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청소년 정신과 ep.1-1

소아 파트 전공의 수련 시작

by 어른이

소아 파트 전공의 수련 에피소드 시작합니다. 소아 파트의 진료는 성인과 많이 다릅니다. 소아 파트에는 1~2분의 교수님이 계시고, 나머지는 성인 파트에 계십니다. 원칙적으로는 소아 파트는 성인 환자를 받지 않고, 성인 파트도 소아 환자를 안 받습니다. 소아 환자 진료를 하려면 그만큼 전문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질환 종류만 봐도 성인 파트 질환은 대부분 소아에도 있는데, 반면에 소아 파트에서만 있는 진단이 정말 많습니다.


저는 전공의 2년 차 후반부에 소아 파트 수련을 3개월 간 받았습니다. 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가 되려면 4년의 전공의 수련 이후로 2년의 임상강사 추가 수련이 필요합니다. 제가 수련한 병원에서는 교수님 밑에서 임상강사, 전공의가 함께 회진하고 같이 배우는 느낌이었습니다. 하늘 같은 6년 위 선배가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소아 파트는 성인 파트와 비교해서 배워야 할 게 많아요. 특히 OOO 교수님께는 정말 배울 게 많아요. 단순히 지식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저도 아직 배우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몇 개월 먼저 시작했으니 제가 몇 가지 말씀을 드릴게요.'


함께 배우는 입장이라는 선배의 겸손함에는 상급자임에도 수평적인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는 배려심이 묻어났습니다. 권위적인 대상에게 어려움을 느꼈던 저는 단번에 수평적인 분위기에 적응하진 못했지만 선배의 일관적이고 따듯한 자세는 점점 저를 편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세는 교수님의 자세와 닮아 있었습니다.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말에 부담을 느껴면서도 인간으로서 배울 것이 많다는 말에는 기대가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궁금해하는 자세예요.'


치프 선생님이 얘기해 줬던 것과 같은 얘기였습니다. 궁금해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제가 이것을 겸비했는지는 아직 불분명했습니다. 사실 치프 선생님께 죄송하지만 소아 파트 수련을 받기 전까지는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던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게 어려웠는데 하다 보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말로 표현하자면 비판단적이고, 순수한 관심과 호기심,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질문을 하는 것인데 소아 파트 수련을 받으면 매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어요. 교수님이 환자들에게 어떻게 하시는지, 그리고 선생님한테도 어떻게 질문하는지 잘 느껴보세요.'


사실 동기들을 통해 교수님의 회진 스타일이 어떤지는 대략 알고 있었습니다. 회진 시간은 매우 길었으며,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환자에 대해서 질문을 계속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주치의가 그것을 모르면 어떡하냐, 주치의는 병원 전체에서 환자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전까지 다른 교수님들께 이런 말을 자주 들었었습니다. 소아 파트 교수님도 이를 강조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질문을 하려고 하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질문은 사뭇 느낌이 달랐습니다.


'환자가 왜 그런지, 어떤 배경이 있고 어떤 정신역동이 있는지 정말 궁금하지 않니?'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교수님은 환자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회진 때는 꼭 저의 개인적인 생활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습니다.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교수님이 저로부터 알아야 하는 것(환자에 대한 것)과 몰라도 되는 것(저에 대한 것) 사이에 동등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자세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자세를 본받아 이전까진 교수님의 회진에 잘 대답하기 위해 '환자의 증상과 정보를 잘 알고 있어야만 한다' 였다면, '증상뿐만 아니라 당신에 대해 그냥 궁금해서 알고 싶다'로 바뀔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 그러면 첫 번째 에피소드를 소개하겠습니다.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입원했습니다. 주호소는 우울, 자해, 자살 생각이었습니다. 외래 기록에 있는 정보는 2년 전, 중학교 1학년때부터 우울감이 발생했으며, 손목을 긋는 자해를 자주 하였고, 최근에는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따돌림이나 가정사의 문제는 크게 없는 것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주치의 OOO이라고 해요. 입원해 있는 동안 교수님과 함께 진료를 볼 거예요. 저희 먼저 이야기하고 그 뒤에 보호자분이랑 따로 이야기하겠습니다. 괜찮을까요?"


"네 알겠습니다."


환자분은 말없이 끄덕였고 옆에 있던 어머니가 대답했습니다. 환자분을 면담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김하나예요" (가명)


"몇 학년이에요?"


"중학교 3학년이요."


"그래요. 선생님이 말을 놓아도 괜찮을까요?"


"네 괜찮아요."


소아 환자들과는 존댓말 대신 반말을 해야 했습니다. 성인 환자들만 대했기 때문에 환자에게 반말을 하는 것이 어색했습니다. 저는 평소에 어린아이들을 대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어색했습니다.


"그래요. 하나는 오늘 병원에 왜 입원했는지 얘기해 줄 수 있을까?"


"죽고 싶다고 해서 입원하기로 했어요."


본론으로 훅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하나가 이어서 말해줄 것을 기대하고 잠시 공백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오디오는 제 몫이었습니다.


