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임브라(Coimbra) 버스여행
파티마 당일여행을 성공리에 마치고 나니, 코임브라도 욕심이 생겼다. 파티마에서 포르투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찾아보니, 내일도 비 소식이 없다. 그리하여, 버스 안에서 다음날 코임브라행 왕복 버스표를 구매해버렸다. 이건 뭐, 본의 아니게 아주 알찬 포르투갈 여행이 되게 생겼다.
코임브라는 파티마보다 가까우니, 좀 더 느지막이 떠나기로 했다. 8:45 출발. 집을 나서 볼트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는데, 기사 아저씨가 아주 살갑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말을 걸어주시기에, 포르투 토박이시냐, 물어보았는데, 본인이 영어를 잘 해서 외국 출신인지를 물었다고 생각하셨나보다. "다들 그 질문들을 하는데, 조부모가 영국 출신이라 그렇지, 포르투 토박이야." 아, 그러시군요. 아저씨가 대화 중 자꾸만 나와 눈을 맞추려 뒤를 돌아보시는 것이 불안불안하다. 전방을 주시해주셨으면 좋겠는데… 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차가 어느 골목을 지나는 중, 아저씨가 오른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식당 완전 맛있는데. 늘 줄서서 먹어야하는 곳이야. 빵에 고기가 정말 뭉텅이로 들어가지." 라고 하셨다. 오, 맛집이라면 제가 또 관심이 많지요. "이름이 뭔가요?" 물어봤는데, 정작 아저씨 대답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철자가 어떻게 될까요? 물어보니, 아저씨가 운전을 하는 도중(!) 핸들 위에 주차권으로 보이는 작은 종이를 얹고 식당이름을 적어주신다. Casa Dos Presuntos “O Xico”. 구글맵으로 검색해보니 과연, 사진만 봐도 맛집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남은 포르투의 일정에서 (남은 식재료를 다 처리하느라) 가보지는 못했다.
코임브라행 Flixbus (버스회사)의 8:45 출발 버스. 버스 탑승 위치로 확인한 플랫폼 A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출발시각에서 오 분이 지났는데도 버스가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옆에서 직원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뭐라 안내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여자에게 다가가, 코임브라행 버스가 언제 오는지 물었다. 플랫폼이 O로 바뀌었으며, 5분에서 7분정도 늦을 예정이란다. 여자의 말대로 플랫폼 O로 이동해서 기다리고 있자니, 과연 버스가 8분 늦게 도착했다. 선방했다!
버스 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역시나 파랑에 초록. 겨울인데 이렇게 싱그러워도 되나. 덕분에 이런저런 상념들을 차분히 되새김질하며 코임브라에 도착했다. 어젯밤 예매해둔 코임브라 대학의 조아니나 도서관(Biblioteca Joanina) 입장권(13.5 EUR)은 10:40에 입장이다. 걷기에는 다소 먼 거리라, 볼트 택시를 타고 편하게 이동했다. 조아니나 도서관을 입장하자마자 볼 수 있었던 것은 Academic Prison(학생 감옥). 규율을 어긴 학생들을 구금(!)하는 곳이었단다. 건물의 위층으로는 십분가량 더 기다렸다가 입장할 수 있었다.
사이층(Intermediate Floor)에서는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이 가능하지만, 장엄층(Noble Floor)에서는 기록물 촬영이 금지된다고 했다. 플래쉬를 걱정해서 그런 것일까. 고서 보존을 위한 정책일 것 같으면서도, 못내 아쉬웠다.
눈으로만 담아 온 장엄층(Noble Floor)은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후각적 인상이 예상 밖이었는데, 들어서자마자 노인 냄새가 났다. 처음엔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이겠거니, 했지만 맡으면 맡을수록, 내 코에는 영락없는 노인 냄새였다. 노인들이 고서를 많이 읽어 냄새가 밴 것일까, 아니면 숱한 독자들의 체취가 책과 도서관에 묻은 채 나이를 먹은 것일까. 상상의 나래를 폈다.
짙은 색 오크나무에 금박이 된 기둥과 층계, 켜켜이 놓인 두꺼운 책들이 자아내는 장면을 배경으로, 층계참 위 책장에 보존처리한 책들을 꽂고 있는 사서 두 분이 계셨다. 두 분 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들이었다. 배경이 워낙 비현실적이라, 그녀들마저 마치 지식의 천국에 살고있는 요정들처럼 보였다.
