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호의를 의심해서 미안해요
우리 집 반려견과 햇살 좋은 날, 천변을 산책했다. 한참 걷다가 운동 기구 옆에 있는 벤치에서 쉬려고 자리를 잡았다. 발밑에서 '낑낑' 하는 녀석을 안아 들고 등을 쓰다듬었다. 엎드린 채 꿈뻑이는 녀석의 두 눈이 집에 있을 때보다 작아졌다. 강아지도 눈이 부시면 눈알이 쪼그라드는 모양이다.
오후 두 시, 나는 피부에 스미는 온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주변을 돌아봤다. 전동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도, 강아지 유모차를 끌고 나온 할머니도 겨우내 꽁꽁 얼었던 얼굴이 풀려 한층 여유롭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봄을 맞이하고 계셨다.
저 멀리서 빨간색 니트와 청바지 차림의 중년 여자가 씩씩하게 걸어온다. 그녀가 신은 개나리색 컨버스에 눈이 간다. 봄은 봄이로구나.
20미터, 10미터…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쪽으로 돌진하듯 다가온다.
5미터쯤 남았을 때, 혹시 나를 아는 사람인가 싶었고,
눈앞에서 우뚝 멈춰 섰을 땐 ‘도를 믿으십니까’나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설파하는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재빨리 정색한 표정을 장착하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대응 멘트도 이미 준비된 상태다.
"강아지가 너무 예쁘네요. 간식 하나 줘도 돼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작은 크로스백에서 기다란 막대 간식을 꺼내 우리 강아지 코앞에 내밀었다.
낯선 이를 경계하던 내 마음과는 달리, 녀석은 망설임 없이 간식을 넙죽 받아먹었다. '오드득 오드득, 쫩쫩' 맛있게 씹어 삼키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괜히 머쓱해지고 말았다.
나는 경계를 느슨히 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강아지 키우시나 봐요."
"얼마 전에 하늘나라 보냈어요. 강아지들 보면 그 아이 생각나서 이렇게 간식 들고 다니면서 만나는 강아지들한테 하나씩 주곤 해요. 츄르도 항상 넣어 다니고."
그녀는 강아지와 함께 산 경험이 있고, 길고양이까지 챙기는 애견인이자 애묘인이었다.
"아..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까 그 간식의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았는지, 성분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나중에 우리 강아지가 이상 반응이라도 보이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슬쩍 피어올랐다.
몇 년 전 강남 모 지역 학원가의 마약 음료 사건 이후로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낯선 사람이 주는 음료나 간식을 먹지 말라고 교육하고 있다. 나도 아이가 학원 홍보물에 끼워진 사탕이나 마이쮸를 받아오면 별로 달갑지가 않다.
친정 엄마도 가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귀여운 아이가 앉아 있으면 가방에 있는 사탕이라도 하나 꺼내 쥐여주고 싶은데, 요새 젊은 엄마들이 싫어할 것을 알기에 그러지 못한다며 씁쓸해 하신 적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질병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고, 친밀함을 무기 삼아 흉흉한 일을 벌이는 사건도 빈번한 시대라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다닐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개나리색 컨버스를 신은 여성분이 주신 작은 호의에도 감사함보다는 의심부터 솟아나는 못난 나의 성정이 각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은 아닐까.
일면식도 없는 그녀의 호의를 잠시나마 오해해서 미안하다. 우연히라도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 표현하지 못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