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애증은 사랑이었을까-5회

관찰한 것도 죄가 될까요?

관찰한 것도 죄가 될까요?


사람들 마다 각양 각색의 취미가 있다. 나의 취미는 사람을 쳐다 보는 것이다. 대중교통 속에서 창밖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을 쳐다보는 재미도 솔솔하고 지하철 안, 버스 안에 있는 인간군상을 슬쩍슬쩍 쳐다 보는 것도 감칠 맛 나게 재미가 있다. 그러나 이것도 대상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한번씩 엄마도 난 가만히 쳐다 본다.


내가 엄마를 조용히 쳐다 보는 날은 이유가 있는 날이다. 엄마가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 예뻐서 쳐다보며, 엄마가 슬퍼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 날은 말 없이 쳐다 보았다. 그런 날은 엄마에게 어김없이 틀켜 버린다. 엄마는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다. " 아니 넌 사람을 왜 그렇게 말끄러미 쳐다 보니, 기분 나쁘게" 또 오해를 받는다.


슬픔과 수심에 가득한 엄마를 웃게 만들어 주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어린 여자아이는 위로하는 마음으로 쳐다 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가 기분이 나쁘면 그건 기분이 나쁜 것이다.

이런 경험이 바탕이 되어 내 직업은 컬러리스트(컬러 전문가)일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첫 상담에서 내담자를 가만히 쳐다 보며 내담자의 말에 끝까지 경청을 하는 편이다. 중간에 내담자의 말을 끊지 않으려고 한다. 중요한 부분은 간단한 단어 정도로 체크를 해 둔다. 엄마를 관찰하면서 얻은 지혜라면 지혜이다.


사람과 사람간에 소통은 쳐다보는 것이다. 눈마주침(아이콘택)이 제대로 안되면 상담사와 내담자 사이에도 래포형성이 잘 된것은 아니다. 엄마와 나 사이도 마찬가지였다. 어리지만 엄마를 위로 해 주고 싶고 엄마에게 안기고 싶은데 엄마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이다. 자기 몸 하나도 간수 하기 힘들 때 딸아이 마저 매달리면 엄마의 몸은 천근만근 으로 금방이라도 쓰러질지 모르니 나를 밀어 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간은 왜 삶을 통해서 이런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 알아차리게 될까? 진작에 깨달았다면 좀 서운한 감정의 골을 만들지 않을 수도 있었을텐데.


티비를 보는 중 요즘 핫한 개 훈련(반려견)하는 장면을 보는 중 어미개가 새끼 강아지 한 마리를 집중적으로 공격을 하는 것이다. 아니 고슴도치도 지 새끼는 예쁘다고 하는데 어린 새끼를 미워한다. 이유는 엄마로서 책임이었다. 힘없고 아픈 강아지 한 마리에게 주는 사랑보다는 다른 새끼 강아지를 돌봐야 한다는 무게감이 짖누른것이다. 다시 말하면 엄마에게는 너무 많은 식솔을 책임져야 하므로 엄마는 지치는 모습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다. 긴장을 풀면 모든 것을 다 놓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다.


기관지 확장 수술로 한개의 폐로 숨을 쉬면서 엄마의 친정4명, 우리가족5명 9명을 때론 챙겨야 하니 그 무게감은 참 무거웠겠다.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숟가락 하나만 있어도 농사를 짓는다는 100주년 기념 하와이로 간 한국인에게 증명했었다. 난 엄마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죽 했으면 영도다리 밑에 엄마가 있다고 말하는 엄마의 말을 듣고 진짜 엄마를 찾아 가고 싶은 마음으로 들뜬 적도 있었다. 엄마가 그립다. 엄마가 보고 싶다.


막장 드라마를 보면 가짜 엄마 진짜 엄마가 판을 피며 혈육과 관계 된 말도 안되는 내용의 드라마 들이 언제나 인기가 있다. 늘 엄마 다. 그래서 난 관찰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랑을 받고 싶어서 언제 딩동하고 누르면 될가요? 사랑도 리필이 되나요? 오늘은 안녕하신지요? 말이 아닌 몸짓 눈짓 무언의 메시지 하나라도 주고 받기 위해서 난 관찰을 합니다. 내 60평생을 뒤돌아 보면 관찰을 한 시간이 거의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인가요? 그건 아니다. 오해를 하지 않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직 간접적으로 필요한 도웅을 주고 받을 수 있을지를 생각한 것이다. 남에게 굳이 피해를 주면서 살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한다.


오랜시간을 엄마를 관찰해 하면서 많이 배웠다. 엄마는 참 멋진 사람이다. 멋이라고 눈꼽만큼도 모르는 나의 시어머니도 눈썹 문신을 하셨다. 양가부모와의 상견례 날 시어머니는 A급 호텔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할 뻔 했다.

그날의 패션은 재래시장에 파는 월남치마와 목욕탕 플라스틱 슬리퍼를 신고 오셨다. 우리는 하마터면 상견례를 못했을지도 모른다. 남편이 미리 호텔 입구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왔었다. 그 당시는 5성급 호텔의 금기조항이 있었다. 바로 시어머니의 패션은 금기 조항으로 출입제한이었다.

그런 시어머니도 눈썹 이 지워지면 새로 하시고 머리 파마도 자주 하셨다.


엄마의 외모는 같은 여자가 봐도 참 세련된 미인이다. 일본사람들은 인사치례 정도로 젊은 여자에게는 가와이(귀엽다, 예쁘다), 기레이(고움, 예뿜, 청결함) 정도인데 엄마를 보자 일본사람 특유의 호돌갑과 함께 우츠쿠시(칭찬할 만큼 훌륭하다, 아름답다, 곱다, 예쁘다) 시쳇말로 잘 생겼다. 미인이다. 맞다. 그 흔한 보톡스 한번 안 맞고 눈썹 문신 하지 않고 웨이브 파마 한번 하지 않았다. 마음이 아파 감정조절이 안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번에도 엄마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다. 엄마를 보며 오랜시간을 관찰한 계기가 되어 일과 사람들 사이에서 큰 충돌과 오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에 감사를 해야 겠다. 여성분들과 함께 일을 하다보면 오해 아닌 오해로 구설수에 오르내릴 수 있는데 몇십년을 일하면서 큰 실수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당근과 채찍으로 매섭고 달콤한 훈련을 시켜 준 것이다. 엄마의 뜨거운 감자는 때론 쓴약으로 몸에 보약이 되어 나를 또 성장시켜 나간다. 내가 관찰한 진짜 엄마는 경제적 궁핍이 어느정도 해결 된 후에는 인자하고 지성이 넘치는 친손자 외손자를 마다하지 않고 한 아름에 안고 볼을 비비며 손자들의 놀이감을 직접 만드는 장인으로 내면과 외면이 동일했다. 우아하고 귀품있는 이 여사였다. 나름대로 직업정신을 할 만큼 관찰을 잘 했으니 이제는 관찰한 것도 죄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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