조아니나 도서관 티켓에는 도서관 외에 다른 장소들도 입장할 수 있는 관람권이 포함된다. 도서관 출구 옆의 상미겔 예배당(S. Michael's Chapel)을 먼저 들렀다. 역시나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황금 잎사귀로 장식된 파이프 오르간과, 봄의 정원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천장.
그 다음은 왕궁(Royal Palace). 붉은 색 카펫이 깔린 강단 앞에 의자들이 놓여있는 예식홀(Ceremonial Hall)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금은 바탕으로 번갈아 장식한 천장에 고풍스러운 샹들리에까지, 은은한 조도가 차분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더했다.
티켓에 포함된 장소 중, 마지막으로 둘러볼 곳은 화학실험실(Chemistry Laboratory). 그런데 다른 장소들과 달리, 화학실험실은 조아니나 도서관 근처에 없었다. 구글맵으로 검색을 했더니 화학과 건물이 나왔다. 젊은 청년들이 드나드는 것을 보니, 지금도 강의실로 쓰고 있는 건물인 것 같은데. 진짜 여기가 맞나? 나 빼고는 관광객을 찾아볼 수 없어 의구심이 들었다.
조심스레 건물 안으로 들어가, 1층(그들에게는 0층)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여학생에게, 여기 화학실험실이 있나요? 물었다. 여학생은 너무도 친절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2층에 있어요, 라고 대답했다. 감사인사를 하고 올라간 건물은 몹시 조용했다. 감히 나 같은 관광객이 흐려서는 안될, 연구자들의 기운이 짙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관광객이 찾는 '화학실험실'과 학습과 연구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화학실험실'은 서로 다른 곳이겠지. 당연한 사실을 깨닫고서도, 혹시나 싶어 복도에서 마주친 남자에게 다시금 물었다. 두꺼운 안경을 끼고 턱수염이 덥수룩한, 키 크고 호리호리한 남자였다. “어떤 화학실험실을 찾으시냐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요.” 오, 그렇겠지요. 관광명소로서의 화학실험실을 찾는다고 하자, 그는 친절하게 ‘왕 동상’을 기준으로 길을 알려주었다. 잘 알아들은 체 했지만, 나는 '왕 동상'이 어디있는지 몰랐다.
관광객의 신분으로 남의 학교를 휘젓고 다니다보니 나의 학생시절이 떠올랐다. 세상 공부는 혼자서 다 하는, 예민하게 날이 선 학생이었던 그때, 학교를 찾는 관광객들을 마음 속으로 미워했었다. 진지하게 공부하는 곳을 구경하러, 놀러 온다니! 자식을 데리고 학교를 관광하는 부모의 마음이 어떤 것일지 짐작을 하면서도, 학교를 혼잡하게 하고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이 내심 거슬렸다. 그런데 인과응보, 자업자득이라던가. 졸업 후 십년이 넘게 지난 지금, 나의 모교 캠퍼스는 코로나 시국을 거치며 동문 카드가 있어도 재학생 동반 없이는 입장이 불가능한 곳이 되어버렸다. 싸가지와 재수가 동시에 없는 학생이었던 나는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왕년의 무싸가지 무재수를 한층 더 부끄럽게 한 것은 코임브라대 학생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진지한 용건 없이 자기네 학교를 찾은 관광객에게 친절하기 그지없는, 멋진 청년들이었다.
여기저기 길을 헤매다, 물어물어 화학실험실을 찾아냈을때는 점심시간인 오후 1시를 5분 앞둔 시각이었다. 1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 한 시간동안은 화학실험실 입장이 불가능하다. 멀리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싶지는 않아(다시 찾아낼 자신이 없어) 근처에서 시간을 때우려는데, 건물 바로 옆 카페테리아가 보였다. 따끈한 수프 한 그릇만 먹을 수 있을까. 배는 고프지 않지만 수프 한 그릇 정도는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들어가보니 꽤 자리가 차 있어, 직원분께 ‘수프 한 그릇만 먹어도 괜찮을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안 된다고 했다. 체념하고 나가려는데, 그녀가 포르투갈어로 긴 설명을 했다. 팔을 넓게 벌리며 'todos' (모두), 그리고는 '뷔페'라는 익숙한 단어를 말했다. 얼만데요? 물으니 종이에 숫자를 적어보이신다. 8.5유로. 예상보다 훨씬 싼 가격이다. 그냥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러자 그녀와 서버 분이 열띤 토론을 한다. 혼자 온 나를 어디 앉힐지가 애매한 것이다. 둘이서 긴 시간 고심한 끝에, 입구 쪽 2인석을 가리키며 앉으란다.
