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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비 Jul 17. 2022

Ep 12. 금곡 전투

최초의 야간 공습, 그리고 전령의 전사

  26일 오전 6시, 중앙청에 감격의 태극기를 올린 나는 잠시의 휴식을 가질 여유도 없었다. 전투단 본부에서는 금곡지구에 부대를 재편성하고 있는 괴뢰 잔병들을 추격하라는 것이었다.


  을지로의 산발적인 시가전을 치르면서 왕십리까지 진격한 우리는 그곳 시민들로부터 당시 서울 사범대학 내에 수많은 괴뢰군들이 숨어 있다는 정보를 받았다. 전투 본부에서 이 같은 정보를 받지 못한 나는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진격군인 나로서는 일단 이곳을 그대로 지나갈 수는 없었다. 먼저 부하 2명을 사대 건물로 보내 사실 여부를 알아보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약 3분도 채 안 된 시간이었다.

따르륵. 따르륵.

따발총 소리가 요란했다. 서울 사대 내에 괴뢰군이 잠복해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곧 나의 소대원들을 전투 대열로 배치시킨 뒤 건물 안으로 숨어들었다. 밖에서 따발총 소리를 듣고 긴장했던 것보다 상대 병력이 의외로 적은 것 같았다. 약 10여 명이 우리에게 사격을 가하는 정도였다. 그것도 두 명이 따발총을 가졌을 뿐 나머지는 권총과 따콩총으로 무장한 듯했다.


  30분 동안에 2명을 체포, 5명을 사살했다. 그들은 우리의 기관총 사격에 제대로 대항하지도 못했다. 나는 포로로부터 이곳이 괴뢰 상병들의 임시 수용 병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교실 속에 들어간 나는 괴뢰병들의 신음소리와 썩어가는 팔다리 냄새를 맡고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너무도 많은 부상병이었다. 교실마다 쓰레기를 버리듯이 나동그라진 괴뢰 부상병들은 아군과 적군을 가릴 여유도 없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고, 어떤 부상병은 지나가는 나의 발을 껴안고 사살해줄 것을 애원하기도 했다.

차마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수용되어있는 부상병들은 모두가 서울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듯했다.


  나는 이 사실을 CP(지휘부)에 알리고 난 뒤 곧 금곡으로 향했다. 이날 정오에 CP를 출발한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오후 6시가 넘었다. 조금 뒤면 괴뢰군들이 날뛰는 어둠이 계곡을 엄습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주간 전투만을 해오던 나는 약간 당황했다. 넓은 능선과 그리고 계곡이 이곳저곳에 펼쳐져 있어 지형상의 불리한 조건이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지구의 최후의 3차 방어선을 편 괴뢰병들의 화력은 물론 병사들의 숫자도 약 1천 명은 족한 듯했다.


  우리의 진격을 알고 있는 그들은 벌써부터 120mm 박격포 공격을 가해오고 있었다. 그런데다 금곡 능선은 산악이 험악했고, 다박솔 나무가 우거져있어 적의 위치를 확실히 파악할 수 없었다. 나는 적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다박솔 사이로 금곡 능선을 기어올랐다. 적의 정찰병이 어느 곳에 숨어있는지 내가 움직일 때마다 기관총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전투 대열의 재정비를 위해 우리는 계곡에서 일단 후퇴했다. 벌써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우리는 이때 81mm 박격포 9문을 소유한 중화기중대를 갖고 있었는데, 서정남 중대장(당시 대위)은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가 공격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괴뢰군들이 야간 전투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쫓기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우리가 야간 공격을 감행해보자고 했다. 서 대위는 적의 위치가 분명치 못해 박격포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을 들어 야간 전투를 거절했다. 나는 서 대위에게 내가 직접 측정기를 가지고 고지에 올라가겠다고 제의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원경 소위도 자신은 직접 사수가 되어 적을 명중시키겠다고 나섰다. 측정기를 갖고 고지에 올라온 나는 밝은 낮에 적을 정찰하는 것보다는 밤이 훨씬 유리한 것을 알았다. 나는 이때부터 내가 총 지휘관이 된 소대 전투를 할 때마다 밤낮이 없는 전투를 감행하게 되었다.


  적은 고지 아래 계곡과 그리고 다음 능선에 분산되어 있었다. 나로부터 정확한 적의 위치를 연락받은 이 소위는 능선 아래 계곡에서 적을 향한 박격포 공격을 시작했다. 밤 10시께- 조용하기만 했던 산야는 온통 불꽃놀이를 하는 듯했다. 그리고 야간 공격을 받을 생각도 않은 채 오히려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괴뢰병들은 우리의 뜻밖의 공격에 무척 당황했다. 아군의 기관총 사수들은 고지에서 산 아래 계곡의 괴뢰병들에게 숨 쉴 사이 없이 사격을 가했다.


  나는 이때 대원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순찰을 시작했다. 한참 동안 따박솔 사이를 기어 아래쪽으로 내려가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퍽 · 퍽

하는 소리가 매우 둔탁한 가운데 기분이 좋지 못했다.


  약 10m가량을 우측으로 기어간 나는 그곳의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첫 번째 야간 전투가 무서웠던 때문인지 총신이 빨갛게 달궈져 있는데도 계속해서 방아쇠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때문에 총탄은 [퍽 ·퍽] 소리를 내면서 바로 발 앞에 떨어지고 있었다. 너무도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를 나무랄 수가 없었다. 첫 야간전투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윽고 날이 새는 듯했다. 새벽 4시 30분을 넘자 적의 위치가 변경되어 있었다. 계곡에 있던 적들이 모두 다음 능선 고지의 중간지점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나의 전령 고형일 이등병을 데리고 적의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고지 꼭대기로 기어올랐다. 쌍안경을 눈에 대고 열심히 관찰하고 있을 때였다. 딱쿵하는 소리와 함께 쌍안경이 올려져 있는 바로 눈 아래에 철모 크기만 한 돌멩이가 박살이 났다. 가슴이 서늘했다. 너무도 정확한 조준이었다. 나는 이곳이 아주 위험스러운 것을 깨닫고 위치를 옮겼다.


   10m쯤 아래로 내려온 내가 다시 쌍안경을 보고 있을 때 또다시 따콩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윽]하는 비명이 들렸다. 이윽고 또다시 따콩 하는 소리와 함께 나의 철모가 위로 치켜지는 것을 느꼈다. 다급해진 내가 위치를 옮기는데 전령은 움직이지를 않았다. 나의 어깨 밑에 얼굴을 내밀었던 전령의 이마에 총탄이 명중한 것이었다. 싸늘한 시체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철모 역시 이마 바로 위에서 45도 각도로 총탄이 뚫린 것을 알았다. 인천 상륙 이후 총 전사자 2명 중 한 명이 나의 전령이 되고 만 것이다.





안녕하세요, 올비입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약 1년간 휴재했다가 오늘에서야 다시 연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할아버지의 스펙타클한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으니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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