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무너진 나

실종 이후의 나에게

by 정승일

처음엔 모든 게 가벼웠다.

세상도, 선택도, 사람도.


어떤 일도 쉽게 꺾일 수 있을 것 같았고,

무너져도 다시 세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땐 그렇게 단단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풍요는 어느 날 갑자기 몰려왔다.

시간은 늘 모자랐지만,

지갑은 묵직했다.

너무 무거워

주머니마다 찌그러지기 일쑤였고,

나는 그 무게가 곧 나 자신인 줄 알았다.


그러다,

믿었던 이가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렸다.

그 뒷모습은 조용했지만

나를 강하게 밀어냈다.


그 순간 알게 되었다.

그동안의 가벼움들이 하나둘 모여

이제는 나를 짓누르고 있다는 걸.

내가 딛고 있던 건

단단한 기반이 아니라

눈앞을 흐리던 허상이었다는 걸.


모든 것이 사라지고

책임만 남았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


나는 무너졌고,

그 무너짐 속에서

나는 실종되었다.



실종 이후,

하루하루가 또 다른 무너짐이었다.

두려움은 밤을 지우고

한숨은 아침을 만들었다.

빛은 닿지 않았고,

누구의 손길도 내게 닿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야 했다.

지금이 바닥이라 믿었지만,

시간이 더 흐르자

그 아래에 더 깊은 늪이 깔려 있음을 알게 되었다.


조용히 조여 오는 숨 막힘.

빠져나갈 길도, 손 내밀 곳도 없는 시간들.


그러던 어느 날,

한 줌의 바람이 나를 스쳐갔다.


무너진 줄만 알았던 내 안 어딘가가

아직 살아 있다는 듯

조금, 아주 조금 흔들렸다.


숨 쉬는 법을 잊고 있었던 나.

그때 문득,

입 안에 고여 있던 한숨 속에서

‘살고 싶다’는 아주 미세한 감각이 피어올랐다.


살아야겠다.

아니, 살아내야겠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나는 먼저 나를 인정했다.


허상들이 무너진 자리,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작고 초라한 나를 마주했다.


감추지 않았다.

피하지도 않았다.

그 보잘것없는 마음까지

있는 그대로 껴안았다.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일들이,

그리고 그 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작지만 분명한 용기가.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실종이 아니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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