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청소년 정신과 ep.1-5

나아지고 있다

by 어른이

하나가 입원한 지 2주가 지났습니다. 하루하루 보았을 때 그 차이는 느끼기 힘들었지만, 처음과 비교하면 분명 나아진 부분은 있었습니다. 하나가 기록한 기분 점수를 모아서 엑셀로 그래프를 그려보니 확실히 그 기복이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기분이 좋고, 오후가 될수록 기분이 나빠지고 예민해지는 경향은 남아 있었지만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무의식적으로 하나와 면담하는 시간을 오전 시간으로 잡았던 것 같습니다. 오후 시간에 기분이 다운되고 예민한 모습을 피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몫은 주로 오후에 회진을 오는 교수님의 몫이 되었습니다. 선배와 이야기하다 이를 깨닫고 오늘은 하나와 오후에 면담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1주일마다 작성하는 우울증 설문지도 챙겼습니다.


하나를 찾으러 병실로 갔지만 없었습니다. 간호사 선생님한테 문의해 보니 면담실에 있다고 했습니다. 패드로 그림 그리고 있나 보다 생각하고 면담실로 찾아갔습니다. 하나는 면담할 때와 같은 자리인 창가 쪽에 앉아 햇빛을 받고 있었습니다.


"안녕 하나야. 면담 잠깐 할까?"


"네? 아 네..."


"패드 사용 시간은 면담한 만큼 더 쓰게 해 줄게."


"아 괜찮아요."


"그래. 오늘은 어땠니?"


"별일 없었어요. 오늘은 낮잠 안 잤어요. 잘했죠."


"오 그렇니? 안 졸리니?"


"조금 졸리긴 하는데 오늘은 안 자보려고요."


"그래? 그러고 보니 입원하고서 낮잠 안 잔 건 처음인가?"


"네 조금이라도 안 잔 건 처음이에요. 오늘은 안 잘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 좋은 생각이야. 하나야, 지난주에 했던 설문지인데 지금 한번 해볼래?"


하나에게 우울증 설문지를 주고 다시 작성하게 했습니다. 10문항 내외로 되어 있고 각 증상별로 1~5점으로 체크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입원할 때는 38점, 1주 차에는 32점이었습니다. 하나가 설문지를 작성하는 동안 저는 보고 있으면 부담될 것 같아 휴대폰으로 업무를 하는 척했습니다. 3분 정도 만에 금방 작성하고 저에게 다시 건네어주었습니다. 머릿속으로 점수를 더해보니 20점이 되었습니다.


"이야, 지난주에 몇 점이었는지 기억나니?"


"잘 기억 안 나요. 몇 점이었어요?"


"32점이었단다. 지금은 합해보니 20점이네? 하나도 나아진 부분들이 느껴지니?"


"그게 많이 줄어든 건가요? 사실 잘 몰랐는데 그런가 봐요. 음... 그러고 보니 좀 안정된 거 같기도 하네요."


"그러게 말이야. 지난주에는 감정기복이랑 우울감 점수가 높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꽤 줄었네. 하나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좋아진 거 같아?"


"음... 글쎄요? 그냥 입원하니까 외부랑 차단돼서 그런가? 아, 약을 먹어서 그런가?"


"그러고 보니 약 먹기 시작한 지 1주일도 넘었는데 효과가 나탈 수 있는 시기이긴 하네."


"그래요? 약 먹으면서도 이게 효과가 있는 건지 솔직히 몰랐는 데 있는 걸 수도 있겠네요."


"그래. 또 다행인 건 하나가 죽고 싶은 생각이 드냐는 문항에 전혀 그렇지 않다고 체크를 했네? 요즘엔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


"네, 솔직히 입원하고 처음에는 심하진 않아도 가끔 들기도 했는데 이번 주는 거의 안 들었던 거 같아요."


"그래 다행이구나. 아참, 우리 이번 주말에 가족 면담을 한번 더 해볼까? 하나 부모님도 보고 해야지."


"네. 근데 선생님, 저 언제 퇴원해요?"


그동안 다른 환자분들이 퇴원에 대해 물어볼 때 곤란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하나의 질문은 오히려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좋아진 것을 느끼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응원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주치의에게 주어진 권한은 많지만 퇴원과 관련해서 만큼은 교수님과 상의를 해야 했기 때문에 교수님과 얘기해 보자 했습니다.



다음날 오전 교수님이 회진을 돌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 김 선생 잠시 커피 한잔 하면서 얘기할까? 커피를 못 마시고 나와서. 커피 좋아하나?"


