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청소년 정신과 ep.1-2

'충분히' 좋은 부모

by 어른이

"안녕 하나야. 여기 주치의 선생님이랑 이야기했지? 선생님은 주치의 선생님이랑 같이 일하는 선생님이야."


평소보다 더욱 부드러운 말투로 교수님이 하나에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하나가 입원해 있는 동안 선생님이 주중에 매일 보러 올 거야. 주말에는 선생님은 안 오고 주치의 선생님이 하루 보러 올 거야. 그리고 주치의 선생님이 했던 얘기는 선생님이랑 공유하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된단다."


"네."


"그래. 입원하니까 어떻니?"


"입원하기 전에는 무서웠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거 같아요."


"그래? 어떤 게 무서웠니?"


"음 솔직히 정신병원이라고 해서 이상한 사람들 많고 그럴까 봐 무서웠어요. 근데 보니까 저랑 나이 비슷한 애들도 있고 별로 이상한 사람은 없는 거 같아요."


"그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그런 사람들은 사실은 잘 없단다. 여기 입원한 사람들은 어딘가 마음이 아파서 온 거야. 몸이 아프면 병원에 오듯이 마음이 아파도 병원에 오는 거지."


교수님은 다음 말을 생각하는 듯, 하나의 반응을 살펴보려는 듯 잠시 공백을 두었습니다. 하나는 저와 이야기할 때보다 약간 긴장한 듯, 질문에 더 성실히 대답하려고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보다 키가 큰 어른 3명이 앞에 서 있으니 긴장될만합니다.


"하나는 입원해서 뭐가 가장 바뀌고 싶니?"


"음... 죽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저와 이야기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왜 입원했는지' 물었고, 하나는 '죽고 싶다고 해서'라고 대답했었습니다. 좀 더 능동적인 아이로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구나. 하나가 죽고 싶은 생각 때문에 힘들구나. 하나는 죽고 싶은 생각이 왜 들었던 것 같니?"


"음... 잘 모르겠어요."


"그래. 아직은 잘 모를 수 있어. 그래도 그런 생각이 왜 드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단다. 우리 주치의 선생님이랑 이야기 나누면서 조금씩 알아가 보자."


"네."


"그래. 하나는 평소에 뭐 하면서 노니?"


"저는 그냥 친구들하고 놀 때도 있고 남는 시간에는 집에서 휴대폰 해요."


"그렇구나. 여기서는 휴대폰이랑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꾸나. 프로그램도 참여하고, 뭐 하면서 지낼지 고민하렴."


"네."


"그러면 잘 지내고 내일 보자꾸나."


생각보다 특별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회진이 끝났습니다. 교수님은 환자와 잘 이야기해 보라며 당부의 말 한마디를 하고 병동을 떠났습니다. 선배는 저와 이야기하자며 스테이션으로 함께 돌아갔습니다.


"회진이 끝나면 교수님은 보통 바로 가시니까 저랑 이야기하면 돼요. 약 처방은 큰 방향은 교수님이랑 같이 정하지만 자세한 용량은 저랑 같이 얘기해서 정하면 돼요. 아까 선생님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유추해 보고, 모르는 거는 확실히 모른다고 하는 것이 훌륭했어요."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하하."


"교수님 질문에 모두 대답하기는 불가능해요. 그래서 그렇게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잘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죠. 그래도 교수님이 어떤 질문들을 하시는지 잘 보다 보면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힐 거예요. 우선은 아이랑 이야기 충분히 해보세요. 라포를 잘 쌓아봅시다."


그렇게 첫날 회진은 끝났습니다.




둘째 날 오전, 치료실에서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는 다른 아이들 사이에 있는 하나를 불렀습니다. 하나는 하던 일을 덮어 두고 책상에 놔둔 채 치료실을 나왔습니다. 함께 면담실까지 걸어가는데 가볍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어제는 잘 잤니?"


"네. 조금 뒤척이긴 했는데 잠들고 나서는 잘 잤어요."


"그래 다행이네. 병원밥은 먹을 만하니?"


"밥은 별로 맛이 없어요."


"아이고 그렇구나. 병원 밥이 부실하긴 하지."


정신과 병동에서는 환자들이 먹은 식사량을 다 체크하기 때문에 하나가 전날 식사를 모두 먹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맛이 없었는 데에도 잘 먹었구나 싶었습니다. 면담실에 도착해서 하나가 창가 쪽 안쪽 자리에 앉고, 저는 출입문쪽 자리에 앉았습니다. 정신과 면담실에서는 치료자가 출입문 쪽에 가까이 앉는 것이 원칙입니다. 혹시 모를 유사시에 대피할 퇴로를 열어 두는 것이죠. 물론 하나가 그런 일은 없었지만요.


