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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에 바스러지는 이도 있지

by 춤몽


나는 봄을 타는 여자였다.


봄.


하늘하늘 떨어지는 벚꽃 잎 한 장에도 마음이 출렁이고, 불어오는 바람에 온기가 묻어나면 낯선 곳에 발을 내딛고 싶은 계절.

나에게도 이렇게 촉촉한 구석이 있었나 할 정도로 마음에 습기가 차는 계절.


겨울잠 자던 설렘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날 때, 하나둘 움트는 새싹을 보며 내 아이의 이름을 ‘봄’이나 ‘연두’로 지을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봄바람이 싣고 온 황사와 꽃가루 때문에 아이가 매년 봄, 결막염과 비염을 달고 살게 된 이후부터 겨울이 끝나고 기온이 0.5도씩 오르면 심란함이 앞선다. 올해는 안과에 몇 번을 가야 하나, 쉬이 멎지 않는 코피를 수습하느라 몇 날 밤을 지새우고, 또 몇 통의 휴지를 써야 하나.


봄을 예전만큼 기다리지 않게 된 것도, 좋아하는 계절이 가을로 바뀐 것도 순전히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다 얼마 전, 어떤 이에게는 봄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계절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음을 깨닫게 해주는 한 구절을 마주했다.



겨울에는 우울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봄은 우울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만든다. 자신만이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겨울에는 누구나가 갇혀 있지만 봄에는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자들만이 갇혀 있는다.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中



누군가는 봄꽃 개화 시기와 꽃 축제 정보를 검색하는 동안, 또 다른 누군가는 봄이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길어진 해를 피해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숨으려 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장범준의 <벚꽃 엔딩>을 흥얼거리며 연인과의 데이트에 입고 나갈 옷을 고민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10CM의 <봄이 좋냐>를 들으며 손 맞잡은 연인들을 저주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계절을 탄다'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계절이 되면 들뜨고 설레거나, 헛헛하고 우울해지거나.


당신에게 봄은 어떤 계절인가.




[참고]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장범준, <벚꽃 엔딩> 가사 중.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벚꽃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

결국 꽃잎은 떨어지지

니네도 떨어져라

몽땅 망해라

-10CM, <봄이 좋냐> 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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