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꾸러기 하나
하나가 입원한 지 나흘째 되는 날 오전, 출근하자마자 아침 일찍 면담했습니다. 휴일이 껴있어서 셋째 날은 쉬었습니다. 하나가 공책을 가지고 나와 면담실로 함께 걸어갔습니다. 걸어가는 동안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잠에서 깨느라 바빠 어색하진 않았습니다. 면담실에 도착해 원래 앉던 대로 하나가 안쪽에, 제가 문쪽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선생님 일정이 있어서 아침 일찍 면담을 하려고 해. 잠이 좀 덜 깬 거 같네?"
"네 졸려요..."
"그래 선생님도 졸리다. 얘기 나누면서 잠 좀 깨 보자. 기분 점수 기록 계속하고 있어?"
"네. 여기요."
하나가 공책을 펼쳐서 기본 점수표를 보여주었습니다. 둘째 날 오후부터 셋째 날 저녁까지 새로운 점수가 적혀 있었습니다. 셋째 날 오전에는 점수가 5점이었는데 오후에는 1점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외로움'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다시 3점으로 올라 있었습니다.
"꾸준히 작성해주고 있구나. 여기 어제 오후에는 1 점으로 떨어져 있는 거는 무슨 일 이 있었던 거야?"
"갑자기 외로워져서 기분이 안 좋았어요."
"그랬니? 왜 갑자기 외로워졌을까?"
"진짜 친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제 심심해서 제 친구들하고 연락하려고 보니까 막상 제가 입원해 있는데 병문안을 와줄 애가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랬구나. 친구들한테 연락을 해봤니?"
"아뇨 어차피 안 올 거 같아서 연락 안 했어요. 그리고 여기서 조금 친해진 애가 있는데 이번 주말에 퇴원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솔직히 며칠 안 보긴 했지만 마음이 잘 통하는 것 같았거든요. 근데 어차피 여기서 나가면 안 볼 테니까 연락처 교환도 안 했어요."
여기서 잠시 연락처를 교환하는 것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저희는 그것을 금지하지는 않지만 권하지도 않았습니다. 병동에서의 관계는 병동에서 끝내는 것을 권유드리곤 합니다. 종종 건강하지 못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보기 때문에 그렇긴 하지만 애매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낸 좋은 동료가 되기도 하고,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랬구나. 외로운 느낌이 들었을 수 있겠어. 하나는 정말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딱 1명 있어요. 네 근데 그 애는 작년에 미국으로 유학 가서 연락을 못해요. 개는 제가 하는 말을 다 들어주고 어디 가서 절대 얘기하지 않아요."
그 뒤로는 식사, 수면, 패드로 그림 그리기 등의 이야기를 하고선 면담을 마무리했습니다.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병원 전화기로 한모와 전화 통화를 시도했습니다. 환모도 근무 중일 것이라 통화가 안될 수 있지만 일단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통화음이 10번 정도 울린 후에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OO 병원 하나 주치의입니다. 혹시 통화 괜찮으실까요?"
"아 네 안녕하세요. 하나한테 무슨 일이 있나요?"
"아니요.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고, 하나에 대해서 이것저것 여쭤보려고 전화드렸어요. 근무 중이실 것 같은데 어려우시면 나중에 통화해도 됩니다."
"아 아니에요. 잠시만요."
문을 열고 출입문을 나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금 있다가 다시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아 네 선생님. 말씀하세요."
"네, 우선은 하나 상태가 특별히 변한 건 없습니다. 입원해서 죽고 싶은 생각은 안 들지만 우울감이나 감정기복은 계속 있습니다."
"아 네. 아무래도 금방 좋아지진 않겠죠... 혹시 하나는 약으로 치료하지는 않나요?"
"안 그래도 약물 치료를 시작해보려고 하는데요. 어떤 병인지에 따라 약을 다르게 쓰기 때문에 하나의 과거에 대해서 여쭤보려고 연락드린 것입니다. 일단은 하나가 조증 또는 경조증 삽화라고 해서, 살면서 그런 적이 있는지 여쭤보려고 하는데 혹시 어떤 건지 아시나요?"
"조증이라고 하면 막 기분이 엄청 좋고 그런 건가요?"
"네 비슷합니다. 보통 이렇게 설명드립니다. 사람이 좋은 일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일이 있더라도 하루 종일 들뜬 기분이 계속 지속되긴 어렵잖아요. 그래서 기준이 4일, 어머니가 보시기에 하나가 4일 이상 계속 기분이 들뜬상태였던 적이 있나요?"
