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은
말이 없었다.
햇볕은 독했고,
바람은 없었고,
나는
그늘 하나 없는 하루를
묵묵히 지나고 있었다.
피곤하다는 말조차
어딘가에선 사치 같았고,
감정은
미뤄둔 채
그저 버티는 일이
전부였다.
그러다
어느 날,
식탁 위에 놓인
한 그릇.
오이 몇 줄기,
식초 향 은은한 국물,
덜컥 내려앉은 얼음 몇 개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숟가락 하나를 들었을 뿐인데
그날의 공기가
코끝에 밀려왔고,
차가운 국물이
가슴 어딘가를
툭, 건드렸다.
그건 단지
음식이 아니었다.
말없이 건네진
누군가의 다정,
삶의 틈새,
그리고
식어가던 나를
조용히 덮어주는
작은 위로였다.
나는
그 한 모금 속에서
살아야겠다는 다짐 대신,
그저 살아졌던 시간을 떠올렸다.
뜨거운 하루 속
차가운 그릇 하나가
삶을 바꾸진 못했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지금도
오이냉국의 냄새가 스치면
그 여름이 떠오른다.
땀에 젖은 옷깃,
말없이 놓인 그릇,
그리고
묵묵히 앉아 있던
그 시절의 나.
버거웠지만,
이상하게도
그립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누군가의 그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조용히 내 안에서
움트기 시작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