상당한 정치 비자금을 갖다 바쳤다. 그러나 김영찬 대통령에게는 진태양 회장이 비자금을 한 푼도 주지 않고 오히려 대통령 출마까지 하는 바람에 미움을 받아 많은 곤란을 겪었다. 대북사업은 중단되었고 태산그룹이 위기에까지 몰렸다. 이후 인고의 세월을 보내다가 김대진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대북사업을 재개해서 그룹의 재기를 도모하는 기회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현 정부 최고의 실세인 강갑철과 안면을 튼다면 태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당연히 대가는 따를 것이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과 대북사업을 위해 최고 실세를 알아두는 것은 비용이 좀 들더라도 이익이 될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그래? 만나 보자.”
며칠이 지나지 않아 김영규로부터 연락이 왔다.
“강 고문께서도 좋다고 하셨어요. 내일 평창동 미네르바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서 고문님 댁으로 같이 가시죠.”
다음날, 진 회장은 이진수를 대동하고 자신의 차로 미네르바 호텔로 갔다. 거기에서 김영규의 승용차로 갈아타고, 호텔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강 고문의 빌라로 갔다.
진 회장과 이진수, 김영규 세 사람이 거실 소파에 앉자, 강갑철이 먼저 “TV에서나 보고 말로만 듣던 진명훈 회장을 이렇게 만나 보네. 어떻게, 사업은 잘 되요?”하고 친근하게 인사말을 건넸다.
진 회장이 반쯤 고개숙여 목례를 하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연세보다 20년은 더 젊어 보이십니다. 특별한 건강 비결이 따로 있으십니까?”라고 화답하자, 강 고문이 “내가 젊었을 때 복싱을 해서,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 같네요.”라고 기분 좋은 듯 활짝 웃자 일순간 분위기가 부드럽게 누그러졌다.
진명훈은 담담하지만 겸손한 어투로 본론을 꺼냈다. “고문님, 지난 김영찬 정권 때 저희 태산이 정부의 비협조로 대북사업을 제대로 추진하질 못했습니다. 이번 정부는 대북사업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강갑철이 기다렸다는 듯이 호탕하게 대답했다. “진 회장, 잘 알았소. 우리 정부도 한마음이니, 내가 힘이 되는 대로 도와드리리다. 우리 같이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 봅시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내가 바쁠때는 김 회장을 통해 연락할테니, 그리 알아두면 좋겠소."
한시간 여에 불과한 길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 회장은 김영규의 숨겨진 정체를 직감했다.
강 고문과의 만남 이후 1년여 시간이 흘러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김영규는 특유의 너스레가 여전했다. 소파에 앉자마자 대뜸 “형, 태산에서 금강산 관광하면서 카지노를 운영한다면서요?”하고 물었다.
“정부 허가가 나오면, 카지노 경영 경험이 많은 일본기업들 중에서 물색해 운영권을 팔려고 해. 우리 실무진 보고로는 제법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데.”라고 대답하자, 김영규가 “형, 그거 내가 해야지 무슨 소리야. 나한테 줘요.”라고 말했다.
“주고 말고는 두 번째 문제고, 정부 허가가 나와야 말이지. 통일관광부가 허가를 안 해줘서 골치가 아파.”
실제로 태산은 1998년 11월 18일 금강산 관광이 개시가 되었지만 정부가 온정리휴게소와 유람선에 설치하려 했던 카지노, 면세점 허가를 내 주지 않는 바람에 매일 3억원이 넘는 적자가 쌓여가고 있었다. 도박의 피가 흐른다는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해 수익을 만들려던 핵심 돌파구가 막힌 상태였다.
“형, 내가 통관부 구정래 장관이랑 친해. 자리 한번 만들어 볼까?”
진 회장은 정치 권력과 접촉하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긴 했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더구나 구 장관이 누구인가. 금강산 관광 주무장관이자 김대진 정부의 핵심 실세아닌가. 잘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카지노 문제 해결에 숨통이 확 트일 거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래, 한번 추진해 봐.”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
“형, 내가 구 장관 사무실에 찾아가 얘기 했어요. ‘태산에서 카지노 한다는데 그거 내가 할 거니까 좀 도와줘요.’ 라고 했더니 구 장관이 ‘태산? 진명훈 회장 잘 알어?’ 그러길래 내가 ‘잘 알지. 다리 한번 놓아볼까요?’ 그랬어요. 구 장관이 흔쾌하게 ‘그래 얼굴 한번 보지 뭐. 야, 카지노 하면 돈 많이 번다더라’라면서 만나겠대.”
명훈은 긍정적인 반응이 다행스러웠지만, 끝말이 귀에 거슬렸다. ‘카지노 하면 돈 많이 번다더라? 이거 뭐, 만나기도 전에 밑밥부터 까는거야?’
이틀 후 오후 3시, 피아자호텔 객실 1211호에서 구 장관과 함께 만나자는 김영규의 콜이 왔다.
진명훈은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오후 2시 50분경 객실 앞에 도착했다. 길게 숨을 내쉰 뒤 벨을 눌렀다. 김영규가 문을 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왔어요? 장관님 기다리고 계세요.”
객실로 들어서장, 구 장관이 앉은 채로 손을 내밀어 소파를 권하면서 “어서 오시오, 진 회장. 반갑습니다.”라고 천천히 말했다. 명훈은 작위적인 느린 말투에서 꼬집어 표현할 수 없지만 오만함이 숨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165센티미터쯤 되는 작은 키지만 단단한 체형, 소설가 풍으로 가운데 가르마를 탄 다소 긴 반백의 머리, 사람을 뚫어보는 듯한 차가운 눈빛 … 예사롭지 않았다. 그간 TV 화면에서 보던 것 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권력자의 인상이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나자, 구 장관이 “큰 사업 하시기가 참 어렵죠?”라고 말문을 열었고, 진 회장은 조심스럽게 “장관님께서도 아시고 계시겠지만, 우리 태산이 금강산과 유람선에 카지노와 면세점을 설치하려는데 허가가 나오지 않아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장관님께서 좀 도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구 장관은 “그래요? 그 문제는 도와 주고는 싶은데 강원도 여론이 만만치가 않아서… 참 쉽지가 않네요.”라고 얼버무리듯 대답하고는 입을 닫았다.
잠깐의 어색한 침묵 속에서 진 회장은 그의 말이 딱히 거절 같지는 않고, 무엇인가 여운이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진의를 확인하고 싶어 다시 한 번 말을 건넸다.
“예, 저희도 그 내용은 좀 알고 있습니다. 어려우시겠지만 태산은 장관님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글쎄요... 한 번 알아봅시다.” 구 장관의 말은 여지를 남기며 계속 모호했다.
대화하는 내내 김영규는 구 장관과 미리 약속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 마치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는 듯.
그 정도 수준으로 얘기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진 회장은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이 문제는 단순한 민원 해결이 아니라,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 사이에 이권이 교차하는 비선의 영역임을 직감했다. ‘양념’이 더해지지 않으면 풀리지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만남 이후에 정부는 카지노 사업에 전혀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구정래도 움직이지 않았다.
진명훈은 야수의 아가리에 던져 줄 고깃 덩어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