"오늘은 기분이 어떻니?"


"음 그렇게 나쁘진 않아요. 입원해서 그런지 죽고 싶은 생각도 딱히 안 들었어요."


"그렇구나. 다행이네. 오늘 오전의 기분을 0점에서 10점 사이로 표현하자면 몇 점 정도인 거 같니?"


"음.. 한 4,5 점?"


"그래? 몇 점 정도가 되고 싶니?"


"한 7,8점 정도 돼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어제는 몇 점 정도였니?"


"어제는 1,2점? 별로 안 좋았어요."


"그래. 선생님도 계속 물어볼 거긴 하지만 하나도 매일 기분을 기록해 보는 게 어떨까? 그렇게 하면 하나가 좋아지는지 확인할 수 있을 거 같아."


"네. 어떻게 기록할까요?"


"하나 공책 가지고 있지? 공책에 하나 기분을 오전, 오후, 저녁으로 나눠서 표를 그려서 점수를 써보는 게 어떨까?"


"네 좋아요."


하나는 어제 처음 봤을 때보다 표정이나 말투가 밝아진 모습이었습니다. 입원을 해서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있을 수 있고, 아니면 감정기복이 있는 것일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 고맙다. 오늘은 어떤 얘기를 해보고 싶니? 선생님이랑 얘기해보고 싶은 거 있니?"


"음.. 인간관계 얘기를 해볼까요?"


"좋지. 하나는 인간관계가 어떤 편이야?"


"친구들하고는 좋은 편인데 가족들하고는 별로 안 좋아요."


"그래? 친구들하고는 잘 지내는구나. 하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이미지야?"


"저는 모두한테 잘하는 스타일이에요. 저희 반에서 저를 싫어하는 애는 없을 거예요. 소위 일진 같은 애들하고도 인사하면서 지내고 소외된 애들한테도 먼저 말 걸어주고 그래요."


"그렇구나. 하나 인기의 비결이 뭐야?"


"음.. 저는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어요. 남한테 피해 주는 거를 정말 싫어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가 많아지고 싸울 일도 없고 하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럴 수 있겠다. 가족들하고는 어떤데?"


"제가 그러는 것도 싫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도 싫어하거든요. 저희 가족들이 배려심이 좀 부족해요."


"오호 그렇구나. 예를 들어줄 수 있을까?"


"음 예를 들면 저희 아빠는 밤늦게 들어올 때도 있는데 저희가 다 자고 있는데 막 시끄럽게 해서 다 깰 때도 있어요."


"얼마나 시끄럽게 하시는데?"


"막 소리 지르고 그런 건 아닌데 현관문이 쾅 닫히면 다들 깨잖아요. 그리고 평상시에도 집에서 걸어 다닐 때 쿵쾅대며 걸어요. 저는 층간 소음 생각해서 사뿐사뿐 걷거든요."


"그래? 어머니는 어떠신데?


"엄마도 배려심이 없을 때가 있어요. 사춘기 소녀 방에 들어올 때는 조심을 해야 하는 건데 그냥 노크도 없이 들어올 때가 있었어요."


"그래? 뭔가 하고 있는데 갑자기 들어오시고 그러면 놀라긴 하겠다."


"그러니까요. 제가 뭐 은밀한 거를 하는 건 아니지만 놀라긴 하니까요."


"또 가족들이 배려심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었니?"


"부모님은 계속 그래왔으니까 그러려니 할 수 있는데 사실 남동생이 제일 문제예요. 자꾸 집에서 큰소리 내고 뛰어다니고 그래요. 저 공부하고 있는데 자꾸 놀아달라고 방에 들어와서 방문을 닫고 잠갔는데 그래도 방 밖에서 놀아달라고 소리 지르고 그래요. 애가 어리긴 한데 제가 저 나이 때는 안 그랬거든요."


하나는 자신에게도 엄격했지만 가족들에게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만큼 가족들도 자신을 배려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3살 된 남동생에게도 그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남동생에 대한 질투심이 있어서 부모님과 남동생이 미운 마음이 들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어 가족들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방어기제를 사용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다른 얘기 조금만 더 하고 면담 마무리 하자. 하나는 취미가 있니?"


"지금은 별로 안 하는데 원래 그림 그리는 거를 좋아했어요."


"오 그래? 어떤 그림?"


"웹툰이랑 웹소설 같은 거 좋아해서 그런 캐릭터 그리는 거를 좋아했어요. 이전에는 많이 그렸었는데... 입원해서 할 게 없으니까 그걸 다시 시작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그래 좋은 생각이다 하나야."


