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이후의 나에게
처음엔 모든 게 가벼웠다.
세상도, 선택도, 사람도.
어떤 일도 쉽게 꺾일 수 있을 것 같았고,
무너져도 다시 세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땐 그렇게 단단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풍요는 어느 날 갑자기 몰려왔다.
시간은 늘 모자랐지만,
지갑은 묵직했다.
너무 무거워
주머니마다 찌그러지기 일쑤였고,
나는 그 무게가 곧 나 자신인 줄 알았다.
그러다,
믿었던 이가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렸다.
그 뒷모습은 조용했지만
나를 강하게 밀어냈다.
그 순간 알게 되었다.
그동안의 가벼움들이 하나둘 모여
이제는 나를 짓누르고 있다는 걸.
내가 딛고 있던 건
단단한 기반이 아니라
눈앞을 흐리던 허상이었다는 걸.
모든 것이 사라지고
책임만 남았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
나는 무너졌고,
그 무너짐 속에서
나는 실종되었다.
실종 이후,
하루하루가 또 다른 무너짐이었다.
두려움은 밤을 지우고
한숨은 아침을 만들었다.
빛은 닿지 않았고,
누구의 손길도 내게 닿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야 했다.
지금이 바닥이라 믿었지만,
시간이 더 흐르자
그 아래에 더 깊은 늪이 깔려 있음을 알게 되었다.
조용히 조여 오는 숨 막힘.
빠져나갈 길도, 손 내밀 곳도 없는 시간들.
그러던 어느 날,
한 줌의 바람이 나를 스쳐갔다.
무너진 줄만 알았던 내 안 어딘가가
아직 살아 있다는 듯
조금, 아주 조금 흔들렸다.
숨 쉬는 법을 잊고 있었던 나.
그때 문득,
입 안에 고여 있던 한숨 속에서
‘살고 싶다’는 아주 미세한 감각이 피어올랐다.
살아야겠다.
아니, 살아내야겠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나는 먼저 나를 인정했다.
허상들이 무너진 자리,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작고 초라한 나를 마주했다.
감추지 않았다.
피하지도 않았다.
그 보잘것없는 마음까지
있는 그대로 껴안았다.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일들이,
그리고 그 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작지만 분명한 용기가.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실종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