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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저한테 왜 이러는 걸까요?

당근을 손에 쥐고 쓰는 글

by 춤몽

첫 브런치 북 <키친 드링커>를 내고 제 브런치 계정은 잡초로 무성한 정원이 된 채, 저를 2년 반 동안이나 기다려 주었습니다.


앞뒤 말이 다르게도 '공개 글쓰기가 알코올 중독을 치유해 나가는 과정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는 글을 끝으로 브런치에서 슬쩍 발을 뺐습니다. 그 후에 쓴 글은 업로드가 극히 간헐적이라 어디 가서 '브런치 작가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어요.


<키친 드링커>를 쓰면서 저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직시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이 작품을 통해 제 알몸과 민낯을 드러냈기에 한동안 숨어 지내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은둔하는 동안 중독에서 해방되기 위해 정신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인생을 나락으로 몰고 갔던 알코올 사용 장애를 티 나지 않게 말끔히 떼어보려 애썼지만 덕지덕지 지저분한 흔적만 남긴 채 떨어진 스티커 같이 그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음을 고백합니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험난했던 여정은 언젠가 또 한 권의 책이 될 것이기에 자세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생략하겠습니다.



브런치를 쉬는 기간에도 쓰기를 손에서 놓은 건 아닙니다. 입 밖으로 뱉지 못한 문장이 가시처럼 목구멍에 걸리면 노트를 펼치고 앉았습니다. 뾰족한 연필심으로 백지의 등을 빈틈없이 긁어주고 나면 가려움이 해소되어 얼마간은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어요. 노트가 없을 땐 블로그 비공개 카테고리 뒤에 숨어 단어를 실컷 토해냈습니다.


집 나와 오갈 데 없이 방황하다가 쭈뼛쭈뼛 친정집 찾아가듯 한 달 전에 브런치 문을 빼꼼 열었습니다.

저의 계정에 뽀얗게 앉은 먼지 탈탈 털어내고 2월부터 요일을 지정해서 단편소설과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어요.

소수지만 지나가다 읽어 주시고 댓글 달아 주시는 소중한 독자분들 덕분에 연재일 밀리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어제 작은 사건(?) 터졌습니다.

여행지에서 갓 구워 온 웃픈 일상 에세이를 하나 올렸는데 그게 조회수가 폭발한 거예요. 조회수가 급상승한 경로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실시간으로 앞자리 숫자가 바뀔 때마다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더군요.

과거에 <키친 드링커>를 쓰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글이 2~3일 만에 조회 수가 만 단위를 찍길래 이런 일이 자주 있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런 행운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첫 번째 행운은 이제 갓 브런치에 입문한 초보 작가를 응원하는 선물이었나 봐요.)


그러다가 2년 반 만에 마음을 비우고 돌아온 브런치에서 두 번째 로또를 맞고 얼떨떨했습니다.

'진정하자, 진정해. 구독자 수, 조회 수에 일희일비하지 마. 나는 그저 쓰는 사람이 되겠다, 작가로서 희미해진 정체성을 회복하겠다는 마음으로 글 쓰는 거야.'


하지만 심장은 눈치 없이 종일 나대고, 머릿속은 도파민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79349a9a5bb846e/78


바로 위 글인데요, 이틀 만에 2만 명 이상이 눌러 주셨더라고요. (2만 '조회 수'가 2만 명 '완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만요.)


이런 뜻밖의 일이 일어난 이유는 딱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복귀한 나에게 브런치가 주는 선물.


'작가님, 긴 방황 끝에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앞으로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라는 환대의 표시로 포털 어딘가에 제 글을 노출시켜 준 것 아닐까요.

기다려주신 작가이자 독자였던 분들과 방치되었던 브런치에게 염치없지만, 제게 쥐여준 당근,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조회 수가 목표는 아니지만 동기를 잃지 않도록 큰 힘이 되는 건 부정할 수가 없네요.


애정을 가지고 부족한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독자가 한 분이라도 계시면 앞뒤 재지 않고 계속 써 나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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