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등과 일등을 둔 엄마의 선택-6회

일본을 가지 않았다면 꼴등을 면했을까?

여행을 통한 추억을 되 짚어 보는 일본과 일본에서 아이를 낳으면 미친년 소리를 듣다


꼴등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아이는 아직도 일본 음식 맛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명태알(明太子)멘타이고라고 한다. 그냥 미안했다. 아이는 일본생활을 잊지 않고 있었든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중퇴까지 하는 일 하나 제대로 변변잖다 보니 아이도 부모도 관심을 가질 수도 아이도 지 목소리를 못 내고 살아 온 것 이다. 33살 어른이 된 지금 아이는 명란이 너무 맛있다고 한다. 한번씩 돈 생기면 혼자서 사먹었다고 한다. 또 미안하다. 더 미안하다.

부모로서 공부 못하고 말썽만 부리는 아이를 못 마땅하게 탐탐칙 않게 여기기만 했지 아이의 마음 한번 쓰다듬어 준 적이 거의 없었든 것 같다.


일등한 아이는 어렸을 때는 동네방네 꼴등이였고 꼴등한 아이는 동네방네 일본동네 전국에까지 영재라는 소리를 들었으면 아이는 부모에게 효도를 다 한 맞는 것 같은데 부모의 욕심이 과해도 너무 과 한 건 아닌가 싶다.

일본 아파트에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있다. 작은 아이는 우리 아이와 같고 그 위에 형이 있다. 자기 부모들이 동생은 초1, 형은 중1이 되면 이혼하기로 아이들에게 선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입학식이 끝나고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버지가 아이들을 키우기로 했단다. 아버지는 새벽 일을 나간다. 아버지가 나간 후 아이들은 며칠은 학교에 갔으나 점 점 등교 회수는 줄어 들었다. 나도 여러번 아이들을 챙겨 주기는 했지만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해서 그만 두었다. 일본 학교 교사가 가정방문을 매일 하는 것이었다. 작은 아이며 큰 아이며 하루도 빼지 않고 아이들을 챙기는 것이었다. 오늘 학교에서 무엇을 했는지 과제를 가져다 주고 학교에서 만든 것, 학교에서 지급한 물품까지도 하나도 빼지 않고 전부 챙겨서 오는 것이다. 작은 아이와 함께 왔었다. 한국교사도 이런 교사가 있을지 모른다. 난 만나 보지도 듣지도 못해 잘 모르겠다. 아이들은 그 이후 학교에 다닌걸로 알고 있다. 우린 3학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우리 아이에게도 그런 따스한 교사가 다가갔다면 꼴등은 면했을까? 아이는 6년6개월 정도의 일본 생활 동안 크게 말썽을 부린 적은 손꼽아도 없을 것 같다.


일본에서 작은 아이를 출산 할때의 에피소드다. 난 아이를 낳다 말고 미친년 소리를 들었다.

일본은 몸이 약하거나 노산에 아이를 낳으면 정부 지원이 참 많다. 병원비도 거의 반값이다.

작은 아이를 낳을 당시 난 노34세의 노산이었다. 라마즈호흡으로 아이를 낳는 병원을 찾아갔다. 아니다 멋진 호텔 같은 곳에서 아이를 낳기 위해 갔다. 집에서도 좀 떨어진 곳이며 조용한 외곽지대에 있는 병원이었다. 난 무식한데 운이 좋은 편인가 보다. 아이도 최고의 유치원에 입원을 시켰고 산부인과도 유명한 곳이란다.

산부인과 진료는 매월1회 가며 아기를 낳기 전까지 내 몸무게에 양수 무게 합하여 7kg이상 찌면 의사 선생님에게 혼이 난다. 매사에 철두철미한 일본 산모들도 이 약속을 지키긴 어려워 옷을 얇게 입거나 긴 머리카락을 자르기도 한다. 큰 아이 출산 때, 작은 아이 출산 때 무게에 변화는 거의 없었다. 7kg도 늘지 않았다.

출산 1달 앞두고 아이가 거꾸로 있다고 한다. 한국은 노산에 이런 상황이면 바로 제왕절개를 하자고 할 것인데 운동 하는 법을 알려주고 아이를 낳기 전 호흡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노산의 나이에 순산이었다.


