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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한 해, 한 계절 소중하게

by 춤몽


"엄마, 예전에는 아줌마들이 그렇게 꽃만 보면 카메라 들이대고, 카톡 프로필에 꽃 사진 올려놓으면 되게 촌스럽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내가 이제 꽃만 보면 정신 못 차린다?"


"너도 늙나 보다, 얘. 원래 내 얼굴 조글조글해질수록 탱탱하게 생기 있는 꽃들한테 눈이 가는 거야. 나한테 부족한 생명력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거지. 그리고 나이 들수록 이 아름다운 봄꽃, 내가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해서 더 애틋하고 아까워서 그래. 나도 이렇게 팔다리 근육 다 빠져서 장거리 여행은 엄두도 못 낼 때가 올 줄 알았으면 해마다 전세버스 타고 지방 꽃놀이라도 부지런히 다닐 걸 그랬어."


무게감 없이 툭 던진 얘기에 진지하게 답하는 엄마 앞에서 '나 안 늙었거든?'이라고 장난스레 정색할 수가 없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딸, 사위와 스크린 골프를 치면 혼자 싱글을 기록하고, 탁구 복식경기에서는 젊은이들 땀을 쏙 빼게 만들던 엄마였다. 당일치기로 편도 네 시간 걸리는 지방을 너끈히 운전해서 다녀오는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가 이제는 간경화로 인해 얼굴 부종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왕성하던 식욕마저 사라져 먹는 즐거움도 잃어버린 상태다.


"해마다 한 번 꽃 피는 것처럼 제철 음식 먹을 기회도 무한정 있는 거 아니다. 계절마다 좋은 식재료 날 때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제철에 나는 거 사다가 뭐라도 해 먹어라."


울 엄마가 풀기 없이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 봄 제철 음식을 찾아봤다. 특별할 것 없는 재료인데 굳이 철마다 챙기지 않았던 냉이, 달래, 봄동, 두릅, 도다리 등.


다음 주엔 이것들 중에 한두 가지 사서, 엄마 말마따나 "뭐라도 해서" 엄마랑 마주앉아 한끼 맛있게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일이 새삼 '다짐'을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사실에 눈물이 난다. 내가 그동안 참으로 무심한 딸이었구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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