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야, 오늘 밤에 울 엄마 온대
제주에서 남은 5일은 생생슈퍼 아줌마 딸, 지수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했다. 검게 그은 얼굴 위에 박힌 주근깨부터 또랑또랑한 목소리까지, 나는 지수의 모든 게 좋았다. 입을 크게 벌리고 웃을 때마다 지수의 은색 어금니가 은테 두른 우리 할머니 물안경처럼 반짝 빛났다.
나는 얼마 안 있으면 서울로 돌아가는데 지수와 조금 더 일찍 친해지지 못한 게 아쉬워서 날마다 지수를 만나러 슈퍼에 갔다. 지수와 쌍쌍바를 쪼개서 나눠 먹기도 하고, 슈퍼에 딸린 작은 방에서 만화 영화를 보며 자다 깨다 하기도 했다.
금요일 점심에는 아줌마가 짜파게티를 끓여 주었다. 지수와 나는 제 꼴은 모르고 까맣게 물든 서로의 입술을 쳐다보고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오늘 밤에 서울에서 우리 엄마 온다. 할머니 집에서 두 밤 더 자고 엄마랑 서울 가.”
“정말? 벌써? 너랑 놀아서 진짜 재밌었는데……. 아니다, 다음에 또 만나면 되지. 겨울 방학 때 또 올 거지?”
지수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보고 싶어 밤마다 잠자리에 누워 찔끔찔끔 눈물을 흘렸던 사실을 까맣게 잊고, 나는 지수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까지 찍었다.
“예솔아. 김예솔! 우리 공주!”
그리웠던 목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졌다.
“엄마!”
마음이 급한 나머지 나는 할머니 슬리퍼를 짝짝이로 신고서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엄마는 회사에서 곧장 왔는지 정장 차림에 작은 가죽 가방을 메고 있었다. 나는 엄마 허리를 꽉 안고 젖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엄마, 엄마 가슴에서 장미 향 나.”
“이거 엄마가 자주 뿌리는 향수. 오는 동안 냄새 다 날아갔을 텐데 예솔이 개코네.”
엄마가 내 코를 입술로 와앙 깨물었다.
“선희야, 배고프지? 어서 저녁 먹자. 예솔이가 즈이 어멍 오면 먹겠다고 아까부터 쫄쫄 굶고 있엇저.”
할머니가 밥을 푸는 동안 엄마는 할머니의 꽃무늬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할머니, 엄마, 나, 그리고 오늘은 할아버지까지 한자리에 앉았다. 식탁 앞에 네 사람이 모인 건 처음이었다.
(8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