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등과 일등을 둔 엄마의 선택-4회

일본을 가지 않았다면 꼴등을 면했을까?

유치원생 3년정도면 이제는 제법 어른 스럽습니다.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일본생활 중에서 유치원을 보낸 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핫한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친한 친구의 엄마들과도 지하철 역 부근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점심이나 저녁도 함께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엄마들끼리 만나는 시간은 좀 뜸한 편이며 주로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근처의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하며 놀았다. 엄마들은 아이가 놀 수 있게 모래놀이 장난감들을 들고 다녀야 한다. 집 근처 놀이터에서 마음껏 모래놀이를 한다. 처음 만나는 아이들도 모래놀이를 할 때는 정말 신나게 논다. 땅을 파고 모래를 담고 모래로 집을 짓고 모래를 꾹꾹 눌러주기도 하며, 모래로 다양한 놀이를 한다. 일본 놀이터는 어느 곳에도 수도시설이 되어 있다. 모래놀이를 하면 손도 몸도 지저분해지므로 집에 돌아가기 전에 대강이라도 씻겨서 데리고 집으로 간다. 아이들은 모래만으로 밀가루 반죽도 하고 동물도 만들고 낙서도 하고 다양한 놀이를 하며 논다.


한국에 들어 올 때 큰 아이와 똑 같은 세살의 남자 아이를 데리고 왔다. 우리 둘째이며 그 아이는 놀이터만 가면 모래를 가지고 심하게 놀아 온 옷이 모래투성이였다. 작은아이를 보고 한국 엄마들은 기겁을 하며 우리 아이가 엘리베이트를 타는 것조차 살짝 못 마땅해 하는 눈치로 보였다. 친하게 지내는 지인은 아이가 모래 묻은 손으로 현관에 들어서자 아이를 밖에다 내 놓기도 했다. 일본 문화와 한국 문화의 차이로 큰 아이도 작은 아이도 조금 힘들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유치원은 일년에 한번 부근의 초등학교 운동장을 빌려서 운동회를 개최한다. 5~7세 아이들이 운동회 시작 전 줄을 서서 원장 선생님의 지시에 따른다. 유치원에서 진 풍경은 찾아 볼 수 가 없다. 우는 아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 밥도 잘 안 먹는 아이, 엄마 보고 싶어 집에 가겠다는 아이들이 이렇게 달라도 너무 다르다.역시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은 살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행사 할 때는 으젖하고 절도도 있다.


일본 운동회는 가족, 친척들을 모시는 큰 행사라고 보면 된다. 추석, 설 다음으로 큰 행사이다. 이 날은 시댁, 친정 부모를 모셔 맛잇는 음식을 대접하는 날이기도 하다. 당신의 핏줄이 이렇게 잘 크고 있다고 신고를 하는 것이다.

우리 꼴등아이는 이 시기에 유치원 친구들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사랑을 받으며 팔방미남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런 사랑을 받아 자신감이 높아 자존감은 물론 높았다. 누구보다 운돈신경이 뛰어나 달리기, 체조 덤블링, 수영, 일본 친구들도 읽지 못하는 가타카나까지 다 알고 있으니 일본 친구들이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할 정도였다. 더 잘하는 것은 그림을 정말 잘 그렸다. 그 당시 일본에는 미술학원, 음악학원, 이런 예 체능 학원은 없으며 있어도 입시 위주의 학원으로 어린 아이들은 보내지도 않았다. 그나마 이 아이는 운이 좋아 주1회만 학원에 갈 수 있었다. 얼마나 신나하면서 미술학원을 다녔는지 모른다. 내 아이이지만 참 예쁘고 자랑스러웠다. 일본 아이들보다 건강하고 키도 크고 얼굴도 하얗고 잘 생겼고 하나를 가르쳐 주면 이해력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 아이도 나도 자랑하는 것이 있다. 일본에서 구몬수학을 다녔으며 전국에서 수학으로 동상을 받았을 정도로 재미있어 했다. 그런 아이가 한국에 들어와 매사에 흥미를 잃고 공부는 바닥을 치다니 . . . 씁쓸해진다. 눈치도 빠르고 관찰력도 뛰어나 한번 간 길은 절대로 잊어 버리는 일이 없는 아이였다.


일본에 대한 우리들의 감정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과 생활을 해 보면 일본 사람들도 괜찮은 사람들이다. 아파트 안에서도 친한 엄마들은 서로 품앗이 하듯이 물건을 살 때도 한 몫에 사서 나누어 가진다. 좋은 제품을 저 비용으로 구매를 할 수 있어 정말 좋다. 그러나 그 그룹에 아무나 배워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 여자의 생각은 잘 모르겠다. 나도 여자지만 깊게 생각을 하는 편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손해에 그렇게 연연 하지는 않는다. 그 점이 그들에게 좋게 보였는지 그 아파트에 한국 사람은 우리 가 처음이지만 잘 해주었다. 일주일에 한번 린코프와 에스코프 두 공동체가 번갈아 가며 좋은 식품들을 가지고 온다.

일본사람들의 웃는 얼굴 뒤에 숨겨놓은 얼굴이 있다. 절대로 친절하다고 속으면 안된다. 그건 공정하지 못한것, 대중 넘어가는 행동은 용서를 못한다. 일본 사람이라도 모두 정확하고 똑 뿌러지게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7년 가까이 살면서 물건을 나누는 날을 잊거나 어려 본 적은 없다. 어떤 엄마가 그 날을 잊었는지 분배를 하는 날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 날로 가십의 대상이 되며 집안에 갇히고 말았다. 그녀가 주문한 물건은 그냥 아파트 현관에 내 버려두고 아무도 챙겨 주지 않고 그들 물건만 챙겨 들어가 버렸다.

앞에서 스미마센(미안합니다) , 뒷 모습은 정말 냉정하다. 난 이방인으로 우리 가족은 참 많이 조심하며 살았다.


그들의 가정에서는 시끄러운 소리를 들어 볼 수 없다. 아이도 울지 않는다. 울기 전에 미리 안아 준다.

밤에도 들리는 소리는 있다. 밤 늦게 들어온 남편이 온수를 사용하기 위해 급탕을 틀어 주는 소리와 함께 물소리만 들릴 뿐이다.


우리의 일본 생활은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 온 아이는, 왜 힘 들어 했을까? 그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다 말고 선생님에게 따귀까지 맞다니. 그 이 후로 아이는 연필을 잡으면 손을 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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