"근데 그걸 하려면 패드가 필요해요. 근데 간호사 선생님한테 물어보니까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그러면 한번 방법을 찾아보자. 병동 규정이 있으니까 어떻게 할지 교수님이랑 이야기해 봐야겠네."


"네."


"그래 그러면 이따 회진 때 보자. 고생했다."


두 번째 면담은 이렇게 끝내고 둘째 날 회진을 했습니다.



둘째 날은 오후 5시경 늦은 시간에 회진을 시작했습니다. 교수님, 선배와 스테이션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래 박 선생(선배)은 어제 잘 들어갔나?"


"네 교수님. 지하철역에 내려주신 덕분에 편하게 들어갔습니다."


"그래. 김 선생은 다음 소아파트 회식 때 참석하면 되겠네. 좋아하는 음식 있나?"


"저는 뭐든지 잘 먹습니다. 양식, 고기, 일식, 중식 다 좋아합니다. 하하"


"그래 그러면 나중에 장소를 알려주겠네. 그러면 시작해 볼까? 하나는 어떤가?"


"네 교수님. 하나는 오늘 기분이 10점 만점에 4,5점 정도라 하고 어제는 1,2점 정도였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말수나 톤이 높아진 게 기분의 변화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 어떻게 기분이 좋아졌지?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리가 되면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데, 하나가 밖에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나?"


"특별히 큰 스트레스 요인은 없었던 것 같지만 오늘은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했습니다."


"그래 무슨 얘기를 했나?"


"하나가 평소에 본인이 화도 안 내고 남을 배려하는 걸 중요시 생각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고 관계가 좋은데, 가족들은 배려심이 없다고 불만이 많습니다. 아버지는 밤늦게 퇴근하고 집에 들어올 때 시끄럽게 해서 자고 있는데 깨게 되고, 어머니는 방문을 노크 없이 열고, 남동생은 공부하는데 자꾸 놀아달라고 하고 시끄럽게 한다고 합니다."


"그래? 남동생이 이제 3살 아닌가?"


"네 들어보면 3살이어서 그럴 수 있는 정도의 행동인데 그걸 잘 못 받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구나. 하나는 가족들에게 그런 불만을 얘기할 수 있었나?"


물어보지 않은 질문이 나왔습니다. 머릿속에서 면담했던 기억을 뒤져보았지만 유추해 볼 만한 근거도 없었습니다.


"하나가 그런 불만을 가족들에게 얘기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음... 그래."


교수님의 '음...'은 저에 대한 실망인지, 다음 질문을 생각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불편한 정적을 깨기 위해 먼저 추가 정보를 던졌습니다.


"하나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잘 안 했는데 웹툰이나 웹소설 그림을 패드로 그리는 거를 좋아해서 입원해서 다시 시작해 볼까 하고 있습니다."


"그래? 뭔가 해보려고 한다니 반가운 얘기네. 가만, 그러면 하나가 패드를 쓸 수 있나?"


"네 본인 패드 가져오면 공부나 그림 그리는 목적에 한해서 하루에 1시간씩, 면담실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걸로 하고 있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선배가 대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하나가 패드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네. 아이랑 상의해서 하루에 몇 시간, 어떤 활동을 할지 정해봐 김 선생."


"네 교수님."


"더 할 얘기 있나?


"아뇨 다 얘기한 것 같습니다."


"그럼 아이 보러 가지."


하나가 있는 병실로 갔는데 침대에 이불 덮고 누워 깊게 잠들어 있었습니다.


"하나야, 교수님 회진 왔다. 일어나렴."


불러도 깨질 않아서 좀 더 큰 소리로 불렀더니 그제야 눈을 천천히 뜨면서 느린 동작으로 몸을 일으켰습니다. 눈이 덜 떠진 채로 부스스한 머리를 가볍게 정리하고선 안경을 쓰고 침대에서 나왔습니다. 눈이 부신 듯 눈을 치켜뜨며 슬리퍼를 끌고 복도로 나왔습니다. 나오는데 1분 정도 걸렸는데 교수님과 선배는 차분히 기다려 주셨습니다.


"선생님이 자는데 깨웠구나. 얼마나 잤니?"


"아니에요. 지금 몇 시예요?"


"어디 보자 5시 반이네?"


"음 한 3시쯤 누웠으니까 1시간 반정도 잤네요."


"아이고 그렇구나. 낮에 이렇게 자면 밤에 자기 힘들지 않니?"


"그러진 않아요. 저는 하루 종일 잘 수 있어요."


