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종결하기

조금 늦었지만, 다시 돌아가도 될까요?

by 어른이

치료 종결은 여러 가지 형태로 찾아옵니다.
병이 다 치료되어 더 이상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
환자분의 사정이나 변심,
치료자의 사정으로 종결되기도 합니다.


치료 종결은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오기도 합니다.
특히 치료자의 사정으로 종결되는 경우에는 갑작스러운 일이 잦습니다.
이런 준비되지 못한 종결은 치료자에겐 마음의 짐을 남깁니다.


치료 종결 과정은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과 비슷한 면이 있는 듯합니다.
후에 다시 만날 것이 약속되지 않은 이별,
서로가 싫어서 떠나는 것이 아닌, 각자의 역할이 끝남으로 이루어지는 이별.


잘 준비된 치료 종결은 환자에게나 치료자에게나 정말 좋은 경험입니다.
연인과 헤어질 때 서로 잘 준비해서 헤어지기란 쉽지 않듯이,
현실에서 그런 이별을 경험하기도 어렵습니다.
좋은 이별은 서로 다시 보지 못하더라도, 마음속에 서로를 품고 있을 수 있게 해 줍니다.


반면, 준비되지 못한 치료 종결은 마치 ‘잠수 이별’과도 비슷합니다.
이별의 과정을 환자가 혼자서 짊어지게 되는 것이죠.
이는 때로 잘 봉합되지 않은 상처처럼 남기도 합니다.


치료자는 환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진 않지만,

환자가 치료자에게 위로, 따뜻함 등의 감정을 느끼듯
치료자도 환자로부터 배우고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서로 주고받는 관계는 그 자체로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그런 소중한 관계를,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한 채 준비되지 못한 치료 종결을 했습니다.
금방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 소중함을 통감하게 됩니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힘들더라도 치료 종결을 잘했어야 했다고
자주 후회합니다.


혹여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치료자와 환자로서 다시 만난다면,
이런 마음을 전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제가 그 환자의 치료자가 다시 되어도 되는지부터 모르겠습니다.


동료들에게 이 마음을 털어 보고 싶습니다.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해 보고도 싶습니다.

하지만 저의 이기심과 무책임함이 들통날까 두렵습니다.

질책보다는 어쩔 수 없었다는 위로를 받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환자에게 위로받고 싶습니다.

괜찮다는 말이 아닌,

속 시원하게 자신의 속상한 마음을 털어 놓아주는,

나를 다시 믿어주고, 그 속상함을 받아줄 기회를 주는, 그런 위로를 받고 싶습니다.


제가 조금 늦었지만, 다시 돌아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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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브런치북을 시작 전에 재정비하는 시간 가져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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