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등과 일등을 둔 엄마의 선택-3회

일본을 가지 않았다면 꼴등을 면했을까?

꼴등아이는 일본에 있는 동안은 어디에서도 빛이 납니다.


한국엄마와 한국아이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 많지가 않네. 한국에 살고 있다면 친척이나 다니고 있는 동네 학원에라도 아이를 잠시 맡겨 달라고 부탁을 할 수 있지만 일본은 그런 사회가 아니다.

메이와쿠(迷惑) 를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절대로 남에게 폐 끼치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1988년 8월생이므로 1992년 4월에 유치원 입원을 할 수 있어 2년 정도의 공백을 어떻게라도 메워야 아이도 살고 나도 산다. 그런데 한국 엄마와 아이를 받아 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일본의 제도는 한국사람이 돈을 벌면 아내는 집에 있어야 한다. 겨우 아르바이트 정도는 허용이 되는 편이다. 그것도 까다로워 많은 심사를 거쳐야 한다. 어린이집은 일하는 엄마 일 경우에 일하는 장소에서 인정하는 서류가 있어야 제시해야 하며 한국사람의 아이가 어린이집을 보낼경우는 남편의 월급 10% 정도를 내야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일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집에 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보내는 건 무리라는 생각을 했다. 마침 공동육아 보육을 하는 곳을 상사의 부인을 통해 소개를 받게 되었다. 교회에서 운영하 곳으로 다케노코(죽순마을)이라는 이름이었다. 1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의 의식이 있는 엄마들이 주체가 되어 자기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공동보육체(교육공동체)의 형태였다. 엄마들이 교사가 되어 음악 전공자는 음악을 가르치고 미술 전공자는 그림을 가르치며,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 식사도 함께 준비를 하였다. 엄마들의 자 부담으로 이루어졌다. 한 주 프로그램, 한 달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대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난 할 줄 아는게 거의 없었다.

주 3회(월, 수, 금) 혹은 (화, 목, 금) 한국사람은 처음이라고 했다. 처음 2주 정도는 정말 힘이 들었다.

KakaoTalk_20220403_182349135_02.jpg 꼴등아이의 모습은 진지하기만 하다. 호기심이 많고 집중력 또한 높았다.


그들에게 우리는 이방인이요. 나에게 그들 또한 외국인이다. 다케노코의 보육은 아침 10시에 시작하면 오후 4시까지 수업이 진행된다. 정말 일본 엄마들 대단하다. 그 당신 보통 가정에 아이들이 2~3명 정도가 보통이었다. 그 아이를 업고 자기가 진행할 수업을 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엄마들은 어린아이는 손에서 놓지 않고 보듬어 준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도 않는다. 메이와쿠를 하지 않는다.


아이와 엄마가 공동보육 속에서 살아남는 법은 일본 사람들은 토이레(화장실)문화를 청결하고 깔끔하게 청소를 하는 편이다. 특히 미세(상점, 가게)에 가보면 화장실이 얼마나 깨끗한지 모른다.

나와 아이는 30분 일찍 도착하면 화장실 청소를 하고 아이는 미리 일본 그림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며 아이들이 오기 전에 준비를 하였다.


사진을 보면 이 아이가 꼴등을 하는 아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기 또래에 비해서 덩치도 있고 한번만 말해 주면 바로 따라서 하는 아이였다. 그림 속의 아이는 일본 아이들이 하는 행동 하나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보고 혼자서 연습을 하였다. 수업시간에도 얼마나 집중을 잘 하는지 모른다.


우리의 조그마한 잘못, 실수에도 한국사람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을 수 있어 노력을 많이 했든 것 같다.

그래도 일본 6년6개월 생활 속에서 일본 사람들과 함께 보낸 공동보육(다케노코)은 잊을 수 가 없다.

외국인, 이방인이 본국(일본)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일상생활을 이야기 하며 아이 문제로 서로 의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일본 사람들 중에도 엄마들 사이에서 이지매, 가고노도리(새장속의 사람)로 아이도 엄마도 설 자리가 없다. 엄마의 따돌림은 아이에게도 전이가 된다.


일본 아이는 약삭빠르고 민첩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 아이들은 어렸을 때 참 순진하고 착하며 매사에 느린 편이었다. 그에 비해서 우리 꼴등아이는 약삭 빠르고 뭐든지 일등을 해야 기분이 좋고 제대로 되지 않는 날은 밥도 안 먹고 완성할 때까지 끝까지 하기도 했다.


유치원 시절의 일이다. 하루는 유치원 교사가 전화가 왔다. 아무리 달래도 울기만 한단다. 엄마가 와야겠다고 연락이 왔다. 일본 유치원 교사는 책임감이 굉장히 강한 편이었다. 평소에도 유치원을 지나다 보면 유치원 교실이 보인다. 우는 아이는 손에서 놓지 않고 그 아이가 울음을 멈출 때가지 꼭 껴안아 주거나 수업시간에도 아이를 안고 수업을 하기도 한다. 평소와 다른 우리 아이를 달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은 도저히 달랠 수가 없다고 한다. 집 외에는 우리 가족과 있을 때 만 한국말을 하고 나머지는 일본말을 하는데 얼마나 화가 났는지 한국말만 해서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고 얼른 와 달라고 한다. 어린아이는 화가 너무 나서 자기도 모르게 한국말을 하면서 울기만 했다고 한다.

이유는 이랬다. 자기보다 먼저 완성을 한 아이를 보는 순간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고 한다. 이 아이는 일본에 살고 있는 동안은 그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이기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 아이들에게 이겨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아이가 찍은 사진을 보면 늘 다른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관찰하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자세를 보인다.

유치원 마츠리에 참석하기전에도 일본의상을 입고 일본 춤을 연습하고 또 연습을 했다. 혹시나 자기 동작이 틀리면 안되므로 다른 아이들을 관찰하며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KakaoTalk_20220403_192755268.jpg 나츠 마츠리 참석을 위해 연습하는 장면


이런 아이가 한국에 오면 왜 꼴등을 면하지 못할 까? 한국아이들은 정말 똑똑한가보다.

일본에서도 살아 남았는데. 은근히 이지매를 하는 환경 속에서도 살아 남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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