순산을 하는 과정에서 조산원, 간호사, 의사가 번갈아 가며 하루를 걸려 아이를 낳았지만 의사는 열번이고 왔다가 가는 것이었다. 통증과 함께 저혈압에 수혈까지 받으며 아이를 출산하는데 정말 고통이었다. 한국에서 이미 촉진제 맛을 알고 있는 터라, 당연히 일본도 촉진제 정도야 산모도 좋고 아이도 좋을 것 아닌가 하는 마음에 몇번이고 부탁을 한 기억이 난다. " 의사와 조산원이 동시에 당신 미쳤냐, 엄마가 맞느냐, 아이도 산모도 위험할 수 있는 짓을 왜 하느냐 아이에게 문제가 생겨도 좋으냐, 그것 하나 참지 못하느냐, 의사도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조산원이 호출을 하면 오는데 당신은 아무 걱정 말고 호흡만 해라" .

아이는 우리가 책임진다. 29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날만 생각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일본은 선진국인 건 확실하다. 축배의 노래를 틀어 놓고 아이를 낳았다.


라 트라비아타(축배의 노래 가사)

아 즐기자, 술잔과 노래와 웃음이 밤을 아름답게 꾸민다./ 이 낙원 속에서/우리에게 새로운 날이 밝아온다.

살아있는 동안은 마냥 즐겁게/ 아직 사랑해 본 적이 없어서겠죠./우리에게 새로운 날이 밝아온다.(생략)


남편은 2일간 큰 아이를 데리고 출근을 하여 피곤하여 깊은 잠에 들어나 보다. 그 시각이 새벽2시 정도였다. 아들을 출산했다. (오도고(무수고상) 상 오메데도 "남편 왈 지금 너무 피곤해서 갈 수 가 없다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가겠다"라는 말에 일본 병원에서 또 한번 놀랐다고 한다. 아내는 촉진제를 낳아달라, 남편은 나중에 간다. 대단한 한국 사람들이다. 큰아이 출산 때는 아이도 힘들어 했는데 작은 아이는 그냥 돌콩이었다. 얼굴 하나 찌그리지지 않고 반듯하게 태어난 것이다. 남편이 " 작은아이와 첫 만남에서 한 말이 넌 돌콩 같이 생겼네" 였다.

난 작은 돌콩을 이렇게 순산했다.


큰 아이 출산 시에는 사육을 당하는 느낌을 받으며 수치심으로 아이를 낳았다. 한 방에 가두어 놓고 점점 통증이 심해지면 출산 침대에 눕히고 그때부터 미친년처럼 몸을 뒤틀라고 한다. 그 때 불쌍한 여성들의 손목이고 몸이 망가지고 만다. 아이 출산시 여자의 몸은 전부 열려 있어 조금만 건드려도 부서지고 마는 종이와 같다.

그리고 출산을 앞당기는 촉진제를 한 방 주입시켜준다. 지금도 냇과가 잘 되는 이유는 여성들의 이유없는 변명이라고 한다. 바로 출산시의 받은 고통으로 원인모를 변명도 없는 병에 오늘도 시랑꼬랑하는 것이다.



한국문화와 일본문화의 차이는 10년 이상이 나는데 말이다. 교육환경은 말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아이 한명 학교에 오지 않아도 이렇게 매일 찾아오는 정성을 다하는 일본의 교육환경이다.


큰 아이가 한국에 들어오며 동네에 신호등이 생겼다. 그러나 그 신호등도 아이는 졸업을 하고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다른 아이들이 교통사고를 여러번 당하고 어떤 어른(부모)의 교통사고 이후에 신호등도 생겼다.

아이는 울고 불며 학교를 다닐 수가 없다고 한다. 자동차가 여기서 저기서 나오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일본은 크략션도 울리지 않고 욕도 안 한다. 그런데 한국 자동차는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한단고 한다.

아이는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없어 웃기만 했단다. 아이보고 병신이라고 욕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이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해서 가까이 다가 가는데 자동차 빽빽이는 빽빽 거리기만 했다. 한국생활에서 받은 심리적 정신적 보상은 어디서 받아야 받아나 문교부, 교육부, 몰지각한 어른들에게 청구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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