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욕심을 부리고 멍청하게 앉아 있으면 생기는 일, 주식투자 손실
기분 나쁜 꿈이었다.
사촌들인지, 친구들인지, 회사 동료들인지 모를 비슷한 나이 또래의 남녀 몇명에게 둘러싸여 있었는데, 모두가 나를 싫어했다. 깬 후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 어떤 구체적인 사건 때문이었는데, 온갖 비난과 질타를 받았고, 급기야 어떤 젊은 여자가 내 얼굴을 주먹으로 세게 연달아 가격했다. 얼굴을 맞은 후에도 억울한 마음으로 강하게 항변을 했는데, 자꾸만 발음이 새는 것이었다. 그럴 수록 더욱 큰 목소리로 배에 힘을 주며 소리를 내도, 정확하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대여섯 마디를 더 쥐어짜내니, 그들이 내 입을 가리키며 비웃기 시작했다. 나의 앞니가 덜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흔들리는 앞니 하나를 손가락으로 만져보는데, 툭 하고 빠져버렸다. 화들짝 놀라 다른 이들을 하나씩 만져보자, 만지는대로 치아가 우수수 빠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쏟아진 치아들을 양 손바닥에 조심스레 모아들고 '괜찮아, 다시 심을 수 있어' 라고 생각하며 치과로 가려던 중 잠에서 깼다.
이 빠지는 꿈은 가까운 사람의 사망이라고 했는데. 암막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밝은 세로 빛. 새벽에 깬 것은 아니다. 머리맡 핸드폰을 집게 손가락으로 건드려 시간을 보니 아침 7시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침대에 누운 그대로 하등 쓸모와 의미가 없는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이 빠지는 꿈의 다른 뜻이 기억났다. 손실. 이번에는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MSFT 330.72.
잠금상태 화면 위젯의 마이크로소프트 주가. 주초에 주당 360달러를 주고 산 내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이 연거푸 가격 하락을 하더니, 간밤에는 풀썩 주저앉아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내 주식계좌는 손실이 백만원을 넘어섰다.
변기에 앉아 백만원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지난 주말 애플샵에서 처음 보고 감탄한 (남편에게 사주고 싶었던) 최신형 애플워치 울트라가 백만원 초반이었다. 와인샵을 개업한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대형 화분은 10만원 초반으로, 그 돈을 선뜻 지출하는 것이 망설여져 주문을 주저하고 있다. 이제는 흔적없이 사라진 그 백만원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었던 모든 일들을 생각하자니 정말로 잇몸이 아픈 것 같다.
도대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코로나 증세를 호소하며 전염을 우려해 골방에서 혼자 자고 있는 남편에게로 갔다. 대뜸 물었다. '오빠, 어제 무슨 일이 있었어? 주식이 왜 이래?' 남편은 끙... 하는 탄식을 뱉으며, 눈을 찡그린 채 대답했다. '어제 GDP 발표했어.' GDP랑 주식의 관계는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 소식이 있었다는 사실에 약간 분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개꿈을 꾸며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미국에서는 GDP를 발표했고, 사람들은 지표가 시사하는 바를 읽어내고 서로 공유하며 주식을 팔아댄 것이다.
아, 이렇게 무지렁이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 감사하게도 온전히 모두 붙어 있는 이를 닦으며 생각한다. 칫솔을 입에 문채로, 팟캐스트 앱에서 'finance'를 검색하여 괜찮아 보이는 쇼를 모두 추가한다. 퇴사 전 회사의 중식대 포인트로 복지몰에서 구매한 방수 스피커를 켜고, 가장 최근에 올라온 에피소드를 틀어둔 채 샤워를 시작한다. 어젯밤 발표된 GDP를 비롯한 경제지표들이 좋았으므로 금리가 오를 것이며, 금리와 주식시장의 상관관계로 인해 주식시장에 타격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제라도, 그나마라도 배우기 시작한다. 게다가 막무가내로 추가한 새로운 팟캐스트들을 통해 좀 더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미치니, 두근대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괜찮아, 조급할 것 없어. 이제 시간 많으니 조금씩 공부하면 돼. 원래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래 가지고 있으려 했잖아.
그나마 퇴직금이 아직 들어오지 않아 자금 부족으로 (사고 싶었던 수량보다) 주식을 덜 매수했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아찔하다. 정말 이가 몽땅 빠질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