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청소년 정신과 ep.1-6

현실로 돌아갈 준비

by 어른이

기분 좋은 한산함의 일요일, 지난번과 같은 시간에 병동 인터폰이 울렸고, 하나의 부모님이 찾아왔습니다. 하나의 부모님은 반갑다는 듯이 밝게 인사하였고, 긴장했던 지난번과는 다르게 편안해 보였습니다. 하나를 불러서 면담실로 향해 지난번과 같은 자리 배치로 앉아서 가족 면담을 시작했습니다.


"지난번 가족 면담 이후로 1주일 정도 지났네요. 그 사이에 어떻게 지냈는지 잠시 얘기해 볼까요?"


누가 먼저 시작할지 아주 잠시 서로 눈치를 보곤, 이번엔 먼저 말을 꺼낸 것은 하나 아버지였습니다.


"저희는 잘 지냈습니다. 그동안 서로 얘기도 많이 나눴고요."


아버지는 하나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저에게 이야기하는 듯했습니다. 제가 받아줬습니다.


"아 그랬군요. 어떤 얘기를 나누셨나요?"


"저랑 하나 엄마가 그동안 못했던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대화를 많이 해본 것은 결혼하고서 오랜만인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입원한 건 하나지만 저희한테도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지난번 가족면담 이후로 얘기를 많이 나눠봤어요."


"그랬군요. 가족면담이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 기쁩니다. 하나는 어떻게 지냈는지 공유해 줄 수 있을까?"


"저도 조금 덜 예민해지고 낮잠도 덜 자고 그래요. 약 효과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입원했을 때랑 비교하면 나아진 거 같아요."


저는 조금 더 일상적인, 가벼운 대화를 기대하고 주제를 던졌지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게 된 느낌이었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부터 다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 하나가 그런 변화들이 있다는 것을 선생님이랑도 얘기해 봤었지. 하나는 그런 변화에 대해서 스스로 어떻게 생각해?"


"좋아요. 음... 뭔가 그전에 비해 마음을 컨트롤하는 게 쉽다고 할까. 전에는 제 마음대로 안 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랬구나. 하나가 마음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어떻게 됐었는데?"


"짜증을 내거나 잠자거나 했었죠."


"그래. 그러면 지금은 그런 게 덜해졌겠구나. 그거 참 다행이네. 하나 부모님께서는 얘기를 많이 나누시고 생각이나 무언가 변화가 있으신가요?"


"저희는 일단 대화를 많이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그랬지만 하나 아버지는 특히 최근에 하나랑 대화를 거의 안 나눴거든요. 저희끼리 대화를 많이 나누니까 서로 쌓였던 감정이나 오해들이 풀리는 게 좋더라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제가 바쁘다는 것과 하나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줘야 한다는 핑계로 대화를 피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쨌건 대화를 나눠봐서 손해 볼 건 없는 거니까, 앞으로는 그렇게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약간의 희열? 카타르시스? 효능감? 과 같은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부모님도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하나도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저 혼자 몰래 기쁜 마음을 가졌습니다. 하나와 부모님도 그런 마음이었을진 모르겠지만, 부모님과 하나 사이에 감정의 다리를 놓아줘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군요. 하나와 대화를 많이 해보고 싶다는 것이 부모님이 내린 결론이군요. 하나는 어떻게 생각하니?"


"대화 좋죠. 사실 그동안 제가 좀 상태가 안 좋았어서... 대화를 피하려고 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랬구나. 부모님께 짜증을 낼까 봐 대화를 피하려고 한 부분도 있었던 거니?"


"음... 네 그런 거 같아요. 솔직히 그냥 제가 불편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제가 짜증을 낼까 봐 그런 것도 있어요."


"그랬구나. 그럼 혹시 어떤 부분이 불편했는지도 얘기해 줄 수 있을까?"


"음... 엄마 아빠가 제 이야기를 그냥 들어만 주면 되는데 자꾸 어떻게 하라고 얘기하니까 더 얘기하기 힘들어지는 게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 기억나면 예를 들어줄 수 있을까?"