식사는 꽤나 훌륭했다. 생선요리가 두 가지 있었고, 돼지고기 스테이크 같은 것이 있었는데, 돼지고기 스테이크가 제일 인기였다. 나는 우선 수프 한 그릇을 달라고 하고, 생선 한 조각씩을 맛보기로 했다. 정어리 구이 한 조각, 대구보다는 식감이 좀 더 부드럽고 촉촉한 흰살생선 찜도 한 조각. 배추를 담백하게 볶아낸 듯한 채소요리도 달라고 했다. 여기서 그쳤어야 했는데. 뷔페라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버렸다. 포크 커틀렛도 한 조각, 라자냐도 한 조각 달라고 했다. 아주 조금만 주세요, 라고 했지만 직원 분이 인심 좋게도 잔뜩 담아주셨는지라, 포크 커틀렛과 라자냐는 대부분을 남겼다. 한 잔 가득 따라준 레드와인도 맛이 괜찮았다. 후식으로 파인애플과 초콜렛 케잌까지 먹고, 에스프레소로 마무리했다. 이 모든걸 8.5유로에 먹다니, 역시 대학교란 좋은 기관이야.
2시가 거의 다 되어 입장한 화학실험실은 기다림이 무색하게, 대단한 구경거리는 아니었다. 오래된 실험기구들을 볼 수 있었는데, 원체 과학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라 그런지, 도서관에서처럼 가슴이 설레이지는 않았다.
코임브라 대학은 이 정도 봤으면 됐다. 오늘은 포르투에 일찍 돌아가기 위해 이른 시각 버스를 예매해둔 터. 근처에 더 볼 것이 무엇이 있나, 보니 성당들이 있다. 신 대성당(Sé Nova de Coimbra)을 입장하려고 하니 입장료로 1유로를 내야한단다. 비수기라 성당을 찾는 사람이 워낙 적어서일까, 입장료를 받는(봉사자인지 직원인지 모르겠는) 분이 퉁명스러웠다. 그렇게 들어간 성당에는 나 혼자 뿐이라, 조용한 성당의 공기를 독차지할 수 있었다. 어제 파티마에서 생각했던 ‘뜻대로 하소서’를 읊조리며 잠시 앉아있다가 나왔다.
구 대성당(Sé Velha)도 있단다. 여기는 찾는 사람이 좀 더 많은 것 같다. 입장료(2.5 EUR)를 받는 분도 두 분이 계신다. 성당 안쪽 회랑과 정원도 가볼 수 있다고 알려주신다. 확실히 구 성당이 신 성당보다 더 아름답다. 세월이 쌓은 신비로움이 더해져서 그런 것이려나.
마지막으로 들른 성당은 산타크루즈 성당(Igreja de Santa Cruz). 여긴 입장료가 없다. 버스 시간이 가까워져 살짝 초조한지라, 간단히만 둘러보고 나왔다. 내부의 청색 타일이 멋진 성당이었다.
포르투로 돌아가는 버스 시각은 15:45. 35분 정도 남았다. 예기치 않게 성당들에 정신이 팔려 계획보다 조금 늦게 택시를 잡았다. 큰 길로 나와 택시를 타고 버스 티켓을 다시 확인하는데, 이런 제기랄, 버스 시간을 잘못 기억했었다! 기억한 것보다 20분이 이른 15:25이다. 오, 하느님 아버지시여. 아무리 제가 뜻대로 하시라고 했기로서니, 이렇게 바로요?
