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애증은 사랑이었을까-3회

엄마를 사랑하기 위한 애증의 조건

한 때는 몸 서리 치도록 엄마를 사랑하기 위한 조건을 찾기 시작했었다.


엄마에게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엄마만의 독특한 목소리가 있었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갸냘픈 그녀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쓰러질것 같은 동정심과 연민을 충분히 자아내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어 어떤 날은 하던 업무를 대충 하는 둥 마는 둥하며 일을 내 팽개치고 헐레벌떡 거리며 달려 간 날 도 있었다. 도착 해보면 그녀는 목소리와 다르게 행동은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또 무슨 심사가 뒤틀렸나 화가 나서 나를 쳐다 보지도 않고 이렇게 말을 한다.


" 넌 내가 아이나 보고 있으니 웃습니" 일을 마쳤으면 바로 와야지 지금 시간이 몇시야, 이럴 땐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 당시 내 직장은 은행이다. 은행은 4시30분 셔터를 내려도 안에서 일을 한다. 그 당시는 수기로 기장을 하고 잔고가 1원이 남아도 1원이 모자라도 계산계가 계산 업무가 마쳐야 그날 마감을 할 수가 있었다. 엄마가 밉다 엄마가 야속 할 수가 없다. 그래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 인생은 그런대로 운이 좋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은행에 취업하며 영남본부로 발령을 받았지만 좀 더 일을 알고 싶어 지점 발령을 원해 A점포에 근무 중이었다.


결혼하고 큰 아이 출산과 함께 고민도 많았었다. 내 수입이 친정에는 큰 보탬이 되는 편이라 섣불리 직장을 그만 둘 상황도 아니었다. 엄마도 여러가지 앞뒤 전후 사정을 생각 했을 것이다. 그래서 흔쾌히 자기가 아이를 봐 주겠다고 하신것이다. 엄마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산후 휴가 6개월 후 바로 복직을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엄마의 마음은 갈대처럼 흐린날, 비가오는날, 먹구름이 끼며 태풍이 몰아치는 날 언제 어떻게 돌변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풍전등화처럼 늘 난 흔들리며 직장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한번은 올 것이 오고 말았다. 그 날 남편의 친구 회사에 잠시 들렀다. 마침 스피커 폰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바로 전화에 대고 " 육두문자와 함께 니 새끼 데리고 가, 너 뭐하는 XXX야 " 남편과 나는 친구 앞에 얼굴이 붉게 타올라 다음에 놀러 오겠다며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모르겠다. 그날은 우리부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이를 데리고 우리집에 왔었다. 그래도 남편이 고마웠다. 남편은 내가 번 돈은 친정 살림에 보태고 있는 것도 빤히 알고 있는데 엄마는 저렇게 말을 하다니 속상했다. 그리고 밉기도 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했었다.


엄마의 횡포는 말도 못한다. 이 놀부 심보는 엄마집과 우리집 아파트가 붙어 있다. 쉬는 날 조차 엄마의 레이다에서 벗어 날 수 가 없다. 엄마는 우리의 일거수 일수족을 관찰하고 있었다. 우리집 마당에 차가 없었단다. 한번은 모처럼 쉬는 날이라 우리는 큰 마음을 먹고 아이를 데리고 놀러 갔었다. 그 당시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그건 우리에게 큰 축복이었다. 우리 차가 집에 도착 한 것 까지 체크를 했는지 아파트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말자 전화가 울렸다. " 너희는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너희는 재미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 감기라도 걸리면 누가 혼나라고" 전화기가 부러질것 같다. 아니 내 고막이 터질것 같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


그래도 우리 엄마의 저런 모습이 당당해서 다행이다.


난 미술치료 공부를 하며 공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었다. 한번은 과제 중 9분할법을 하게 되었다. 엄마하면 떠오르는 것을 형용사 단어도, 혹은그림으로 표현하고 한다.

엄마 하면 책, 꽃, 요리, 글쓰기, 멋쟁이, 옷, 물조리개, 손자사랑, 신발이렇게 적었다. 그림과 단어로 표현을 하고 나서 보면서 엄마에 대한 느낌이 왔다. 참 예쁜 사람이구나, 전형적인 여성이구나, 사랑이 많은 사람이구나, 자연을 참 사랑하구나, 이런 사람이 어린시절에 겪었던 상처로 인해 감정기복이 심할 때는 자기도 자기의 감정을 조절하기가 힘들고 속상해 그렇구나. 사랑이 많이 그리운 사람이었구나. 기관지 확장으로 인해 한쪽 폐를 드러낸 수술을 한 후 매 순간을 숨차게 헐떡이며 살아가느라 많이 힘들었구나.


엄마를 사랑할 수 있는 조건을 찾기 시작했었다.

1. 우리 부모는 사랑하는 재주가 좋아 나를 남들 만큼 생기게 낳아 주었다.

덕분에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없이 꾸미는데 신경을 쓰지 않아도 크게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외모

엄마는 몸무게가 80kg이상 나가지만 난 몸 관리를 안해도 결혼전이나 결혼 후 지금까지 처녀 때 입든

옷을 그래로 입을 수 있는 체형을 주었다.


2. 처음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대기만성형으로 천천히 잘 할 수 있는 인내심을 주었다.

엄마에게 머리를 맞은 날 이후로는 혼자 스스로 공부도 숙제도 하게 만들었다.


3. 엄마의 사치와 허영에 비해 난 검소하고 근면절약하는 성격을 주었다. 엄마를 보면서 많이 배웠다.

난 저 행동은 하지 말아야 겠다. 참 살아있는 교육을 바로 바로 보여 주었다.


4. 이건 엄마를 존경한다. 책임감이 강했고 절대로 남들에게 굽히지 않았으며 삶이 힘들다고 자신을 아무렇게나 하지 않았다. 늘 귀하게 여기며 자기를 사랑했다.


엄마의 명언 " 절대로 힘들다고 할일 못 할일은 가려서 해라, 나중을 생각해서 행동을 해라" 남들 앞에 부끄러운 사람이 되면 안된다. " 저 사람은 누구 누구 밑에서 이런 일을 했단다" 너의 앞가림에 걸림돌이 되는 행동을 하지 마라. " 난 이 말을 늘 명심하며 살고 있다.


엄마를 사랑하기 위한 애증(애정)의 조건을 이렇게 찾아서 열거 해 보았다.

밥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가 안 나오고 나이 보다 동안으로 보이며 얼굴에 기미 같은 것도 없게 만들어 놓은 우리 부모님의 외동딸에 대한 사랑은 이리도 각별했었다. 우리 엄마 대단하다.

엄마는 화려한 왕이었다.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시기 전 컬러링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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