"전에 친구랑 속상했던 일이 있어서 엄마한테 얘기한 적 있거든요. 근데 엄마가 그 친구랑 놀지 말라고 했거든요. 근데 저는 그 친구가 싫은 게 아니라 그냥 속상한 일이 하나 있었던 건데 놀지 말라고 하니까 저는 계속 신경 쓰여서 결국 멀어지게 됐어요."


여기까지 물어보고 잠시 정적을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하나의 말에 답변해 주길 기다렸습니다. 어머니는 제 기대에 맞게 조금 있다 대답을 했습니다.


"엄마가 그랬던 게 기억이 나네, 두리 얘기하는 거지? 엄마가 그런 얘기를 해서 두리랑 멀어졌구나. 앞으로는 친구랑 놀지 말라고 하거나 하진 않을게."


어머니의 이런 순종적인 태도가 하나에게는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졌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죄책감에 변명조차 안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떤 마음이었는지 더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줘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때 어떤 마음으로 하나에게 두리와 멀리하라고 했었는지 기억이 나시나요?"


"그때는 하나가 두리라는 아이랑 지내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던 거 같았아서 그랬죠. 사실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거든요. 두리 말고도 다른 애들 하고도 하나가 상처를 받고 끝났던 적이 몇 번 있었어요."


"그랬군요. 그래서 어머니는 하나가 또다시 상처를 받을까 봐 걱정되어서 하나에게 두리를 멀리 하라고 했었군요."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아마 어머니는 '걱정'이라는 자신의 마음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으니 드는 생각들이 있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어머니가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습니다.


"그러면 하나가 아버지에게는 속상했던 게 있었을까?"


"음... 글쎄요."


하나에게도 '속상한'이라는 마음을 대신 전달해 주었습니다. 하나는 친구에게 속상한 마음이 들었단 얘기는 할 수 있었지만 부모님에게 속상하다는 얘기는 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하나의 '감정에 이름 붙여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래 하나야. 이럴 때 얘기 해주면 아빠도 고쳐보려고 노력할게."


"아... 아빠는... 나한테 맨날 이겨낼 수 있다고 그러는 게 나는 부담스러웠어. 다 그런 거니까 괜찮다고 하는 것도 그렇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을 때가 있는데."


"흐음... 아빠가 그런 말 안 할게. 근데 그런 말이라도 안 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냥 들어주기만 해도 돼."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하나의 말투는 짜증이 섞이지 않은, 부드러운 말투였습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이전의 짜증 섞인 말들보다도 더욱 설득력 있는 말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도 기회를 줘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떤 마음으로 그런 얘기를 했던 걸까요?"


"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렸을 때 겪었던 어려움들을 하나도 겪고 있다고 생각해서 이겨낼 수 있다는 얘기를 했던 거 같네요. 근데 하나 입장에서는 그다지 위로가 안 되었을 수 있겠습니다."


"위로가 안 되었다는 게 아니고, 그냥 그랬다고..."


하나도 아버지를 너무 몰아세웠다고 생각했는지 아버지의 자책에 반응하였습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하나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님의 자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가 부모님의 자책이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얘기를 해볼 수 있게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아버지의 얘기가 위로가 안 되었다기보다는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운 면이 있었던 걸까?"


"그렇죠. 부모님이 저한테 관심을 가져주는 거는 감사하죠. 근데 그 방식이 조금 아쉬웠던 거죠."


"그래 하나야, 아빠랑 너네 엄마가 앞으로 더 잘 공감해 주고 관심을 가져줘 볼게."


"아니... 그렇게까지 말할 건 아닌데... 아 뭔가 답답해요."


"음... 하나가 어떤 마음인지, 잠깐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볼까?"


"음... 음... 잘 모르겠어요."


"천천히 생각해 보렴."


침묵이 흘렀지만, 각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목적이 있어 어색하진 않았습니다. 하나의 부모님도 각자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1분 정도 흐르고서 하나가 입을 열었습니다.