젊은 택시기사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눈치채고, 버스시간이 언제인지 묻는다. 세시 이십오분요, 라고 하자, 기사가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다고 나를 안심시켜준다. 살짝 마음이 놓였다. 기사의 노련함 덕분이었는지, 정말 그의 말대로 구글맵에서는 차로 12분 걸릴거라고 했던 거리를 6분만에 도착했다. 버스 출발 시간까지는 아직 4분이나 남았다. 내가 예매한 Flixbus 표시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버스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혹시 모르니 주위의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물어봐 두자. Flixbus 표지판 앞에 서 있는 젊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목적지에 상관없이 Flixbus는 다 여기서 타는거죠? 그러자 그는 자신있게 웃어보이며 그렇다고 한다. 어디를 가냐기에 포르투요, 했더니 본인도 포르투를 간단다. 15:25 출발 버스. 나와 같은 버스다. 이렇게 든든할수가! 이 사람만 잘 따라가면 되겠다 싶어 마음이 푹 놓였다. 브라질에서 왔다는데, 그는 영어가 어렵고 나는 포르투갈어를 몰라 긴 대화를 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출발시각에서 오분, 십분이 지나도록 버스는 오지 않았다. 레인 전체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Rede Express(버스회사)만 여러 대가 왔다 갔을 뿐, 우리가 기다리는 ‘Flixbus’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십오분이 지나 15:40이 되었을 때, Flixbus 한 대가 건너편 레인에 정차했다. 플랫폼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레인이었다. Flixbus 로고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브라질리언과 나는 함께 그 버스에 다가갔다. 브라질리언이 구글번역기로 ‘버스가 많이 늦었네요’라고 말하며 빙긋 미소지었다. 늦었어도 무사히 타면 되죠 뭘. 긴장이 풀린 나도 해맑게 웃어보였다. 버스에서 타고 있던 승객들이 다 내리고, 브라질리언이 기사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아뿔싸. 기사가 손을 내젓는다. 브라질리언과 기사가 두어마디 말을 나누는데, 눈치가 이 차는 아닌 것 같다.
다시 원래 기다리던 자리로 돌아왔다. 약간의 불안과 초조가 스며들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늦는다고? 16:15, 우리가 타야할 버스의 출발 예정시각에서 한 시간 가까이 지났을때, 이번에는 Flixbus 표지 근처로 버스가 한 대 더 왔다. 브라질리언과 내가 티켓의 QR코드를 내밀자, 기사가 스캔을 해보고는 고개를 젓는다. 이 차가 아니야. 그러자 브라질리언이 '그럼 제가 예매한 차는 도대체 어떻게 된거예요?!'와 같은 말을 포르투갈어로 물었다. 기사가 어깨를 으쓱하고선 '나야 모르지,' 같은 말을 하고는 돌아서서 승객들의 티켓 스캔을 계속했다. 알고보니 리스본을 가는, 우리가 타야할 차와는 반대방향을 가는 차다.
나와 브라질리언이 벙쪄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으니, 눈빛이 정의롭고 총명한 여학생이 내게 다가왔다. 함께 서 있던 남자친구에게는 먼저 타라는 손짓을 한 뒤, 내게 영어로 무슨일이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그녀는 Flixbus는 대체로 정시에 도착하는 버스라, 이렇게까지 (한시간이나) 늦을 리가 없다고 했다. 또, 내가(그녀가) 타는 이 버스는 리스본을 가는 버스이고 여긴 리스본을 가는 방향이니, 아마도 건너편에서 포르투를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을거라고도 이야기했다. 건너편?!?! 하자 그녀가 손가락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여기 주소에서 출발하는 거라고 했는데… 여기 주소에는 버스 기다리는 곳이 이 레인 뿐인데… 어쨌든 그녀는 버스를 타야했으므로, 알았다고 하고, 심심한 감사 인사를 한 뒤 보내주었다.
