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등과 일등을 둔 엄마의 선택-5회

일본을 가지 않았다면 꼴등을 면했을까?

큰 아이의 상처를 치유하러 떠난 일본여행

우린 까마득히 몰랐다. 아이는 지 나라 한국에 들어와서 힘들게 학교에서 당하며 한국학교에 적응을 하며 살았단다. 이제는 너무 지나간 일이라 손을 쓸 수도 없지만 그 당시에라도 말을 해 주었다면 학교라도 옮겨 보았을것을 . 우리 아이는 일본에서 한 아이는 미국에서 주재원 자녀 이들을 바보로 만든 학교를 규탄해야 할까? 미국에서 온 아이는 고막이 터지며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우리 바보 꼴등 아이는 참았단다.


우리 시댁은 초등학교 교사들과 장학사를 걸쳐 교장선생님이 계시다. 이런 환경인데도 아이가 말을 하지 않으니 우리는 그냥 몰랐다고 해야 하나. 20년도 지난 이야기를 끄내서 가슴은 먹먹해지며 가슴이 시리다.


한국의 꼴등아이는 일본에서는 일등아이로 메이노하마 쇼우각고에 입학을 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덩치도 일본말로 쓰기 읽기를 완벽하게 하고 수학천재 소리를 들으며 한국아이로 세번째 였다. 이미 (주)대우주재원가족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1학년 입학을 했지만 그 집은 두 명의 아이들이 남자4학년, 여자 2학년이었다. 나도 한국사람이 있어 안심을 하며 형과 누나가 있으니 잘 되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건 아니었고 이지매(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일본 아이들은 자기들이 싫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 제대로 응징을 한다. 일본에서 삼성의 위상은 대단하다. 남편이 (주)삼성(산세이노 재펜가부시키) 을 다닌다는 것을 알고 나서 그들은 조금더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우리가 먼저 말을 하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듣거나 자기들이 관시이 있어 물어 볼 때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야 한다.

이렇게 일본은 있다. 한국 사람에 대해서도 천천히 알려고 한다. 절대로 팍 다가오지 않는다. 잠깐의 여행을 통해 일본사람들이 친절하다고 생각을 한다면 그건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일본말에는 메이와쿠가 있다. 남에게 불편을 주면 안된다. 잘난척, 있는 척 너무 좋은 옷 또한 불편의 대상이 된다. 이것도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메이와쿠가 되는 것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88올림픽을 개최 안 밖이 대단했다. 일본에 여행 오는 사람의 행색을 눈여겨 보면 한국사람은 어디를 가도 표가 났다. 일단 여성들은 퍼머 머리에 옷의 색깔은 꽃분홍 원색으로 악세서리 착용은 필수였다. 이런 화려함에 일본 사람은 놀라기도 하고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부끄럽기도 했다.


그들의 문화는 가정에서 어떤 차를 마시며 손으로 만드는 작품을 학교 바자, 동네 바자에 기부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 사람 집에 갈 때는 손수 만든 음식(잡채, 김치, 불고기) 등을 가지고 방문을 해야 한다. 만약 준비가 안될 경우는 오미야게(2000엔)정도의 물건 엄마들이라 집에 있는 파, 무우, 생선, 쯔게모노 등. 준비해서 가면 된다. 차를 마실 때도 뜨게질을 하거나 퀼트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


한국 부모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

대우에서 주재를 나온 그 아이들은 2명이며 특히 남자아이는 일본아이들의 이지매를 당했다. 한 마디로 엄마가 너무 잘 난척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부모들은 유치원 다닐 때는 거의 아이의 행사나 참관일에 절대 빠지는 법이 없고 빠져서도 안 된다. 학교 참관일은 깨끗하게 단정하게 입으면 된다. 옷을 제대로 갖추어 입어야 할 날은 학교 입학식이다. 일본에서도 3월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날이라고 한다. 한국은 3월이 새학기 이면 일본은 4월이 새학기이다. 일본아이들이 대우 주재원 엄마의 옷 차림과 말투를 싫어 했으면 한 날은 엄마가 보는 앞에서 남자 아이 입안에 모래를 한움큼 먹이기도 했다. 그 당시 그 엄마와 난 동시에 보았다. 우리 아이도 물론이다. 정말 소름이 끼칠정도였다. 그 상황을 생각하면 일본 아이들 정말 순진한데 정말 꼴보기가 싫었을까? 그렇게 한국 엄마의 행동이 아이 눈에 거슬렸나. 그 가족은 그렇게 당하고 있다가 한국 발령을 받았다.


일본 주재원 생활은 남편만 일본사람들과 비지니스를 하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조금씩 엄마들과 관계를 잘 해 나가야 한다. 한국에서 오면 옷은 청바지로 입고 대체적으로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한다. 되도록이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도 권장 할 만 하다.


남편도 나도 잘 사는 환경에서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 일본 생활에도 크게 무리가 없었던 것 같다.

대기업 상사에서 일본 주재원 한 명 보내는데 돈이 많이 든다. (아파트 매월 임대료 동경 기준 40만엔)까지 고급 주택이나 맨션에 거주하게 해준다. 남편은 인정을 받는 사람은 맞다. 주재원 나온 사람들은 다 똑똑한 사람들이다. 보통 부모는 의사, 약사, 교수이며 서울 본사 소속이며 아내 역시 교사 약사이며 그 당시 학력은 보통 이화여대, 숙명여대가 많은 편이었다. 나와 남편은 지방대 출신이다. 내돈내산이라고 멋지게 하고 싶지 않을까? 연봉도 빵빵한데 그럴수록 더 겸손하고 조심을 하면 좋은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옷과 보석이 아니라 문화였다. 한국에 가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돈 자랑, 돈쭐내기 자랑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통하는 법이다.


한번씩 한국을 다녀가면 한국에서는 우리를 보고 일본 거지 온다고 했다. 참 나도 한국사람이지만 한국사람들 대단하다. 우리나라에 닥쳐올 IMF에 대해서 매일 일본 NHK 뿐 만 아니라 타 방송에서도 앞으로 힘들 한국이라는 방송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한국여성들은 그 당신 돈 좀 있고 옷 좀 입는 사람은 무스탕2벌과 밍크를 가지고 있었다. 가죽은 취급도 하지 않았다. 난 그 당시 가죽도 무수탕도 없었다.

KakaoTalk_20220405_095435069_02.jpg 여름방학기간이었다. 신발정리에도 일본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

아이가 행복했던 추억의 장소로 잠시 여행을 떠나왔다. 서로 사는데 앞 뒤도 돌아볼 여유없이 변변한 가족여행 한번 다녀오지 못했다. 남편의 발상으로 일본을 택한 것이다.

일본 아이들을 재치고 꼴등이 아닌 일등을 한 나라, 그리고 이 아이를 안아주고 쓰담 쓰담 해 준 나라.

"엄마 학교 다닐때는 학교 운동장이 너무 크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보통이야" 신발을 보며 자기도 신발장에 신을 가지런히 넣고 집에 왔단다. 다다이마,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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