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맞춤 식단
해가 길어졌다. 한 달 전과 같은 시간에 일어났는데 방 안이 환하다. 일어나자마자 기지개를 켜고 침대 밑 강아지 방석에서 똬리를 틀고 자고 있는 반려견을 힐긋 내려다본다. 내가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아직 단꿈을 꾸는 중이시다.
침대에서 스트레칭하느라 부스럭거리면 강아지가 실눈을 뜨고 고개를 든다. 강아지도 푹 자고 일어나면 눈이 퉁퉁 붓는다. 강아지 계단을 침대에 붙여주니 기다렸다는 듯 후다닥 올라와 내 품에 안겨 턱을 핥는다. 녀석의 미간을 문질러주고 엉덩이와 등을 가볍게 꾹꾹 눌러주면 '끄흐흐응' 하며 신음 소리를 낸다. 사람으로 치자면 '아흐, 시원하다' 쯤 되겠다.
등 마사지를 끝내고 '배꼽~' 하고 말하면 강아지는 내게 핑크색 배를 드러내며 벌렁 눕는다. 녀석의 연하고 보드라운 배를 다섯 손가락 끝으로 살살 만져주면 눈을 실실 감으며 내 손길을 느낀다. 강아지를 끌어안고 이불 속에서 뒹구는 10분의 힐링 타임 없이는 이제 아침을 시작할 수 없다.
강아지가 전해준 온기와 에너지를 동력 삼아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 끙차, 힘을 내 몸을 일으킨다.
토스트를 굽고, 브로콜리를 찌고, 믹서기로 요란하게 토마토를 갈 때까지도 남편과 아들은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강아지마저도 말이다. 살금살금 걸어가 방안을 들여다보니 강아지는 아직 꿈나라에 있는 아들의 옆구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납작 엎드려 있다. 잠이 덜 깼는지 눈을 느리게 떴다 감았다 한다.
게으른 녀석. 널 깨우는 마법의 소리가 있지. 10분만 기다리시라.
끓는 물에 달걀 네 알을 넣는다. 8분 30초가 지나면 세 알을 먼저 꺼내고 남은 한 알은 1~2분 더 익힌다.
남편, 나, 아들을 위한 촉촉한 반숙란 세 알과 강아지를 위한 완숙란 한 알이 완성되었다. 2킬로그램도 되지 않는 초소형견을 위한 완숙 레시피는 달걀을 덜 익혀서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비한 것이다.
탁, 타닥, 탁.
싱크대 상판에 10분 삶은 달걀을 리드미컬하게 두드리면 강아지는 눈꺼풀에 매달린 잠기운을 벗어던지고 방에서 뛰어나온다. 마룻바닥에 닿는 발소리가 꽤나 급하다.
종소리, 아니, 달걀 껍데기 쪼개지는 소리에 침샘이 폭발하는 파블로프의 개가 우리 집에 산다.
내가 달걀 껍질을 까는 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앉아 있지만, 혀는 눈치 없이 자꾸 입 밖으로 날름날름 기어 나온다.
달걀을 삶는 아침에는 강아지가 우리 집 기미상궁이다. 달걀을 손으로 조금씩 떼어주면 강아지는 내 손을 해하지 않으려 무척 조심스레 받아먹는다. 손끝에서 뭉개진 노른자까지 남김없이 핥아먹는 강아지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
우리 집 막둥아,
네 덕분에 너와 함께한 1년의 아침은 계절에 상관없이 포근했단다.
너만을 위한 완숙란은 엄마가 평생 책임질 테니 세상에 둘도 없는 장수견이 되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