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등과 일등을 둔 엄마의 선택-11회

일본을 가지 않았다면 꼴등을 면했을까?

고요는 또 다른 폭력을 ,조용한 가운데 오는 엄습, 조용하면 무섭다.


한국에 들어 온 날 부터 정말 되는 일이 없다. 남편은 별 하나 못 달고 패잔병처럼 회사를 슬며시 그만 두었다. 혼자서 뭐라도 해 보겠다. 남편은 자기 생각대로 세상이 돌아갈 것이라 야심찬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큰아이도 조용하고 남편도 조용하고 작은 아이는 늘 방글 방글 웃고 다닌다. 문제는 언제든지 봇물터지듯 여차 없이 댐이 터졌다. 하수구고 저수지도 할 것 없이 주체 하기조차 힘들다. 일본 쓰나미가 밀려왔다. 강도가 너무 강해 아프다 소리 조차 할 수가 없다. 먼저 남편은 갑상선 수술도 잘 받고 회복도 잘 하고 건강도 좋아 일하는데 전혀 지장이없다. 그 당시는 그랬다. 회사를 그만두고 그 동안 일본 주재원을 하며 갈고 닦은 실력으로 사업에 본을 댄 것이다. 여성들에게는 육감이라는 촉이 있다. 이상하게 뭔가 잘 못되어 간다는 생각은 들지만 남편 하는 일에 이러쿵 저러쿵 간섭을 하면 남편은 화를 불 같이 낼 것 같아 그냥 입만 다물고 지켜 볼 수 밖에 사고를 쳐도 아주 크게 치고 있었다. 수산물과 관련된 공장 하나를 인수하여 일을 하고 있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5년 이상을 매월 마이너스 상황에서 직원들이며 할머니 알바비며 꼬박꼬박 돈이 지출되고 있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국내시장을 모르는 남편은 일본 시장만 믿고 무리하게 생선을 구매하였고 그 생선만 팔면 되는 줄 알았다. 생선이 크기는 너무 작아 손질도 어렵고 상품의 가치도 없어 보였다. 당황한 나머지 남편은 공장 하나를 인수하여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어렵사리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었으나 그 해는 풍어였다. 여기 저기서 너무 좋은 상품들이 너무 많이 잡혀서 남편이 수입해 온 상품은 정말 똥값이라도 아무도 사지 않게 되었다. 6년 동안 남편은 7억 이상의 빚을 진 것으로 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돈에 말리며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으로 몰리니 자살도 생각하게 되더란다. 남편이나 아이들이 미련해서 늘 한 참 후에 추억담처럼 말을 하는 편이다.


우리 가족들은 추억을 먹고 살아요, 아픈 추억도 추억이다.


남편 친구가 반 농담삼아 살기가 너무 힘이 들어 이제 내려 갈 곳도 없어요. 남편 친구 왈 "요즈음은 지하도 지하 나름이라며 5층도 낮은 반 지하도 있어요" 그래 지금 우리 상황이 그렇구나. 남편 사업은 망할 때로 망하고 큰 아이는 중2 올라오며 슬슴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집에 정도 붙이지 못하고 이리 저리 헤매고 다니는 것 같다. 집이 풍전등화라고 아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중2 초반까지는 성적을 떠나서 대학생 과외도 시키고 학원도 보내고 최선을 다했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도 되지 않았다. 나 에게도 충격이었나 보다. 어느 날부터 살이 빠지며 피곤함이 몰려왔다. 겨우 짬을 내어 여러가지 검사를 받았다. 유방암이란다. 그 때까지 우리친정에는 암 환자가 없었다. 유방암은 유전이라고 하는데 할머니도 엄마도 이모도 아니다. 나 만 그렇다. 흔히 유방암 환자의 특성과 나의 체형, 식습관 성격 등 유방암 걸릴 확률은 0.01%란다. 검사 결과를 보는 날도 혼자 갔었다. 의사가 가족하고 같이 왔느냐 혼자 왔다. 의사가 오히려 머뭇거려 "그냥 말해 주세요.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가 수술을 해야 하나요, 암이란다" 수술 하면 괜찮나요. 혼자 쫑알쫑알, 의사 왈, 현재는 크게 걱정할 건 아니고 0기라서 . . . . 혼자서 수술날까지 결정 한 후 정말 새털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일도 하고 집에 왔다. 남편도 나도 매사가 무신경한 사람이라 별 생각이 없었다. 친정엄마는 우시며 걱정이 태산이다. 정말 무식하면 용감한게 맞는 것 같다. 때론 필요하지만 때론 생각이라는 것도 하고 살아야 한다. 너무 생각이 없다. 너무 힘든 상황이 많아서 억지로 외면을 하거나 스스로 마음 속에서 철회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큰 아이는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져가는 것 같았다. 학교가 가기 싫은 날은 그 당시 눈병이 유행 했었다. 눈병이 난 아이들끼리 눈을 비비며 학교를 안 가려고 꾀를 부리며 부모가 없는 집을 아지트 삼아 게임을 하고 보내고 있었다. 수술을 받기 전날까지도 죽어라고 강의도 하고 수업도 하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하며 했다. 수술을 받으면 끝 나는 줄 알았다. 반 지하에도 또 지하가 있었다. 암은 0기가 맞다고 한다. 암의 종류가 너무 많아 수술한 부위를 판독을 한 결과 말기암이라고 봐야 한단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도 보호자를 찾았는데 판독결과 앞에서도 또 보호자를 찾는다. 무슨 일이지, 암 수술 잘 받았는데 이제 집에 가면 되는데, 청천 날벼락 같은 대사가 남아 있었다.


