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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이 Nov 20. 2022

전업주부의 글쓰기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해야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을 나열하여 어떤 것부터 해야 할지, 어떤 것은 포기해야 할지를 정해야 한다. 양육을 하고 살림을 하는 것은  해야 하는 일들이지만, 굳이 오늘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도 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데려와서 밥을 먹이는 일은  해야 하지만, 집안일은 하루 정도 미룬다고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집이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계속 신경이 쓰이는 불편함이 있다. 빨리 해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완벽하게 모든 일을 처리하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다.


내가 요즘 하고 싶은 일들은 글쓰기, 책 읽기, 운동하기, 공부하기, 먹방 보기, 낮잠 자기이다.

글쓰기는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집중을 필요로 한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거나 고양이가 와서 놀아달라고 조르면 집중을   없고,  일이 쌓여 있으면 마음이 어지럽다. 그러다 보면 많은 것을 쓰지 않았음에도 어떤 일을  때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글을 쓰다가 고양이  주는 것도 깜박하고, 아홉  둘째 재우는 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와중에 듀오링고(언어 공부 앱)를 하루라도 빼먹으면    같아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야 하고 운동을  하면 죄책감이 든다.


금주를   저녁 시간에 운동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루틴이었기에 운동을 포기하고 글을 쓰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운동을 하는 것은 즉각적인 성취감을 주었지만,   많은 시간을 들여 글을 쓰는 것은 그만큼의 성취감을 안겨주진 않았다. 저녁시간 내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써야  때가 많았고 들인 시간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두렵고 피하고 싶은 일이 가장 하고 싶거나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말처럼 글쓰기가 나에겐 그랬다. 글을 쓰는 것이 너무 좋으면서도 키보드 앞에 앉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다른 일을 하며 피하기도 한다.


글쓰기 대신 운동을 선택한 날에는 나에게 묻는다. 이것이 나에게 글쓰기만큼 필요하고 중요한 일인가? 머리는 아니라고 하면서 몸이 땀으로 젖어갈수록 뿌듯한 성취감을 느낀다. 그런데 글쓰기는 어떠한가? 글을 쓰면서도 자신이 없다. 이런 글을 써도 되나 의심이 들고 다른 사람에게 공감받을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다. 쓰고 고치고를 반복하지만,  나은 글이 되어가는지는 모르겠다. 확신도 자신도 없지만 나는 글을 써야만 한다. 내가 원하기 때문에.


내향적인 나에게 글쓰기는 소통의 도구이다. 나는 사람들과 말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긴장부터 하게 된다. 어렵게 말을 시작하더라도 중간에 대화가 끊기면  때문인  같아 어떻게 해서든 다음 말을 쥐어짜 내다 아무 말이나 내뱉어 실수를  적도 있다. 친구들을 만났을  마음만 앞서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하고 아는 단어도 바로 떠오르지 않았으며 흥분해서 말하다 혀가 꼬이기 일쑤였다. 하고 싶은 말을 잊어버릴까 조급한 마음에  허리를 자르는 일도 잦았다.


이런 나에게 글쓰기는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준다. 긴장하거나 흥분하지 않아도 되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자르는 무례를 범하지 않아도 되며 숙고하여 단어를 고르기 때문에 무지함을 어느 정도는 숨길 수 있다.


그리고 글쓰기는 나를 알아가는 매개체 역할도 한다. 글을 쓰면서   깊이 나를 들여다보고 사유할  있게 되었다. 끊임없이 되묻고 생각하면서 나만의 가치관을 확립할  있고, 그것을 믿고 따라가다 보면  끝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터이다. 아마도 나를 알아가는 것은 끝이 없을 것이고, 가치관은 나이가 듦에 따라 변할  있겠지만, 결국 지향하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기에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던 것은 내가 겪은 변화들을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금주를 하며 알게 된 것, 마흔이 넘어 알게 된 것,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것 등등. 새롭게 알게 되고 깨닫게 된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두려움을 이기고 용기를 냈다. 비슷한 상황을 겪고 똑같은 일을 한다고 같은 변화를 겪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런 길도 있다는 걸 공유하고 싶었다. 새롭게 깨닫게 된 것과 삶을 변화시킨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위로가 되고 삶을 살아가는 데 작은 힘이 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다른 일들(운동이나 먹방 보기)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매일 꾸준히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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