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병동에서 CPR 이라니
그 시기에 저는 당직에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5번 연속으로 당직 중에 응급실 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오히려 당직이 기대되기까지 했습니다. 저희끼리는 로딩(loading) 총량의 법칙이라고 해서 아무리 운이 좋아도 결국 1년 동안 로딩은 서로 비슷하게 맞춰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로딩이 적다고 자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스갯소리로 하지만 정말 잘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그날은 제가 참다못해 해선 안될 말을 했습니다. 요즘 나는 당직 운이 너무 좋다고, 동기들에게 자랑했습니다. 그날도 당직 시간부터 잠들기까지 응급실 콜은 없었고, 병동의 간단한 콜들만 있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었습니다. 콜폰이 울려서 잠에서 깬 것은 새벽 4시였습니다. 이 정도면 잠은 충분히 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얼른 오셔야 할 거 같아요. 환자분이 쓰러진 채로 발견 됐어요. 폐쇄병동이에요."
경험 많은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게 다급하고 떨리는 목소리였습니다. 허투루 이런 콜을 할 선생님은 아니었습니다. 심각한 상황임이 틀림없었습니다.
"뛰어갈게요. 30초 면 갑니다"
이불을 걷어차고 크록스 신발을 신고 달려 나갔습니다. 한 계단 올라가면 바로 폐쇄병동이었습니다. 뛰어가는 동안 머릿속에서 CPR 상황시의 절차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병동에 도착하니 방문 앞에 간호사 선생님이 서 있었고, 병실 안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중년 남성 환자분이 화장실 앞에 눕혀져 있었습니다. 오늘 오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분이었습니다. 얼굴이 창백했고 화장실에서 끌고 나온 듯 몸은 힘없는 차렷 자세였습니다. 그 옆에는 다른 간호사 선생님이 쭈그려 앉아 '정신 차리세요' 소리 지르고 있었고, 4인실의 다른 환자분들이 깨어서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나밖에 없었으니 판단은 제 몫이었고,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심전도랑 제세동기 가져와주세요. 맥박 확인할게요. CPR 방송 콜 준비해 주세요. 번호가 뭐였더라?"
"네, CPR 내선번호 1199 에요. 선생님 병동에 심전도 가져와주세요."
목 쪽의 경동맥과 손목 쪽의 요골동맥을 짚으면서 맥박이 느껴지는지 집중했습니다. 원래는 경동맥만 짚는 것이지만 평소에 경동맥을 짚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요골동맥도 같이 짚었습니다.
"환자분 상의 단추 좀 풀러 주세요."
호흡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옷을 벗겨야 했습니다.
"맥박이랑 호흡이 없어요. CPR 시작할게요. CPR 방송해 달라고 해주세요."
인턴 때 실제 환자에게 흉부 압박하는 경험은 정말 많았기에 그 기억을 되살려서 흉부 압박을 시작했습니다.
1분에 100~120회 리듬에 맞추서
숫자를 소리 내서 세며 하나, 둘, 셋, 넷... 열, 하나, 둘셋, 넷... 스물...
오른손 바닥만 닿게끔
깍지 낀 왼손으로 오른손 손가락들을 위로 젖히고
팔뚝은 지면과 수직이 되게
5cm 정도 눌렀다가
올라올 때는 심장이 충분히 이완되게
흉부 압박에 집중하던 중, 30초 정도 지나자 방송이 울렸습니다.
'딩동댕동 CPR 본관 OO 층 폐쇄병동 OO 호, CPR 본관 OO 층 폐쇄병동 OO 호'
첫 번째 방송이 울렸습니다.
'딩동댕동 CPR 본관 OO 층 폐쇄병동 OO 호, CPR 본관 OO 층 폐쇄병동 OO 호'
두 번째 방송이 울렸습니다.
