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가족 면담
오후에 있을 가족 면담을 위해 일요일 출근 했습니다. 주말에는 회진이나 다른 일은 없어서, 환자분들과 면담을 여유롭게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주말 2일 중 하루는 환자분들과 면담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차피 출근을 해야 했습니다. 환자분들과의 면담을 여유롭게 마치고 점심도 챙겨 먹고 3시 즈음부터 병동으로 돌아와 기다렸습니다.
하나의 부모님은 약속된 4시보다 10분 일찍 와서 병동 인터폰을 눌렀습니다. 보호사 선생님이 확인하고는 하나 부모님이 왔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저는 병실에 있는 하나를 데리고 나왔고, 하나 부모님과 함께 면담실로 향했습니다. 하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키가 비슷했지만 인상이 매우 달랐습니다. 아버지는 익숙한 장소에 온 것처럼 무표정했고, 어머니는 병동이 신기하다는 듯이 시선을 옮겨 다녔습니다.
평화로운 주말 오후의 병동에 하나의 부모님이 들어온 것이 약간의 긴장감을 선사했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개의치 않아 했습니다. 다만, 하나는 뭐가 불만족스러운 듯 평소보다도 더 짜증스러운 표정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반갑다기보다는 귀찮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면담실에는 의자가 딱 맞게 4개가 있었습니다. 자리 배치를 미리 생각해두지 않아서 어떻게 앉을지 잠시 고민했습니다. 제가 출입문 쪽, 바깥쪽에 앉고 하나를 제 옆에 앉게 했습니다. 대신, 제가 의자를 바깥쪽으로 더 빼고 45도 정도 기울여서 한눈에 모두를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하나 주치의 맡고 있는 OOO입니다. 어머님은 입원할 때 뵀었고 아버님은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은 하나 면회 겸, 가족 면담을 해보고자 모시게 되었습니다. 4~50분 정도 진행 할 것 같습니다. 시간 괜찮으신지요?"
"네 괜찮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우선 하나와 같이 이야기하고, 끝나고 부모님이랑 따로 얘기하고자 하는데 괜찮을까요? 하나도 괜찮니?"
"네 괜찮아요."
"네 좋습니다. 가족면담이라고 해서 꼭 관계에서 문제점을 찾아서 고쳐야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제삼자가 동석해 있는 동안 서로의 생각이나 감정을 공유하는데 초점을 맞춰 봅시다. 가령 하나가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 부모님은 어떤 걱정이 있으신지 같이 들어보고 싶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긴장을 한 탓도 있을 테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하나 어머니였습니다.
"하나가 먼저 이야기해 볼래? 엄마는 하나가 여기서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네."
"나? 엄마부터 얘기해. 나는 맨날 얘기하는데."
하나의 짜증 섞인, 버릇없어 보일 수 있는 말투에 어머니는 조금 당황한 듯했고, 긴장감이 더 조여 왔습니다. 아버지는 무표정하게 둘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그래. 어떤 부분이 걱정되는지 얘기하면 될까요 선생님?"
"네, 어머니 걱정 되는 부분이나 아니면 그냥 요새 어떻게 지내시는지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저는 무엇보다 하나 건강이 걱정되죠. 하나가 요새 집에서 잠만 자고 피곤해하는 게 혹시 다른 병이 걸린 게 아닐까 걱정되고... 원래 공부도 잘하던 애가 요새는 통 공부를 못하는 것 같고요. 근데 하나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를 저희가 모르고 방치한 게 아닌가, 그러다가 지금 이렇게 심해져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어머니가 마지막 문장을 말하자 아버지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어머니를 바라보았고 다시 하나를 보면서 인상을 풀면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 제가 말해도 될까요?"
"네 말씀 편하게 해 주세요."
"저는 너무 그렇게까지 걱정 안 해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누구나 사춘기를 겪듯이 한 번쯤은 힘든 시기를 겪는 거고, 하나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래도 잘하던 아이였으니까요."
하나는 부모님이 이야기하는 동안 고개를 숙여 손을 꼼지락 거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그렇군요. 부모님은 그런 생각이 있으시군요. 하나는 어떤 생각이니?"
하나는 고개를 숙인 채 손을 꼼지락 거리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세 명이 그런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하나를 혼내려고 하는 듯했습니다. 하나가 잠시 뒤에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그냥 다 짜증 나요."
또다시 분위기는 긴장감이 높아졌고, 하나는 저 말을 던져 놓고는 부연 설명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부모님은 서로 눈치를 보며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조심스러웠지만 물었습니다.
"어떤 게 짜증이 나는지 얘기해 줄 수 있을까?"
"... 그냥 다, 어차피 제가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잖아요. 엄마 아빠가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 걱정하시는 게..."
하나가 잠시 말을 멈춘 사이에 어머니가 끼어들었습니다.
