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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이 Nov 06. 2022

금주로 알게 된 것들

[나의 삶을 변화시킨 것들]

혼술은 나에게 중독적인 습관이었다. 20대부터 이어진 혼술 습관은 마흔이 넘어서도 지속되었다. 혼술은 현실의 나를 잊을 수 있게 도와줬다. 내가 가진 두려움이나 상처들을 술독 안에 가둬놓고 들여다보지 않았다. 술만 마시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삶도 변하지 않는다. 20대부터 지속된 혼술은 나의 성장을 가로막았고, 어른이 되지 못한  나이만 먹었다. 혼술을 하며 귀와 눈을 닫고 나만의 세계에만 빠져 있었다. 그것이 나를 온전히 느낄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금주는 생각지 않게 시작되었다. 건강검진을 위해 3 전부터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전에 수없이 금주에 실패했었는데,  어떻게 금주에 성공할  있었을까?  누가 봐도 알코올 중독자였고,  없이는   없을 사람처럼 살아왔다. 술을 자주 마신다는  들키고 싶지 않아  편의점,  편의점을 바꿔가며 술을 샀고, 몸이 아플 때조차 술을 마셨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술이 떨어지면 귀찮음을 무릅쓰고 술을 사러 나갔다. 저녁 대신 술과 안주를 먹었고, 아이들도 엄마의 그런 모습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기분이 나쁘면 나쁜대로 술을 찾았고, 비나 눈이 내리는 술을 마실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는 것 같아서 맑은 날보다  좋았다.


처음부터 알코올 중독을 인정한  아니다. 인정하지 않았기에 스스로를 자꾸 합리화시켰기에 지금까지 술을 마셔  것이다. 우울증으로 병원을 다니면서 선생님들은 나의  습관을 걱정하셨다. 마지못해 알코올 중독 테스트를 받고선 바로 병원을 다른 곳으로 옮겼고, 옮긴 병원에서는 일주일에  번만 마시기를 권하셨다. 하지만  일주일에  번만 마실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맥주  캔으로 만족할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술을 자주 마시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이는 것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쉽게 무시했다. 여자가 남자랑 10 동안 똑같이 술을 마셔도 여성의 장기가  금방 망가진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무시한다고 듣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미  말들은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과 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번져갔다. 마흔이 넘으면 건망증도 심해지는데,  때문인  같아 무서웠다. 아이들이 나처럼 술에 지배당하는 삶을 살까  두려웠다. 나만의 세계에서 자유롭고 싶어 마신 술은 어느새  멱살을 잡고 숨통을 조여왔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술을 마셨지만 내면에서는 술에 중독된 나와 내면의 자아가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며 싸우느라 속이 시끄러웠다. 아무리 술에 취한들 아닌  맞다고 우길  없었다.  장기들은 망가지고 있었고, 아이들은 엄마가  마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자연스럽고 일상이 되어버린 모습이었으므로.


술은 사실 나와 친해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술 마시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특히 엄마나 새아빠가 술을 마시는 날엔 늘 사달이 났다. 덩치가 큰 새아빠는 가볍게 엄마를 제압했고, 가차 없는 폭력에 엄마는 쓰러졌다. 그때부터 난 술에 취한 아저씨들을 혐오했다. 하지만 술에 취한 내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가도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져서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버럭 화를 낼 때도 있었고, 잠들기 직전까지의 일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내 자신을 속일 순 없었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걸 알았고, 내 삶에 변화가 필요했다.


마흔이 넘으면서 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 됐고,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무섭고 두렵기만 한 죽음에 대해서도 진지하고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됐고,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지 자신에게 계속 되물었다. 그 중심에는 술이 있었다. 술에 지배당한 채 계속 살아야 하는가. 매일 술을 마실지 말지를 선택하느라 온 신경을 그것에만 집중하며 살 것인가.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만 하면 되었다.


사실 평생 술을 마시지 않고 살 자신은 없었다. 내 인생에서 술을 빼면 어떤 것도 서로 연결시킬 수 없다. 수없이 상처받으며 깨진 내 마음을 술이 아니면 무엇이 달래줄 수 있을까? 술을 마시지 않아서 삶의 낙을 잃는 것보다 맨 정신으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더 두렵고 자신 없었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계속 술에 의지하며 힘든 일이 있을 땐 언제나 술이 함께 했다. 맑은 정신으로 현실을 마주한 적이 없다는 얘기다.


금주를 한 지는 260일이 지났다. 생각보다는 담담하게 크게 흔들리지 않고 그 시간을 거쳐서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의 나는 금주 전의 나와 다른 사람이다. 저녁시간에 술을 마시지 않으니 남는 시간이 많았다. 처음에는 운동만 했는데, 근육을 키워나가는 것은 마음까지 성장시켜 주지 못했다. 그래서 책을 보기도 하고, 외국어 공부도 시작했다. 외국어 공부는 매년 신년 계획에 빠지지 않았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씩이라도 매일 꾸준히 하고 있다.


술을 끊으니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삶의 의욕이 생겼다는 말이다.  살아야 하는지,  하고 싶었는지 몰랐던 내가 금주를 하고 내면의 소리에  기울이면서 가고자 하는 방향을 알게 됐다. 가고자 하는 방향을 알게 되니 내일이 기대되고  삶을 찾은  마냥 신났다. 술을 마시느라 허비한 시간들이 아깝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다.  되고 싶은 것도 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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