CPR 방송으로는 들어본 적 없는 낯설고도 익숙한 병동 이름이 불렸습니다. 대학병원의 응급 전담 팀이 올 때까지 버텨야 했습니다. 심전도는 도착해서 옆에서 간단하게 전극을 3개 붙였습니다. 흉부 압박을 잠시 멈추고 확인했습니다. 심전도의 전기 신호는 지글지글했고 심장 박동이 없는 심정지 상태였습니다. 흉부 압박을 이어서 했습니다.
3분 정도 지나자 슬슬 교대를 해야 했습니다. 체력 문제로 혼자서 CPR을 해서는 안되기에 간호사 선생님에게 넘겨야 했습니다. 마침 그때 미리 열어둔 폐쇄 병동 문으로 응급 전담 팀 5명이 전력 질주로 달려왔습니다. 익숙한 얼굴들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반가웠습니다.
"CPR 리더 분 상황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응급 전담 팀의 리더처럼 보인 분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5분 전에 쓰러진 것을 발견했고 심정지 확인해서 3분 전부터 CPR 중입니다."
"네 수고했어요. 이제 저희가 볼게요."
환자분을 들것으로 번쩍 들어 올려 침대 위로 옮기고, 침대째로 처치실로 옮겨졌습니다. 처치실로 옮겨지는 동안 체구가 작은 선생님이 침대 위에 올라타 흉부 압박을 지속했습니다. 잠시라도 흉부 압박을 멈춰서는 안 됐습니다.
"페리 라인 잡아주시고 에피네프린 1미리 준비해 주세요. 흉부 압박은 지속해주세요. 전기 충격 준비할게요."
CPR 팀은 일사천리로 움직였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는 말초 정맥로를 잡는 일도 재빠르게 해냈습니다. CPR 리더가 양손에 전극을 들고 준비가 되었습니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와 진짜 멋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의사가 봐도 멋있는 의사들이었습니다.
"자 압박 멈춰주세요. 리듬 확인 할게요. V fib이네요. 전기 충격 줄게요 물러나세요. 하나 둘 셋 shock!"
환자분 몸이 살짝 들썩하면서 전기 충격이 전해졌습니다. 다시 흉부 압박을 시작했습니다.
"에피네프린 준비 됐습니다."
"네 바로 투여하세요. 볼루스로."
"담당 선생님 어디 있어요? 이 환자분 기저 질환 뭐가 있어요?"
저를 찾더니 저에게 물어봤습니다. 제 환자분이 아니었기에 어떤 기저 질환이 있었는지는 몰랐습니다.
"제가 주치의가 아닌데 기록을 보겠습니다."
"네 부탁드려요. 저희가 정신과 기록은 열람이 안 돼서."
기록을 보니 당뇨, 고지혈증이 있었습니다. 먹고 있는 약은.. 항우울제와 항불안제 정도였습니다. 당뇨와 고지혈증 약물은 없었습니다. 환자분은 오랫동안 약을 안 먹었고 그래서 내분비 내과 협진을 내놓은 상태였습니다. 이를 전달했습니다.
"아 고마워요. MI나 stroke 생각해볼 수 있겠어요. 저기 Angio랑 중환자실 어레인지 해주세요!"
"리듬 돌아왔습니다!"
환자분의 심전도가 다시 심장 박동에 맞춰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한시름 놓았습니다. 그렇게 환자분은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제 손을 떠났습니다. 시간은 4시 30분. 30분만에 이 모든 과정이 이루어졌습니다.
병동에는 허전한 정적이 찾아왔습니다. 지켜보던 환자분들도 하나 둘 병실로 돌아가 마저 잠을 청했습니다. 저는 주치의와 교수님에게 연락하고, 인계해주는 것 까지 마무리 하고 당직실로 돌아와 잠을 청하려 했지만 흥분 되어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여러명이 손발을 척척 맞춰 움직이는 모습에서 느껴진 전율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병동에서 스스로 죽고 싶은 생각에 빠진 환자분들이 많은데, 최선을 다해 사람을 살리는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있지 않을까? 환자분들은 무엇을 느꼈을지 궁금해하며 눈만 감고 잠들지 못한채로 아침을 마지 했습니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는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