"아니야 하나야. 엄마는, 엄마 아빠는 하나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 하나가 필요한 거 얘기해 주면 우리는 다 도와주고 싶지."
"그것도 내가 얘기를 해야 하는 거잖아 결국. 내가 얘기를 안 한 게 문제라는 거잖아."
"아니, 탓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그래 하나야 너희 엄마가 얼마나 걱정해 주는지 아니? 이렇게 하는 엄마 아빠 생각해서라도 이러면 안 되지."
"하... 됐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선생님 저 이제 가봐도 되나요?"
"그래 하나야. 나중에 또 얘기해 보자. 선생님은 어머니 아버지랑 얘기 좀 더 나눌게."
"네 안녕히 계세요."
하나는 짜증스러운 표정과 태도로 면담실을 나갔지만, 문을 쾅 닫는다거나 하는 등의 선을 넘는 행동은 없었습니다. 하나가 면담실을 나가자 긴장된 공기는 조금 풀어졌지만, 부모님과의 대화가 남아 있었습니다.
"선생님, 애가 더 예민해진 거 같은데 괜찮을까요? 혹시라도 병원에서 나쁜 생각을 할까 봐 걱정 돼요."
"그런 걱정이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가 집에서 랑 좀 다른 모습이었나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하나가 저렇게까지 예민한 거는 처음 봤어요."
아버지가 대신 대답했습니다. 아버지는 당황스럽다기보다는 무표정하였고, 마치 병원과 저를 질책하려고 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하나도 아버지로부터 비슷한 '질책받는' 느낌을 받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설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가 입원 중에 본인의 기분을 기록해보고 있는데요, 하루 중에 기분 변화가 꽤 있는 편입니다. 보통 오전에 기분이 괜찮다가, 오후에 기분이 안 좋아지는 패턴이었어요. 사실 이 시간대가 하나 기분이 안 좋은 시간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원래 저렇게 예의 없게 얘기하고 그러진 않았거든요."
"그랬군요. 하나는 오후 시간대에 집에서 주로 뭐 하면서 지냈나요?"
"제가 그래도 남편보다 좀 더 일찍 퇴근하는데, 퇴근하고 호면 하나는 잠깐 인사하고 그 뒤로는 주로 방에 혼자 있어요. 뭐하는지 궁금하긴 한데 아이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방해하진 않으려고 했어요."
"그랬군요. 하나는 기분이 안 좋을 때 주로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것이 병동에서도 비슷한 패턴이었어요. 아마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안 끼치고 싶어 하는 면이 있어서 본인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최대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피하려고 했을 것 같습니다. 밖에서는 그게 가능했는데 근데 지금 가족 면담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니 그런 모습을 처음 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고, 어머니는 곧바로 다음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나가 저렇게 짜증을 낼 때 받아 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아니, 저는 받아 주려고 하는데 하나는 그렇게 받아들이질 않는 것 같아요."
"어머니는 평소에 어떤 식으로 하나의 짜증을 받아 주려 하셨나요?"
"그냥 뭐... 일단 하나가 하는 얘기를 듣고, 하나가 원하는 걸 얘기하면 들어주고, 근데 또 얘기를 잘 안 하니까..."
"혹시 미안하다는 얘기를 자주 하시나요?"
"자주 까지는 아닌데, 가끔 하긴 했죠. 동생 챙겨주느라 잘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고. 꼭 동생 때문이 아니더라도, 일 때문에 밥 못 차려주거나 못 놀러 가거나 그럴 때도요."
"그렇군요. 그런 얘기를 하면 하나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보통 괜찮다고 했죠. 근데 요즘에는 그런 얘기를 해도 대답을 안 하는 경우도 많았던 거 같아요."
"그렇군요. 요즘에는 왜 그런 거 같으세요?"
"그걸 잘 모르겠어요. 얘기를 안 해주니까..."
아버지가 옆에서 가만히 듣더니 부드럽지만, 질책하는 내용으로 끼어들었습니다.
"근데 내가 보기에 당신이 너무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해는 것 같아. 하나도 당신이 미안한 거 아는데 계속 얘기하니까 질릴 거 같더라고."
"그래? 내가 그랬나..."
"하나 아버지는 집에서 하나의 짜증을 어떤 식으로 받아 주셨나요?"
"저한테는 그런 적이 없어요. 하나가 어릴 때는 그래도 대화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저랑 얘기도 거의 안 하려고 하니까요."
"아버님이 먼저 다가가서 대화를 시도해보기도 하고 그런가요?"
"그렇게 한 적은 거의 없어요. 저도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사춘기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죠.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한 거고."
"그랬군요. 우선은 오늘 가족 면담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할까 싶습니다. 처음 말씀 드렸다시피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오늘은 특별한 설루션을 제공하는 자리는 아닌 것 같고, 대신 하나 치료 계획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의 감정 기복이 뇌의 생물학적인 원인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서 약물 치료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약 효과는 바로 나타나지는 않고, 1-2주 정도 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약물 용량은 부작용이 없는 선에서 점차 늘려갈 것입니다."
