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온기

그 겨울 배움의 거리

by 정승일


나는
내 안을 채우기 위해
배움으로 향했다.

생각이 자라나는 소리가
내 안을 조용히 살찌웠고
그 시절,
배운다는 건
가장 따뜻한 일이었다.

자취방과 학교 사이,
한 시간 반의 거리.
언 발자국들이
눈 위에 길게
늘어져 있던 겨울.

걷는 일이
공부보다 먼저였고
배움보다 깊었다.

주머니 속
동전 몇 개,
덜그럭거리며 굴러다녔지만
성에 낀 허기 하나가
마음속에
늘 남아 있었다.

어느 날은
지폐 한 장 없이
거리의 바람만 안고
손끝을 움켜쥐며 걸었다.

그런 날이면
모퉁이에서 풍기던 어묵 냄새가
내 배보다 먼저
가슴을 건드렸다.
김이 피어오르던 붕어빵 가게,
그 온기는
어린 시절의 겨울 같았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배고픔보다
담배 한 모금의 깊은숨이
더 위로 같았기에,
뜨거운 국물보다
연기 속의 정적이
더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머니에서
낯선 감촉이 스쳤다.
만원 한 장.

그 조각이
내 걸음을 무겁게도,
가볍게도 바꾸어 놓았다.

충분히 살 수 있는 냄새들.
가게는 그대로,
김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나는
돌아섰다.

먹지 않았고,
사지도 않았다.
허기졌지만
기뻤다.

그날, 나는 알았다.
비워진 내 안에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조용히 들어서고 있었음을.

꼭 채우지 않아도
마음은 가득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날의 포만감은
음식이 아니라
삶의 감각이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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