"그렇구나. 그래도 낮에는 깨어있는 게 좋단다. 그래야 밤에 수면의 질이 더 좋아지기도 하고, 낮에 활동을 해야지."


"네 그렇죠..."


"너무 졸리면 2,30분 정도 자는 건 괜찮지만 이렇게 오래 자는 건 좋지 않단다."


"근데 여긴 알람이 없으니까 그렇게 잠깐만 잘 수가 없어요."


"그래? 그러면 간호사 선생님한테 깨워달라고 이야기하렴."


"그래도 돼요?"


"물론이지. 여기 있는 선생님들 모두 하나 위해서 할 수 있는 거는 다 해줄 수 있으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하렴."


"음... 뭔가 미안한데.. 다들 바쁘시잖아요."


제 생각에도 간호사 선생님을 알람시계처럼 사용해도 된다고 하면 간호사 선생님들이 안 좋아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하나가 필요한 거는 이야기해 줘도 된단다. 병동 규정상 안 되는 것도 있겠지만 이야기는 해볼 수 있어."


"네... 얘기해 볼게요."


"그래 잘 생각했다. 오늘은 기분이 어떻니?"


"아... 음... 그저 그래요."


오전에는 저한테 기분이 좋아졌다고 얘기했는데 다르게 말해서 제가 교수님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 되어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하나는 잠을 깨워서 짜증스럽다는 듯이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습니다.


"그렇니?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냈니?"


"아침에 면담하고 프로그램 두 개 참석하고서 아무것도 안 했어요. 아 맞다 아까 주치의 선생님이 적으라고 한 거 가지고 올게요."


하나가 병실에 들어가서 공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자로 그은듯한 곧은 선들이 교차하는 표가 그려져 있었고, 가장 왼쪽 위의 두 칸에는 숫자 5, 3 이 쓰여 있었습니다.


"오 그래 이게 뭐니?"


"제 기분을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눠서 적기로 했어요."


"그래 좋은 생각이구나. 아침에는 기분이 5점이었는데 점심에는 3점으로 떨어졌구나. 지금은 몇 점 정도 될 거 같니?"


"음.. 2.5점? 점심보다 조금 더 안 좋은 거 같아요."


"그래 이렇게 숫자를 적으니까 좋구나. 가능하면 숫자 옆에 간단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어보면 어떨까? 예를 들면 오전에 면담했다거나 점심에는 밥이 맛이 없었다거나 이런 사소한 거라도 말이야."


"음.. 점심에는 뭐 생각나는 게 없는데.. 암튼 그렇게 해볼게요."


"그래. 하나는 또 필요한 거 없을까? 선생님한테 부탁하고 싶은 거라든가 하고 싶은 얘기라든가."


"음... 특별히 없어요."


"그래. 그러면 잘 지내고 내일 또 보자꾸나."


그렇게 회진이 끝났고, 하나는 병실로 들어갔고 저희는 병동 출입구 쪽으로 갔습니다. 교수님은 병동 문을 바로 나서지 않고 이야기를 더 하자며 다시 스테이션으로 돌아갔습니다.


"간호사 선생님한테 깨워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그렇고, 마지막에 필요한 거 있는지 물어봤어 패드 얘기는 꺼내질 않는 거를 보니 하나가 원하는 거를 잘 얘기를 못하는 면이 있는 것 같네."


"아 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집에서도 본인이 원하는 거를 잘 이야기 못했을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하나가 감정 기복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예민해질 때가 있을 거 같네. 그런데 남한테 피해 주는 거는 또 싫어서 학교에 있을 때나 남들하고 있을 때는 최대한 예민해지지 않으려고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일과가 끝나면 다 소진이 되는 거지. 오늘도 점심시간에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하는데 아마 프로그램 참석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썼을 거야."


"아 그래서 피곤해서 낮잠을 잔 것이 군요."


"아무래도 그럴 거 같지. 아까도 회진 처음 시작할 때는 조금 짜증을 내는 것 같더니 금방 다시 예의 바르게 하잖아? 본인은 짜증을 안 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집에서는 어떨까?"


"아무래도 부모님은 좀 더 편하다 보니 짜증을 그래도 표출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지. 화를 내도 될만한 대상에게 displace(전치)했을 가능성이 있어. 그런데 또 본인이 가족들에게 짜증 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가 힘들 거야. 그러다 보니 되려 부모님이나 남동생이 배려가 없다고 생각하고, 알게 모르게 조금씩은 티를 냈을 거야. 아이들이 그걸 완전히 숨기는 것은 어렵거든."


"아아.."