"약물 치료를 시작하는군요.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네,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음 가족 면담은 전화로 약속을 잡읍시다."
가족 면담 이후로 하나랑 면담은 하지 못하고 다음날 오전, 교수님 회진이 아침 일찍 있었습니다. 교수님과 주말에 뭐 했는지 간단히 얘기를 나누고 본격적인 회진을 시작했습니다.
"그래, 가족 면담은 어땠나?"
"네 교수님. 어제 오후에 1시간 정도 했습니다. 부모님과 하나 다 같이 얘기를 하다가, 중간부터는 부모님 하고만 이야기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어머니는 걱정이 많고, 아버지는 문제를 축소해서 보려는 경향이 있고, 하나는 짜증이 많았습니다."
"허어 그래? 분위기가 어땠나?"
"어머니가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에 대한 걱정을 얘기하는 것과 본인이 하나에게 잘 못해준 부분들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려는 듯 이 이야기하는 것이 하나에게는 부담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하나가 겪는 어려움이 다들 겪는 어려움이라고, 나름의 위로를 하려 했지만 하나에게는 오히려 비수인적으로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처음부터 하나는 본인의 생각을 잘 얘기하지 않고 짜증 난 채로 면담 중간에 나가겠다 하고 나갔습니다."
"그래? 하나가 자리를 박차고 나온 거야? 아니면 양해를 구하고 나온 거야?"
"저한테 양해를 구하고 나왔습니다."
"그랬구나. 그래도 하나가 본인이 원하는 바를 말로 표현하고,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준 경험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어. 그동안에는 얘기도 안 했다면, 지금은 짜증을 섞긴 하지만 얘기를 할 수 있게 된 거지. 그만큼 주치의 선생님이 편해진 것일 수도 있겠네."
가족면담 중에 하나를 끝까지 끌고 가지 못한 점에 대해서 스스로 자질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하나의 행동의 긍정적인 부분을 이야기하셨고, 동시에 저에게 위로가 되는 말이었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가족 면담을 더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 가족 면담을 하는 것도 좋지만, 어떤 목표를 가지고 해야 할지 생각이 있어야지. 한번 생각해 보고 주치의가 생각하기에 적당한 때에 다시 가족 면담을 해보게나."
그렇게 얘기를 마치고 교수님, 선배와 함께 하나를 만나러 갔습니다. 하지만 하나가 자리에 없었고, 알고 보니 엑스레이 검사를 하러 내려갔습니다.
"오늘은 주치의만 하나를 만나고, 나는 내일 보러 오겠다고 전해주게나. 수고했네."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교수님은 병동 문 밖을 나섰고, 선배와 함께 스테이션으로 가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알고 있겠지만 교수님 회진 시간 최대한 피해서 검사 일정 잡는 게 좋아요. 그건 그렇고, 아까 교수님이 얘기하신 가족면담의 목표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저는 하나가 본인의 생각을 가족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짜증이 많다 보니 본인도 차분하게 이야기하기 힘들고 가족들도 듣기 힘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부모님은 어떤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음... 사실 아까 말한 부분이 바뀌었으면 좋겠는데요, 어머니는 걱정을 덜 했으면 좋겠고, 아버지는 하나에게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네 그렇죠. 사실 가족면담을 하다 보면 소통 방식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금방 알 수 있긴 하거든요. 그런데 본인들은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문제를 얘기해 준다고 해서 금방 바뀌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단기적인 목표랑 장기적인 목표를 구분해서 세우는 게 좋아요. 단기적인 목표는 입원 중에 바뀔 수 있는 것들, 장기적인 목표는 퇴원 후에 길게 봐야 할 부분들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목표를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요?"
"단기적으로는 우선 하나의 기분 증상을 호전시키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가족 간의 대화 방식이나 가족 내 역동의 변화를 목표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훌륭합니다. 부모님의 소통 방식도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하나의 기분 증상이 조절되면 그것 만으로도 가족 관계가 많이 부드러워질 수 있거든요. 그렇게 생각해 보면 조금 부담을 덜 수 있을 거예요. 입원 중에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거든요."
"네 그러게요. 감사합니다. 우선은 하나의 감정기복이나 짜증이 나아지는지 잘 살펴보는 게 중요할 것 같네요."
선배가 해준 이야기는 실제로 저의 부담을 덜어주었습니다. 가족 간의 문제는 약으로는 해결이 안 되고, 반드시 주치의의 장시간 면담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약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든든한 아군이 생긴 듯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이 힘든 환자분들은 사람뿐만 아니라 약물에 의존하는 것도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 또한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 다음에 계속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는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