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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이 Nov 08. 2022

아이들이 나에게 준 것들

[나의 삶을 변화시킨 것들]

아이들이 없었다면 내가 변할 수 있었을까? 아이를 낳은 이후 내 삶의 이유가 아이들이 되었다. 마흔이 넘어 그토록 고민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맸던 것은 삶의 이유가 아이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아니면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았다.


첫 아이는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나의 부족한 부분, 두려운 부분, 예민한 부분들을 여실히 드러나게 했다. 그리고 올바른 삶과 가치관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고 되묻게 했다. 내 가치관이 그대로 아이에게 대물림될 것을 알기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나 식물이나 동물을 대할 때도 더 조심스러워졌다. 운전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화가 난 적이 있는데 아이가 상대편 사람이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라고 했다. 순간 뜨끔했고, 아이에게 부끄러웠다. 나이 많으신 분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화가 났을 땐 내 생각밖에 하지 못한 것이다. 항상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기에 어느 것에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금주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건강에 대한 두려움보다 아이들에게 느끼는 죄책감이 더 컸으므로 금주까지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매일 술을 마시는 엄마를 보며 그것이 일반적인 삶이라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부모를 관찰한다. 부모의 행동이나 말 하나하나에 집중하지 않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따라 하게 된다. 사람이 좋은 습관만 가질 수 없지만, 나쁜 습관을 줄여갈 수는 있다. 금주를 하며 아이들에게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쁜 습관도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어쩜 분리수거도 대충하고 급할 땐 새치기도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한 번은 하교 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가다가 늦을 것 같아서 빨간불에 길을 건넌 적이 있었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지만, 1,2분 늦는다고 큰일 날 일도 아니었다. 아이가 보고 있었다면 절대로 빨간불에 건너지 않았을 텐데 위선적인 모습에 자괴감이 들었다. 또 한 번은 아이 옷을 사러 갔다가 피팅룸에서 피팅을 하는데 사이즈가 안 맞아 아이를 남겨둔 채 얼른 나가 다른 사이즈의 옷을 가지고 다시 들어갔다. 그때 피팅룸 앞에는 줄이 길게 서 있었다. 당연하게도 불의를 참지 못하는 사람에게 한소리 들었고 너무나 창피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도덕적으로 물의를 빚었고, 따가운 시선과 질타를 죄 없는 아이가 함께 받아야 했다. 그날은 종일 양심의 가책과 아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마음이 불편했다. 잘못이나 실수를 하는 모습은 아이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데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될 때에는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오르고 식은땀이 흐른다. 그래도 엄마가 뭘 잘못했는지 정확하게 집어 주는 걸 잊지는 않았다. 나보다는 좀 더 나은 어른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엄마와 애착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애정에 목말라했으며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 누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곧이곧대로 믿지 못했다. 나의 본모습을 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떠나갈 것을 두려워했다.

나의 엄마는 칭찬에 인색했고, 막말이나 욕, 폭력도 서슴지 않으셨으며 오빠와 나를 차별하셨다. 그것들로 내 인생이 불행해졌다고 생각했고, 내 아이에겐 나와 같은 경험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애착과 자존감 형성에 목을 맸으며 조금이라도 어긋났을 땐 스스로를 탓하며 우울한 밤을 보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갖지 못했던 것에 집착하여 그것을 아이에게 투영시킨 것이 나와 아이를 더 힘들게 했다고 생각한다. 애착형성의 과도한 집착과 그로 인한 나의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을 것을 이제는 안다.


아이들은 내가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게 만든다. 나는 도덕적 가치를 생각하고 윤리적 규범을 지키려고 애쓴다.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고, 쓰레기를 땅에 버리지 않고, 되도록 고운 말을 쓰려고 하며 새치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당연한 것이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잘못된 행동을 하는 불완전한 어른이기에 끊임없이 생각하고 기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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