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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카 Stica Jan 25. 2024

그저 멍하니 하늘, 구름, 강물, 지붕

리스본의 광장과 전망대, 상 조르주 성

한 곳에 오랫동안 여유롭게 머무는 여행을 하다보니, 계속해서 찾는 장소가 생긴다. 포르투에서는 모후정원을 질리지 않고 찾았고, 리스본에서는 호시우(Rossio, '거대 광장'이라는 뜻으로, 공식명칭은 Praça Dom Pedro IV, '동 페드로 4세 광장')에 자주 가고 있다. 처음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자주 나왔던 광장이라 마냥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여러번 보다보니, 호시우는 찾을때마다 뻥, 속을 뚫어주는 맛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닥을 가득 채운 물결무늬 위로 발을 내딛을 때, 둥실, 몸이 뜨고 시야가 트인다. 화창한 날이면 온 몸에 여과없이 내리쬐는 햇살을 맞을 수 있다. 그런 날에는 종일 광장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드높고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동상. 가끔은 그 위를 구름이 흘러, 또는 갈매기가 날아 가로지른다. 코메르시우 광장(Praça do Comércio)도 마찬가지로 널찍하고, 강을 마주보고 있는데다 멋진 버스커들도 구경할 수 있지만, 어쩐지 하염없이 앉아 있기에는 호시우가 제일이다.

제일 좋아하는 장소라면서, 찍어둔 호시우(Rossio) 사진은 동상 아래 주무시는 노숙자(좌)와 주말 시위 현장(우) 사진 뿐.
코메르시우 광장(Praça do Comércio)의 조세 1세 왕 (José I) 동상(좌), 동상 아래 둥그렇게 앉아 버스킹을 듣고 있는 이들(우)




리스본에는 올려다보는 풍경 뿐 아니라, 내려다보는 풍경도 멋진 곳이 많다.


상 조르주 성(Castelo de São Jorge)을 찾은 날은 별안간 폭우가 쏟아졌다가, 이삼십분 후 식초물에 말간하게 씻어낸 사과와 같은 모습으로 개었다. 멀리서 볼 땐 언뜻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이 연상되는 건축 양식이지만, 오르락 내리락, 거니는 동안 느낄 수 있는 분위기는 판이했다. 덜 장식적이면서 훨씬 가파르고 높다. 진초록의 고목들 위로 솟아나 있어, 인간이 자연을 극복하고 이룩한 듯 장엄한 인상이 풍긴다. 그 모습이 리스본 시내의 어지간한 전망대에서는 늘 눈에 띈다. 입장료가 15유로로 사악하고, 유명 관광지와 교통카드를 겸하는 리스보아 카드 (Lisboa Card)에 포함되지 않아 20% 할인만 된단다. 나는 리스보아 카드를 구매하지 않아 일반 입장권을 샀는데, 매표 직원이 26세 이하는 아닌지를 물어, 그만 입이 찢어질 뻔 했다. (26세 이하 청년에게 적용되는 우대가가 있다.) 

상 조르주 성(Castelo de São Jorge)의 극히 일부. 성 내부의 구석구석, 위치마다 전경과 매력이 달라진다. 

리스본을 조망할 수 있는 곳 중 가장 높다는 그리스도상(Santuário de Cristo Rei, 'Cristo Rei - 그리스도 왕'이라고 짧게들 줄여 부른다)을 찾아가서는, 저 멀리 내다보이는 강과 도시보다도, 먼저 그리스도상의 장엄함에 압도되었다. 구름이 꽤 끼어있는 날이었는데, 속도를 내며 움직이는 구름 탓에 비스듬히 올려다보이는 그리스도상이 두 팔을 벌린 채 강 위를 나아가고 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거세게 부는 바람에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는 그리스도의 석재 옷자락. 바라보고 있자니, 그 속으로 숨어들 수 있을 것 같은 안온한 느낌도 들었다.  

그리스도상(Cristo Rei)


시내에 전망대도 참 많다. 내가 제일 먼저 찾아가 보았던 곳은 상 페드로 알칸타라 전망대(Miradouro de São Pedro de Alcântara). 그땐 터번을 쓰고 기타를 치며 미국 노래를 하는 버스커가 있었다. 화려한 장식이나 건축물 없이 소박하고 단순하며, 오래도록 앉아 쉴 수 있는 벤치가 넉넉한 공간이었다. 


알칸타라 외의 다른 전망대는 갈 생각이 없었는데, 치앙마이 요가원에서 만난 포르투갈 친구가 야무지게 5일 짜리로 엮어준 일정표에 안 가본 전망대가 세 곳이나 있어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라사, 포르타 두 솔과 산타 루치아 전망대까지, 날 좋은 때를 골라 종일 신나게 돌아다녔다. 전망대마다 조성된 장소의 느낌, 모여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각기 달라 더욱 재미있었다. 


그라사(Miradouro da Graça)는 아침 일찍 찾아가서 그랬는지 좀 더 호젓한 맛이 있었다. 커다란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시내 전경이 정답다. 왼편으로는 테이블이 잔뜩 마련되어 있는데, 여름 성수기에는 그 공간이 가득 차 시끌벅적할 수도 있겠다. 포르타 두 솔(Miradouro das Portas do Sol)은 드넓고 파아란 하늘에 그라데이션을 넣으며 펼쳐지는 강의 수평선이 어딘가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전망을 완성한다. 에스프레소와 스낵, 맥주 등을 판매하는 키오스크가 있는데, 강을 바로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테이블이 여럿 마련되어 있다. 햇살을 맞으며 에스프레소와 맥주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몹시 평화롭고 여유로워보였다. 그리고 포르타 두 솔에서 약 일이분 내려가면, 그 바로 아래에 산타 루치아(Miradouro de Santa Luzia)가 있다. 청아한 아줄레주 벽면, 그 위의 둥근 아치,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각자 어우러져, 아름답다는 표현이 제격이다. 내가 찾았을 때는 아줄레주 벽면에 기댄 채 바닥에 누워 이불을 덮고 주무시는 분이 한 분 계시기는 했지만, 모두들 특별히 신경쓰지는 않는 눈치였다.


그라사(Miradouro da Graça)와 포르타 두 솔 전망대(Miradouro das Portas do Sol)




위로 보고 아래로 보고, 요리조리, 멍하니 그저 바라보고 있자면, 볼 수록 정이 간다. 리스본이 친한 친구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포르투에 있다가 리스본에 오면 포르투 앓이를 한다는데, 내 경우 그렇지는 않다. 포르투는 이해심 많고 푸근하며, 맛있는 걸 턱턱 잘 사주는 선배언니였다면, 리스본은 다소 성마른 구석이 있지만 그만큼 주관이 확고해,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그래서 배울점 많은 동기생 같은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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