"우선 제가 조금 답답했다고 한건 엄마 아빠한테 화가 났다는 건 아니에요. 제가 답답했던 부분은 제 문제인 것 같아요."


"그렇니? 어떤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뭔가... 아 그러니까 제가 먼저 어떻게 해달라고 해놓고 막상 엄마 아빠가 그렇게 해준다고 하니까 제가 못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마음속으로 박수를 쳤습니다. 하나가 스스로의 마음을 알게 된 것 같아 그에 대한 마음의 박수를 치며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부모님도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분위기를 읽었는지 기다려주셨습니다. 지금은 하나의 무대였습니다.


"저도 엄마 아빠한테 미안한 게 있는데, 엄마 아빠가 저한테 사과를 하고, 어떻게 해주겠다고 하면 저는 마음이 더 불편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 어떤 게 미안했니?"


"제가 부모님 바람대로 그렇게 훌륭한 딸이 되진 못한 거 같아서 미안한 거 같아요. 공부도 그렇게 잘하진 못하고 성격도 그렇고... 평소에 자꾸 짜증 내는 것도..."


하나의 이런 자책은 부모님의 반응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침묵을 지키던 어머니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니야 하나야. 하나는 정말 자랑스러운 딸인걸? 엄마 아빠한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하고 너무나도 사랑하는 딸이야."


아름다운 침묵이 흐르는 사이에 하나와 부모님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저는 감동해서 눈가가 촉촉해지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웃음을 지으며 눈물을 지워냈습니다. 아무래도 어머니의 사랑을 느꼈던 저의 이전 경험이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저의 중재가 필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얘기하고, 저는 나가 있을 테니 하나랑 하나 부모님이랑 조금 더 얘기 나누고 나오시면 좋겠습니다."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가족 면담을 끝냈고, 하나의 부모님은 한결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10분 정도 후에 나와 하나와 인사를 하고 병동을 떠났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할 생각에 다음날 회진이 기대되었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하나는 4주 차에 퇴원하였습니다. 가족 면담 다음날 회진에서는 하나가 자신의 마음을 부모님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부모님이 그것을 수용해 주는 경험을 했다는 데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교수님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 퇴원 계획을 적극적으로 세워보자 하였고, 하나와 퇴원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시작했습니다.


퇴원하면 우선 뭘 하며 지낼지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병동에서는 익숙해진 규칙적인 생활이 퇴원해서도 유지하는 것이 좋은데, 집에서는 어떻게 이를 실천할 수 있을지 얘기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입원 중에는 외부적인 스트레스 요인이 차단된 상태인데 퇴원 후에는 그런 스트레스 요인에 부딪힐 수 있다는 점, 그러다 보면 다시 죽고 싶은 생각에 휩싸일 수 있다는 점을 얘기했습니다.


죽고 싶은 생각이 다시 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대처 전략들을 단계적으로 세웠습니다. 우선 부모님에게 이야기하기, 다른 활동들에 집중해 보기, 점진적 근육 이완과 호흡법, 찬물을 받아서 얼굴을 담는 잠수 반응 일으키기 등, 자살 충동이 들었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을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집안에 위험할 수 있는 물건들을 치우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퇴원 준비를 마치고 제가 외래에서 하나의 진료를 보기로 하고, 4주를 채우고 퇴원을 진행했습니다. 하나는 퇴원이 설레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고 얘기했고, 저는 두려운 마음이 당연히 들 수 있다고, 마지막으로 감정을 수용해 주었습니다. 저 또한 하나가 퇴원 후에 잘 지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가지면서도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라는 두려운 마음을 스스로 수용해 주었습니다.


한 아이를 입원해서만 책임지는 것이 아닌, 퇴원해서도 계속 책임을 질 것을 생각하니 무게가 느껴졌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만큼 저를 성장시켜 준 것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온전한 책임을 배우게 해 준 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episode 1 끝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는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keyword
이전 18화소아 청소년 정신과 ep.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