망했다. 브라질리언은 머쓱하게 웃었다. 본인은 두시반부터 버스를 기다렸단다. 출발시각 한시간 전부터 버스를 기다렸으니, 도합 두 시간을 버스터미널에서 대기한 것이다. 자기는 기차를 타러 갈 것이라며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너도 함께 갈래?라고 묻는 듯 했지만 나는 그를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선하고 무고한 브라질리언. 우리는 억울함을 공유했지만, 그를 따라가면 억울한 일이 더 있을지 모른다는 얌체같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기차라고 버스보다 순조로울 것 같지도 않았다. 포르투갈 기차가 못미덥다며, 우리 모두 Flixbus를 이용합시다, 라는 블로그 글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리언을 떠나 보내고, Flixbus 사이트에서 오늘 출발하는 버스를 검색했다. 16:30이 있었고 16:50이 있었는데, 다른 터미널로 이동해야할지도 모르니, 넉넉하게 16:50을 선택해서 구매했다. 버스요금은 하루 전 지불한 7.99유로보다 거의 두 배 비싼 14.99유로였고, 좌석이 딱 한 개 남아 있었다. 버스티켓을 구매한 후, 근처에 보이는 젊은이들을 공략해, 포르투 가는 버스는 도대체 어디서 타는 것인지를 탐문했다. 두 팀에게 물었는데, 모두 내가 원래 기다리고 있던 그 자리가 맞다고들 했다.
아냐아냐, 전문가에게 물어야겠어. 정차되어 있는 버스들 중 젊어보이는 (영어를 할 것 같은) 기사에게 뭐 좀 물읍시다, 말을 걸었다. 말을 걸자마자 ‘노 잉글리쉬’라는 대답을 들었지만, 나는 굴하지 않았다. 구글번역기를 사용해 ’포르투 가는 Flixbus 어디서 타요?‘ 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여기서 타는게 맞다고 확인해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람.
원위치로 돌아와 서 있으니 정말로 Flixbus가 한 대 왔다. 아까 예매하지 않은 16:30에 포르투 가는 버스다. 다들 정상적으로 잘만 탄다. 저걸 예매했어야 했네… 아까 '포르투 가는 버스도 여기서 타는게 맞다, 나도 16:50 버스를 탄다,' 고 확인해주었던 긴 머리의 여자가 빵을 우물거리며, 우왕좌왕하는 내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새카맣고 진한 눈썹에서, 그녀 또한 브라질리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Flixbus 고객센터에 환불요청을 하기 위해 상담 챗에 문의를 올렸는데, 한 시간쯤 지나서야 연결된 상담사가 15:25 버스는 6분 늦은 15:31에 출발했으며, 대부분의 승객이 문제 없이 탑승했다고 했다. 나와 브라질리언, 두 명이 네 개의 눈으로 대기 레인을 똑똑히 지키고 서 있던 시각이다. 출발 한 시간 전부터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안왔다니까요???? 몇명이나 탔길래 ‘대부분의 승객’이 탔다는 것인지 말해보라, 탑승하지 못한 승객은 몇명이나 되는지 확인해줄 수 있겠냐, 했더니 기밀이라 말해줄 수 없단다. 어쨌거나 남들은 잘 탔으니, 당신의 버스요금은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그렇게 두 배 요금을 한번 더 내고 포르투로 돌아왔다. 도착시간은 7시. 해가 지기 전 도착하여 모후정원 산책을 다녀오리라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볼트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요금이 제일 싼 이코노미 옵션을 선택했더니 기사 옆자리에 앉을 수 밖에 없는 작은 차가 왔다.
기사는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였는데, 대화 중 자꾸만 나와 눈을 맞추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제발 전방을 주시해주셨으면 좋겠다, 는 말은 이번에도 꾹 삼켰다. 브라질에서 오셨다는 기사분. 미국 올란도에서 산 적이 있으시단다. 포르투는 날씨도 좋고 물가도 저렴해서 미국보다 살기 좋다고 한다. 그가 너희 가족들은 모두 한국에 있냐고 물어 그렇다고 했더니, 가족이라면, 엄마, 아빠, 형제자매? 라고 묻기에, 네, 그리고 남편요, 라고 덧붙였더니 잠시 조용해졌다. 아이도 있냐고 묻기에 아이는 없다, 했더니 본인은 장성한 자식이 셋이나 있단다. 오늘 저녁에는 뭘 할 건지를 묻고, 너같은 미인이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포르투에 계속 산다면 참 좋을텐데, 라며 지그시 바라보는 눈길까지. 나는 여러모로 짜증이 났지만, 짜증도 다시 꼴깍 삼켰다. 어느덧 집에 도착했다. 여기가 맞냐, 어느 건물이냐, 재확인하는 기사 아저씨에게, 집 반대편 건물을 가리켜 보였다. 좋은 저녁 되세요, 하고 차에서 내렸다.
오늘의 교훈: 남에게 쉬이 얹어가려는 습성을 경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