"음... 그랬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러면 조증은 기분이 좋은 쪽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예민하고 과민한 쪽으로 나타나기도 해요. 하지만 아이들은 우울증에서도 예민하고 과민하게 나타나기도 해서 구분이 어렵기는 해요. 그래서 다른 걸 여쭤보는데, 먼저 하나가 잠을 적게 자거나 안 자도 안 피곤해했던 시기가 있었을까요? 이것도 마찬가지로 4일 이상, 예를 들면 평소에 8시간 자는 애가 4,5시간만 자도 안 피곤 해한다거나요."
"음 그거는 제가 잘 모르겠어요. 아이가 몇 시에 자는지는 방에 들어가 있으니까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근데 자는 데는 크게 문제는 없었던 거 같아요."
"그래요. 그러면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거나, 빨라지던 시기가 있었을까요?"
"아니요. 애가 집에서는 말수가 적은 편이라서요."
"음... 마지막으로 갑자기 평소보다 돈을 많이 쓴다거나 새로운 일들을 마구 벌린적이 있을까요?"
"그런 것도 딱히 없었던 거 같아요. 제가 너무 무심했어서 모르는 걸까요?"
"아, 아뇨. 이런 것들이 없는 것이 좋은 거죠. 조증이나 경조증이 있었다면 어머니가 분명 눈치를 챘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죄책감이 드러나는 질문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죄책감을 덜어 보라는 선배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우선 어머니의 걱정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하나에 대해서 제가 알고 싶었던 것은 여쭤봤습니다. 혹시 어머니 걱정되시거나 궁금하신 부분이 있을까요?"
"하나가 동생 얘기를 하던가요? 저희가 보기에는 동생을 신경 쓰느라 하나한테 신경을 못 써준 것이 원인인 거 같아서, 그 부분을 얘기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 아뇨. 아직 그런 얘기는 안 합니다. 그게 사실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하나가 그것을 스스로 인지하기 전까지는 먼저 직접적인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는 것을 깜빡했는데, 하나가 했던 얘기 중에 자살 생각과 같은 안전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비밀로 해주는 것이 원칙이거든요. 물론 하나에게 동의를 구하고 말씀드릴 순 있지만요."
"아 네 괜찮습니다. 저는 그냥 제가 하나를 위해서 뭘 할 수 있을지만 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 당장은 저희가 뭔갈 권해드리긴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어서요. 하나가 입원해 있는 동안 주변 환경이랑 분리되고 안정적인 환경에 있으니 스트레스를 덜 받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도 이번 기회에 조금 쉰다고 생각하시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계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필요하면 다시 연락을 드릴게요."
그렇게 한모와의 전화 면담을 끝내고 늦은 오전에 있을 회진 준비를 했습니다.
"어 김 선생. 휴일은 잘 보냈나?"
"네 교수님. 잘 보냈습니다."
"그래. 휴일에는 뭐 했니?"
"아, 한모랑 통화한 것이랑 해서 기록을 정리했습니다."
"허허허, 아니 어제 쉬는 동안 뭐 했는지 물어본 거야. 아니면 일하느라 쉬질 못했나?"
"아 아니요 교수님. 간단하게 기록 정리만 하고 쉬었습니다. 그냥 집에서 영화 보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쉬었습니다."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교수님은 여유롭고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래, 하나 어머니랑은 어떤 얘기를 나눴나?"
"우선, manic episode 가 있었을지 여쭤봤는데 특별히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하나 동생이 태어나면서 하나가 관심을 받지 못해서 우울증이 생긴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랑 관련된 얘기를 했으면 하시는데, 아직 해보진 못했습니다."
"그래? 주치의 생각은 어떤가?"
"저는 아직은 동생이 태어난 것과 관련이 깊을지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관련된 얘기를 억지로 하기보다는 면담하다 보면 연결되는 부분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 하나는 어제, 오늘 어떤가?"
"어제, 오늘 오전에는 기분이 좋은 편이었는데, 오후에는 기분이 나빠지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밖에서는 학교에서는 밝게 있다가 하교하면 기분이 처지는 패턴이 있었지만, 환경적인 영향을 배제할 수 없었는데, 입원해서도 그런 패턴이 반복된다면 내부적인 감정기복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 그렇구나.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약물 선택의 관점에서는 감정기복과 우울증에 둘 다 도움이 될 수 있는 antipsychotics 소량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음... 그래. 하나 보고 와서 결정해 보자꾸나."