제가 대답하지 못한 교수님이 했던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 교수님은 저렇게 유추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가족들은 하나의 눈치를 보게 되는 거지. 남동생은 아직 어려서 눈치 없을 수 있겠지만 부모님은 그거를 모르기가 힘들거든. 그런데 부모님은 하나한테 신경을 써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고 있기도 해서 하나에게 맞춰 주려고 했을 거야. 그런데 아무리 잘해주려고 해도 현실적으로 하나에게 모든 걸 맞춰 줄 수는 없거든. 그러면 부모님은 하나의 짜증을 들을 수밖에 없는데, 하나의 짜증을 받아주기보다는 남동생을 키우는 것이 편하니까 실제로 남동생을 더 편애하게 됐을 수도 있어."


"그렇군요. 그러면 하나는 더 불만이 쌓이고, 더 짜증을 내게 되고 부모님은 더 피하게 되고, 악순환이 생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음... 하나의 짜증을 다른 방식으로 덜어내거나, 부모님이 하나의 짜증을 받아 줄 수 있게 하거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게 모두 이루어져야 하는 거야. 한쪽만 바뀌어서는 다시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커. 그래서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도 볼 줄 알아야 해. 소아파트는 이게 어려우면서도 보람이 있는 부분이지."


"와 그렇군요. 이렇게 설명이 된다는 것이 정말 신기합니다."


"그래도 속단해서는 안돼. 이거는 하나의 가설일 뿐이고 앞으로 이 가설을 계속 검증해나가야 해."


"네 명심하겠습니다 교수님."


"그래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수고해 주게나."


교수님은 가시고, 선배와 둘이 남아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배는 교수님의 혜안에 감탄한 듯 조금 고양된 듯했습니다.


"참 교수님은 대단하신 것 같아요. 우선 시간이 늦었으니 저희도 빠르게 두 가지 얘기를 하고 끝냅시다. 첫 번째는 이 아이의 진단이 무엇 일지와 그래서 무슨 약을 쓰면 좋을지 생각해 봅시다. 어떤 거 같으세요?"


"오늘 보니까 기분의 변동성이 커 보이는데 혹시 혼재성 삽화에 있는 것은 아닐지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 그래요 훌륭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Mixed feaures 라면 약을 어떻게 쓰는 게 좋을까요?"


"아무래도 양극성 장애로 진단된다면 valproate 같은 mood stabilizer를 쓰면 좋겠지만 아직은 주요 우울장애로 생각되니 기분 안정 시켜주는 효과도 있는 항정신병제를 쓰면 어떨까 싶습니다."


"훌륭합니다. 혹시 소아에서 어떤 antipsychotics가 공인되었는지도 알고 있어요?"


"엇 그거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간단히 설명드리자면...(생략) 그러면 하나가 양극성 장애 가능성이 있을지 아니면 우울증 단독일지 잘 고민해 봅시다. 해결. 그러면 두 번째로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저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느끼고 부분인데, 'Good enough mother'라는 개념을 들어본 적 있으세요?"


"아뇨 처음 들어봅니다."


"대상관계이론으로 유명한 위니컷이 했던 말이에요. 소아 정신과를 하다 보면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많이 보다 보니까 아이를 키우는 것이 걱정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아이 양육을 잘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이론들을 다 찾아보고 완벽하게 적용해보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저도 처음에는 그럴 생각으로 소아 정신과 수련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근데 아이들은 부모가 그렇게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부모 역할만 되어 준다면 잘 자라요. 오히려 완벽하려고 해서 아이가 적당한 좌절을 경험할 기회를 안주기도 하죠. 아기가 신생아일 때는 모든 요구를 받아 줄 수 있지만, 나중에는 모두 받아 줄 수는 없거든요. 하나의 부모님도 남동생은 아직 어리니까 모두 받아주는데, 하나의 요구는 다 받아 줄 수가 없거든요. 그런 점에 대해서 부모님이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 수 있어요. 부모님과 이야기할 때는 그런 점을 찾아내서 죄책감을 덜어드리면 좋을 거예요."


"와... 그렇군요."


"그래요. 그러면 얼른 정리하고 퇴근하세요. 내일 또 봐요."


Good enough mother. 마치 부모님에게 '그 정도면 괜찮아'라고 위로해주는 듯하면서도 '다 받아주면 안 돼'라고 타이르는 메시지도 숨겨져 있는 듯했습니다. 하나뿐만 아니라 하나의 부모님도 신경을 써야 한다니 부담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못 잡다가 감을 잡게 되어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 다음 편에 계속

분량 길어져도 그냥 쓰렵니다 하하 ^^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는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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