"그렇구나. 하나는 언제부터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한 1년 전부터요."


"그래? 1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어?"


"특별한 일은 없었어요."


어떤 일이 있었을지 캐내고 싶은 마음이 강했지만 당장 정보를 얻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보호자에게 물어보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 죽고 싶은 생각이 지금은 어떠니?"


"지금은 그렇게 심하진 않아요. 근데 심할 때는 심해요."


"그래. 실제로 죽으려고 한 적이 있니?"


"네. 몇 번 있었어요."


"어떤 식으로 했니?"


"목메려고 하거나 뛰어내리려고 하거나 약 먹거나."


모두 심각하고 위험한 방법들이었지만, 성인 환자들에서 이런 경우를 자주 들어서 그런지 그리 당황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랬구나. 가장 최근에 했던 건 언제였니?"


"어제도 칼로 손목을 그었어요. 근데 죽으려고 한 거는 아니긴 한데. 제일 최근에 시도했던 거는 1주일 정도 됐어요."


"그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자세히 얘기해 줄 수 있을까?"


"근냥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목메려고 했는데 가족들이 눈치채서 실패했어요."


"그랬구나. 집에서 그런 거니?"


"네."


"어떤 상황이었는지 집에서 어디였는지, 어느 시간대였는지, 집에 누가 있었는지, 어떤 게 실패했는지 이런 것들을 좀 더 얘기해 줄 수 있을까?"


"음 일단 제 방에서 그랬고요. 시간은.. 학교 끝나고 와서 6시 정도였고요, 집에는 남동생 밖에 없었는데 제가 시도하려고 하니까 부모님이 퇴근하고 돌아와서 실패했어요. 제가 방문을 잠겄어야 했는데 안 잠가서 엄마가 그냥 들어왔는데 그때 발견하고 놀라셔가지고 그래서 입원하게 된 거예요."


하나는 아직 본인 이야기를 능동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물어보면 성실히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래. 칼로 손목을 그은 거 보여줄 수 있을까?"


헐렁한 긴팔 환자복의 왼쪽 팔목을 걷어서 보여주었습니다. 마치 바코드 같은 정갈한 흉터가 여러 개 나란히 있었습니다. 그중에 어제 그은 듯한 상처는 붉은 기운이 있지만 피는 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상처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아이고. 안 아프니?"


"네 별로 안 아파요."


"꿰매야 할 정도로 깊게 한 적도 있니?"


"아뇨. 죽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서 그렇게는 안 해요. 손목 긋는다고 죽진 않잖아요."


"그래 그러면 왜 하게 되는 거 같아?"


"그냥 하고 나면 잠깐은 괜찮아져요. 죽지 않으려고 한달까. 죽는 거보다는 낫잖아요."


"그래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래도 자해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가 되면 더 좋겠다."


가장 중요한 자살 시도, 자해에 대한 정보를 얻었으니 그다음으로는 우울증의 진단 기준에 맞춰서 질문을 했습니다. 우울증 증상으로는 우울감, 심한 무기력감, 과수면, 체중 증가가 있었습니다. 때때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여 비전형적 우울증의 진단 기준에 부합하였습니다.


"가족은 누구누구 있어?"


"엄마, 아빠, 3살 된 남동생 있어요."


"그래 가족들이랑 사이는 어떻니?"


"괜찮아요.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그래 학교 생활은 어때?"


"학교는 가긴 하는데 가는 게 너무 힘들어요. 가면 또 애들이랑 웃고 떠들고 하기도 하는데, 학교 끝나면 에너지를 다 써서 방전되는 느낌이에요."


"그렇구나 친구들이랑 잘 지내?"


"네 근데 그것도 요즘에는 버거워요."


여기까지 듣고는 외래 기록에 적힌 대로 하나에게는 가정사나 따돌림 등의 특별한 원인이 있지는 않고, 우울증 단독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와의 면담을 마치고 보호자인 어머니와 면담했습니다.


"안녕하세요. 하나와 면담을 했는데 본인 이야기를 많이 하진 않았지만 묻는 것에는 잘 대답을 해주었어요. 어머니 보시기에 하나가 어떤지 말씀해주시겠어요?"


"사실 이렇게 심각할 줄 몰랐어요. 하나가 그전까지는 씩씩하고 알아서 잘하는 느낌이었는데, 저희가 늦둥이 아들을 낳고 나서 관심을 많이 못 가져줬나 봐요. 하나가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렇게 대부분의 보호자분들은 자신의 자식이 왜 지금의 상태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호자의 가설은 참고할 만 하지만 객관적인 사실들이 더 중요합니다.


"그랬군요. 아들을 낳으시고 하나가 어떻게 바뀌었나요?"


"하나가 원래 집에서 말도 많이 하는 편이었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도 곧잘 말했거든요. 공부도 막 잘하는 건 아니지만 다른 애들만큼은 해서 별 걱정이 없었어요. 근데 남동생 가지고 나서는 하나가 말수도 적어지고 저희랑 얘기를 많이 안 하려고 하더라고요. 저희는 그냥 이제 사춘기가 왔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심해질 줄은 몰랐어요. 저희가 맞벌이로 일하면서 남동생까지 케어해야 하니까 힘든 거를 알고 애가 저희를 나름대로 배려해주려고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애가 평소에 배려심이 있는 편이거든요."