교수님, 선배와 함께 하나가 있는 병실로 갔습니다. 하나는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잠든 것 같진 않았습니다. 이름을 부르니 바로 눈을 떴지만 자리에서는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하나가 병실 밖으로 나와 이전처럼 다 같이 서서 회진을 시작했습니다. 교수님이 물었습니다.
"그래 하나야. 어제오늘은 좀 어땠니?"
"그냥 비슷해요."
"그러니? 잠은 잘 잤니?"
"네 잠은 잘 자요."
"그래. 그런데 낮에도 자꾸 졸리니?"
"네. 오후 되면 졸려요. 하게 없기도 하고요."
"우리가 그래도 낮에는 최대한 안 자려고 해 보기로 했는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졸리니?"
"그건 아닌데.. 그냥 자고 싶어요."
"그래. 그런데 하나야. 혹시 하나 기분이 하루 중에 계속 변한다는 것을 느끼니?"
"네 왔다 갔다 하는 거 같아요."
"그래. 그게 특별한 일이 없는 데에도 기분이 변하는 것 같니?"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요. 근데 아닐 때가 더 많은 거 같아요."
"그래, 그렇구나. 하나가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니?"
"그냥 자거나 혼자 있거나 해요."
"기분이 안 좋아서 잠을 더 자게 되는 것도 있겠구나. 때로는 기분이 안 좋을 때 다른 사람들이랑 있으면 힘드니 혼자 있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지. 잠을 자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겠지만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더 처질 수도 있어서 그렇게 좋은 방법은 아닐 수 있어."
"네..."
"그래. 힘들겠지만 낮에 잠을 안 자는 것도 정말 중요하단다. 하나가 감정기복이나 잠을 많이 자게 되는 것이 약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어. 물론 약 없이 나아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약이 있으면 그게 훨씬 수월해지기도 하거든."
"저도 이제 약 먹는 거예요?"
"생각해보고 있단다. 하나는 약 먹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별생각 없어요. 그냥 다른 애들은 다들 약을 먹는 것 같은데 왜 저만 안 먹나 했어요. 제가 별로 안 심한 건가 싶기도 했고요."
"그랬구나. 약 먹는 거는 주치의 선생님이랑 상의해 보고 주치의 선생님이 얘기해 줄 거야. 혹시 먹다가 불편한 게 생기면 이야기해 줘?"
"네 그럴게요."
"그래. 더 얘기하고 싶은 거나 궁금한 거 있니?"
"음.. 저는 언제쯤 퇴원해요?"
"하하 그거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하나가 많이 나아져야 퇴원하지 않겠니?"
"네 그렇죠. 저도 아직 많이 남았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 그러면 잘 지내고 내일 또 보자꾸나."
그렇게 회진을 끝내고 스테이션을 지나 폐쇄병동 문 밖을 함께 나섰습니다.
"김 선생, 약물 치료 시작하지. 어떤 약 썼으면 좋겠나?"
"저는 아빌리파이가 먼저 떠오릅니다 교수님."
"그래. 아빌리파이로 하고, 처음 용량은 0.5mg으로 하지. 부작용 없는지 잘 확인해 보고."
"네 알겠습니다 교수님."
"그리고 가족 면담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
"네? 아 네 교수님. 약속 한번 잡아 보겠습니다."
그렇게 교수님은 평소랑 다르게 급한 일이 있는 듯,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셨습니다. 하나랑 얘기할 때까지는 여유로운 모습이어서 급한 일이 있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화자와의 면담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교수님이 가시고 선배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가족 면담은 해본 적 있나요?"
"아 네, 성인 환자들 대상으로 한 적은 있습니다."
"소아도 크게 다를 건 없어요. 약속 한번 잡아 보시고, 환아랑 부모님 사이가 어떤지, 부모님끼리는 어떤지, 어떤 dynamic 이 있을지 한번 유심히 살펴보세요."
"네, 이번 주말에 한번 잡아 보겠습니다. 부모님 두 분 다 근무하셔서 주말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수고해 주세요 그럼."
선배도 가시고, 저는 먼저 하나한테 가서 약 복용을 시작할 것이고, 가능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소량이라서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은 낮다고 안심도 같이 시켜주었습니다. 하나는 약물 복용 하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다음으로 하나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가족 면담 일정을 2일 후인 주말 오후로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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