교수님은 병동에 비치된 믹스커피를 꺼내서 종이컵에 붓고 뜨거운 물을 받았습니다. 저는 믹스커피를 잘 안 먹었습니다.


"네 교수님. 커피 좋아합니다. 저는 아침에 마시고 와서 괜찮습니다."


"그래? 카페인을 조절하는구나. 나도 커피 좀 줄여야 하는데 말이지 허허."


교수님이 커피에 의존하는 면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총명하시지만 안색은 항상 피곤해 보였기에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 하나는 어떤가?"


"하나는 어제랑 비교하면 크게 달라진 점은 없지만 우울증 설문지 점수가 입원했을 때 38점, 지난주에 32점, 어제는 20점으로 계속 줄어드는 추세이고, 어제는 처음으로 낮잠도 안 잤습니다. 하나도 이런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가 퇴원을 원합니다. 이번 주말에 가족면담을 한번 더 해볼 예정입니다."


저는 긍정적인 변화를 전할 마음에 들떠 있었고, 하나가 퇴원에 대해서 물어보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원한다곤 안 했는데, 저는 저렇게 얘기했습니다. 이 당시엔 몰랐지만 어쩌면 제가 하나의 퇴원을 바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교수님도 하나의 퇴원을 흔쾌히 승낙하고 기뻐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왜 좋아졌다 생각하나?"


"입원해서 외부 스트레스로부터 분리된 것과 약 효과가 서서히 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음... 그래 그럴 수 있겠네. 그러면 간단히 하고 하나 보고 올까? 지금 병실에 있나?"


"네 교수님. 병실에 있습니다."


교수님, 선배와 함께 하나가 있는 병실로 갔고, 하나는 침대에 앉아 같은 병실의 다른 환아랑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하나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실 밖을 나왔습니다.


"그래 하나야, 오늘은 어떻니?"


"좋은 거 같아요."


"그래? 다행이네. 기분 점수로 치면 몇 점 정도니?"


"한 6점 정도 될 거 같아요. 좋은 편인데 그렇다고 막 좋은 건 아니고요."


"그래 다행이네. 하나는 요즘에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줄었다고 느끼니?"


"네. 그런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짜증도 덜 내는 거 같아요."


"그래? 누구한테 짜증을 덜 내니?"


"다른 사람한테 짜증을 막 내는 건 아닌데 속으로 짜증이 줄은 거 같아요."


"그랬구나. 짜증이 줄어들면 다른 사람들이랑 얘기하고 같이 있는 게 좀 편해졌을 수 있겠다?"


"음...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래. 하나 또 얘기하고 싶은 거 있니?"


"아뇨. 없습니다!"


하나가 밝게 대답을 하고, 회진은 끝났습니다. 오전이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좀 더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교수님과 선배와 함께 스테이션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더 나누었습니다.


"하나가 좋아지고 있는 거 같네. 가족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나?"


"아, 가족들하고는 최근에 통화를 못해봤습니다."


"그래. 가족면담 할 때 한번 물어봐봐. 가족면담이 지난번보다 더 부드럽게 흘러갈 수 있겠어."


"네 교수님. 퇴원은 어떻게 계획할까요?"


"퇴원은 주치의랑 상의해서 정해야지?"


"아, 네 교수님."


다른 교수님들은 퇴원을 항상 지정해 줬기 때문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습니다. 저에겐 같이 논의할 든든한 선배가 있습니다. 교수님은 나가시고 선배와 둘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교수님은 퇴원 얘기를 먼저 이야기하진 않으세요. 그래서 주치의가 먼저 얘기를 꺼내야 해요. 안 그랬다가 정말 오래 입원했던 적도 있어요. 선생님 동기가 맡은 애는 60일 넘게 입원했던 적 있어요."


"아 그래서 그랬군요. 그 아이 얘기는 조금 들었습니다."


"네, 물론 그 아이가 많이 안 좋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너무 오래 입원해 있는 것도 안 좋거든요. 퇴원해서 다시 적응하는데 어려워지고, 입원해 있는 것에 의존하고 퇴행하게 되기도 하죠. 아무튼 퇴원을 얘기하려면 퇴원 후의 계획도 짜여 있어야 해요. 가족 면담 후에 짜보면 좋을 것 같으니 일단은 생각만 해보고 있으세요. 아이랑도 기회 되면 얘기해 보고요."


"아, 네 그런 계획이 필요하겠군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회진을 마무리하고 저는 기록과 처방을 정리하고 하나 어머니에게 연락해서 주말에 가족면담 약속을 잡았습니다. 어머니는 하나와 통화하면서는 특별히 변한 점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가족면담을 하면서 변화가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다고 전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 다음 편이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는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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