"그래요. 아들을 낳으시고 부모님 중에 정신과 진료 보신 분이 있을까요?"


"아뇨 저희 둘 다 한 번도 간 적이 없어요. 그래서 아이 양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런 것도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저희가 둘째한테만 너무 신경을 쓴 거 같아서 첫째한테 신경을 써보려고 하는데 아이가 예민해지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네 그래요. 일단은 하나와 이야기를 많이 나눠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 마음속에 어떤 문제들이 있을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선생님. 하나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해볼게요."


이렇게 면담을 마무리하고 내용을 정리하니 조금 후에 회진 시간이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김하나 환아 입원하였습니다."


"그래. 김 선생 오늘 소아 파트 처음이지? 3달 동안 잘 부탁하네. 환아랑 얘기하고 왔나?"


"네 교수님. 면담하고 왔습니다. 노티 드릴까요?"


노티는 영어 notification을 줄인 말입니다.


"그래. 하나는 어떤가?"


저는 준비해 둔 노티를 읊었습니다.


"15세 여아 김하나 환아 중학교 3학년 재학 중입니다. 우울, 자해, 자살사고를 주소로 입원하였습니다. 2년 전부터 우울감 발생하였다고 하며 특별한 스트레스 요인은 없었지만 그 시기에 환아 남동생이 태어나 부모님의 관심을 덜 받게 된 점은 있다고 합니다. 동반된 우울증 증상으로는 심한 무기력감, 과수면, 식욕증가가 있고 비전형적 우울증이 의심됩니다. 자살 시도는 3차례 정도 있었으며 가장 최근에는 1주일 전 집안에서 목을 매달려다가 환아 부모님에게 발견되어 중단된 시도가 있었고, 이를 계기로 외래 통해서 입원하였습니다."


교수님은 차분히 끝까지 들어주셨습니다. 속으로 노티를 깔끔하게 잘했다는 생각에 흡족해하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물었습니다.


"그래. 1주일 전에는 어쩌다가 자살 시도를 하게 되었다나?"


아뿔싸. 왜 자살 시도를 했는지는 머릿속에 없었습니다. 잠시 기억을 되짚어보아도 '그냥'이라는 단어 밖에 안 떠올랐습니다.


"환아가 어떤 이유로 자살 시도 했는지는 모르겠다 했지만 아마 충동적으로 실행한 것 같습니다. 자살 시도 했던 상황은 저녁에 부모님이 퇴근하고 올 시간이었고, 본인 방 문을 잠그지 않아서 귀가한 부모님에게 들켰다고 합니다."


"그래? 왜 그 시간에 한 걸까?"


"음... 본인 학교 끝나고 와서 한 거라곤 하는데 아무래도 문도 안 잠그고 한걸 보면 부모님이 발견하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죽으려는 의도가 강하지 않았거나 부모님에게 help seeking 하는 목적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 그러면 부모님은 어떻게 반응했다나? 아이가 원하는 대로 관심을 줬나?"


"아 네, 일단 아이는 부모님이 놀랐고 그로 인해 입원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실제로 어머니와 면담했을 때는 그동안 무심했던 것이 원인 일 수 있는 것 같다고, 앞으로는 관심을 더 가져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이 그동안 무심했던 것이 사실인가?"


"어머니 말로는 남동생이 태어나고 환아는 혼자서 잘하는 아이인 것 같아서 무심해진 부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우울증이 이렇게 심해진지는 모르고 있다가 최근 자살 소동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 아버지도 비슷한가?"


"아, 아버지에 대해서는 여쭤보지 못했습니다."


"흐음... 어머니가 주된 양육자 역할을 했던 건가?"


"맞벌이 셔서 같이 양육하긴 했겠지만 주된 양육자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 맞벌이를 하셨다나?"


"아 그것도 모르겠습니다. 여쭤보겠습니다 교수님."


"흐음..."


교수님의 질문에 잘 대답을 하다가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서 질문하자 계속해서 '모르겠습니다.'를 연발했습니다. 계속 안타를 치다가 헛스윙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계시던 임상강사 선생님이 대신 대답해 주었습니다.


"아마 환모는 교사고 환부는 회사원이라서 환모가 육아 휴직을 내고 양육을 하다가 다시 복귀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언제 휴직을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그랬겠구나. 어머니가 교사 시구나. 어쩌면 아이를 키우는데 충분히 관심을 가져주지 못해서 죄책감이 있을 수 있겠어. 하나는 지금 병실에 있나? 같이 보러 가지."


선배와 교수님 셋이서 하나를 보러 갔습니다. 하나는 병실에 앉아서 병동에서 나눠준 프린트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를 병실 밖으로 불러내 서서 회진을 시작했습니다.


- 다음편에 이어

별 내용이 없는데 대화를 많이 담으려다 보니 분량이 길어지네요 ^^;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는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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