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문 닫습니다

by 김혜진

겨울 햇살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골목의 그림자를 베어내며 들어왔다. 해마다 이맘때면 담장 밑 흙먼지 사이로 얼음 섞인 바람이 휘몰아쳤지만, 이름 모를 풀잎 하나가 용케도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그 풀잎을 밟으며 소리 없이 담벼락을 탔다. 페인트가 비늘처럼 벗겨진 오래된 집들 사이, 골목의 막다른 끝자락에 낡은 양철 간판 하나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행운슈퍼’.


글자 중 ‘운’ 자의 받침이 살짝 휘어져 있어, 멀리서 보면 ‘행우슈퍼’처럼 보이기도 했다. 행운이라는 말이 주는 설레는 기분과는 거리가 먼, 늘 조용하고 가끔은 고인 물처럼 쓸쓸한 공간이었다.


강 노인은 장갑도 끼지 않고 마디 굵은 손으로 셔터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쇠의 감촉이 손바닥에 착 달라붙었다.


“에구구...”


낮은 신음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셔터를 올리는 일은 지난 삼십 년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은 일과였으나, 오늘만큼은 그 무게가 평소의 몇 배는 되는 듯했다. 녹슨 셔터가 비명을 지르며 말려 올라갔다. 덜컥거리는 소리가 정적을 깨우며 골목으로 퍼져나갔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아직 동네 사람들의 발소리도 들리지 않는 새벽녘, 강 노인의 손등 위로 내려앉은 햇살은 유독 따뜻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은 잠시 머무는가 싶더니 금세 마른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차가운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가슴 깊은 곳까지 시린 기운이 전해졌다.


가게 문 앞에는 어제 미리 붙여둔 작은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노란색 포스트잇은 밤새 불어온 바람에 모서리가 조금 말려 있었다. 강 노인은 돋보기를 꺼내지 않고 그 문장을 가만히 읽어 내려갔다.


“이제 문 닫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글씨는 삐뚤삐뚤했고, 마지막 줄은 유독 선이 흔들려 있었다. 노인의 손이 떨려서였는지, 아니면 마음 한구석이 떨려서였는지 본인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손끝으로 그 흔들린 글자를 한 번 쓸어본 뒤, 미닫이문을 옆으로 밀었다.

수,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