의사역할 "000씨는 방사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발성이라 건드리면 바로 퍼져 버린다. 그래서 유방 제거수술을 한 후 방사선으로 안 되고 함암치료12번 정도의 화학치료를 해야 한단다." 엄마에게 암이라고 말했을 때 엄마가 우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난 지금 꿈이면 좋겠다. 의사가 하는 말은 멀리 멀리 나비가 날아 가듯이 내 귀에 앉지 않고 빙글 빙글 맴돌기만 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메아리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내 이야기가 아닐거야, 다른 사람 이야기겠지 . .. . 난 내 몸이 작아지며 땅이 꺼진다는 것을 2번 경험 해 본 것 같다. 바로 그 순간에 정말 사르르 깔아 앉아 버리네. 그 때 신파극의 주인공처럼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 지금도 나는 한번씩 말한다. 사람들이 암적인 존재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런 이유이다. 아무리 세상은 살기가 좋아졌고 의료시설도 좋아져서 못 고치는 병이 없다고 하지만 암은 아니다. 암은 그냥 암적인 존재일 뿐이다.

KakaoTalk_20220411_183729496_14.jpg 이 스타일은 물건너 갔나요.(유방암환자)

우리는 계속해서 추억만 먹고 살 수 있을까?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 삶이 너무 고달프고 힘이 든다.

에릭슨의 발달단계를 통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부모에게 더 못 땐 아이처럼 행동을 하며 나쁜 친구들을 사귀며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건 자신이 밉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항(저항)을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큰 아이의 마음 속도 편하지 않았나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면 답답하니 더 나쁜 길로 빠지는 것 같아 보였다. 중학교 들어간 이후로는 거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든 아이가 한 아이에게만 엄마가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쳐 간다고 했단다. 그 말도 친구 엄마를 통해서 듣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큰 아이는 힘이 있었다. 반항을 하고 자기 저항을 하며 부모에게도 자기표현을 하고 기분이 나쁘면 밖에 나가 돌아다니는 행동 또한 자신이 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정말로 나약하고 무기력하며 우울하여 아무것도 하기 싫어 가만히 집에만 틀혀 박혀 있다고 생각하면 부모로서 더 미칠 것이다.

요즈음 일본이고 한국이고 청소년, 성인들 중에도 집에서 몇 년 동안 게임만 하고 밥도 혼자서 먹고 아무하고도 대화도 하지 않는 아이도 있다. 그래도 안심은 된다. 자기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의지는 살아있다.

난 나쁜 친구와 노는 아이가 나쁜 친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손뼉을 마주쳐서 소리가 난다. 큰 아이가 노는 친구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같이 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크게 작용한 것이다.


나도 한번씩 반문을 해 본다. 우리가 일본을 가지 않았다면 큰아이도 학업에 큰 문제없이 그럭저럭 성장하고 남편과 나는 대형 암 수술을 받지 않고 건강한 몸으로 살고 있을까?

KakaoTalk_20220411_183729496_15.jpg 박시한 옷으로 몸을 커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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