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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이 Nov 23. 2022

혼자만의 시간

<나를 알아가는 글쓰기>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느낀 건 아이를 낳고부터다. 그전까지는 혼자만의 시간이 충분하다 못해 넘쳐흘렀기에 그 소중함을 몰랐다. 내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는 것도 몰랐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힘들어서 대인기피증을 의심했던 이십 대 시절,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에 그저 내가 유별나다는 생각만 들었다. 난 왜 사람들과 편하게 어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 있는 걸까?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 열등의식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못난 내 자신을 탓하느라 우울증만 깊어졌다. 그때 혼자 있는 시간은 나의 의지로 주어진 것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람들 속에서 괴로워하는 대신 상처받지 않는 고독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 고독 속에서 스스로에게 더 큰 상처와 고통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결혼을 해서 혼자 있는 시간이 힘들었다. 지금의 나로선 이해할 수 없지만 남편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아이를 낳고서도 저녁에 아이와 둘만 있으면 불안하고 초조했다. 혼자 아이 밥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는 것이 왜 그리 두렵고 불안했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조용한 집이 그립지만 그 시절엔 적막한 집이 숨 막히도록 답답했다. 저녁만 되면 짙게 드리워지는 불안의 그림자. 아이는 나의 분신 같아 그저 외로운 내가 둘로 나뉜 느낌이었다. 이 세상에 아이와 나만 외딴곳에 뚝 떨어져 있는 느낌. 어두워지면 불안한 마음도 커져 문단속을 수시로 하고, 혹시 모를 나쁜 일들을 상상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그제야 불이 켜진 듯 온 집안이 환해졌다. 남편은 세상과 나를 연결시켜주었고, 적막한 집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남편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했고, 불안하고 두려웠던 마음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남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고, 안정된 편안함을 느꼈다. 문제는 남편이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날이 거의 없었다는 거다.


지금은 남편이 없어도 전혀 외롭지 않다. 날마다 투닥거리면서도 서로가 없으면 허전해하는 두 아들이 있고, 항상 나를 주시하는 고양이 딸이 있다. 어디선가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면 어김없이 고양이 ‘봄이’가 날 지켜보고 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럽다. 두 아들과 딸이 있으니 남편이 없어도 외로울 틈이 없다. 혼자 있고 싶어 방문을 닫고 있으면 봄이가 낑낑거리거나 아들들이 들락날락거린다.


아이를 낳으면 의식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 애쓰지 않고서는 나만의 시간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어린이집을 보내기 전까지는 그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처음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건 필라테스를 시작하고부터다. 운동센터까지 걸어갔다 걸어오는 시간이 혼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운동을 하고 싶어 나가는 것인지 나가고 싶어 운동을 하러 가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혼자 마트만 가도 발걸음이 가볍고 코로 들어오는 공기가 상쾌(미세먼지와는 무관하게)하던 시절.


혼자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부터는 늘 그 시간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고부터는 정기적으로 보장된 혼자만의 시간이 있었고, 지금은 초등학생인 두 아들들 덕분에 월요일을 기껍게 맞이하게 되었다. 가족들과 즐거운 주말을 보냈더라도 월요일이 있음에 감사한다.


혼자만의 시간에 특별한 것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집안일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수영을 가거나 책을 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방만 보다 낮잠을 자기도 한다. 그럴 땐 자유시간을 아깝게 쓴 것 같아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먹방을 보거나 낮잠을 자는 시간이 꼭 헛된 것만은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먹방을 보는 것은 마음을 가볍게 해 주고, 낮잠을 자는 동안 부정적인 생각들을 환기시킬 수 있다.

예전의 나는 낮잠을 절대 잘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잠이 오지 않았거니와 낮잠을 자는 것이 게으르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에 뻗어 있었던 것이 대부분이라 죄책감도 들었으리라. 지금 나에게는 낮잠이 오직 휴식을 위한 목적만은 아니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 조금이라도 자고 일어나면 진흙탕 같은 부정적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하다 보니 혼자 운전하는 것도 좋아한다. 운전면허는 5년 전에 땄지만 본격적으로 운전을 하게 된 건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은 운전할 때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있다. 길치라 길을 헤매는 것은 다반사고 정해진 주차구역이 아니면 어디에 세워야 할지 몰라 몹시 당황한다. 그런 내가 연초에 혼자 운전을 해서 여행을 갔다 왔다.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는 끝판왕이 혼자 가는 여행이라고 생각했고, 혼자 여행을 갔다 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곳에 숙소를 잡아 놓고 가장 걱정되는 주차를 알아봤다. 후기를 읽어보니 차가 많아 주차를 다른 곳에 해야 할 수도 있단다. 다른 곳 어디? 어디에 어떻게? 전날부터 운전과 주차 걱정에 뒤척거리다 선잠을 자야 했다.

다음날 남편에게 주차를 못하면 바로 돌아오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출발했다. 혼자 한 시간 이상 운전을 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혼자 떠나는 여행도 처음이었기에 긴장이 많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잔뜩 굳어있던 근육에 스르르 힘이 풀렸다. 음악을 들으며 운전을 하는데 뭔지 모를 뭉클함이 가슴을 스쳐 눈물이 맺혔던 것도 같다. 노을 진 하늘이 너무 예뻐서였을까?


평일이라 다행히 주차 자리가 있었고, 긴장되고 얼떨떨한 마음으로 체크인을 했다.

숙소는 숨 막히도록 적막했고, 혼자 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방음이 잘 되지 않아 여기저기서 소음이 들려왔지만, 고요함을 침범하진 않았다.

숙소에만 있기 아쉬워 산책을 나섰지만,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음에도 어두워진 저녁이라 그곳까지 가 보지 못했다. 혼자 여행을 가겠다는 용기가 어두운 밤을 무서워하는 마음까지 가닿지는 못했던 것이다. 결국 불이 밝게 비치는 주변만 배회하다 숙소로 돌아와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그것도 맛집이 아닌 어디에나 있는 프랜차이즈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음식점을 기웃거렸지만, 혼자 들어가 포장을 할 용기조차 없었다. 낯선 곳이라 외부인으로 비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스스로 가족에게 떨어져 나왔으면서 혼자 떠난 여행에서 가족 생각이 제일 많이 났다. 너무 보고 싶었고 그리웠다. 항상 내 오른팔을 베고 자던 둘째가 없으니 허전해서 잠도 오지 않았고 외딴곳에서 혼자 자야 한다는 것이 조금 무섭기도 했다. 유튜브를 켜 놓은 채 외로움과 두려움을 살살 달랜 후에야 가까스로 잠에 들 수 있었다.


별로 한 것도 없이 허무하게 끝나버린 첫 여행. 그래도 돌아갈 집이 있다는 생각에 용기 있게 떠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이라 어색하고 긴장이 채 풀리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그날 이후로 운전에 자신감이 붙었고, 어설프게나마 자유의지를 실현할 수 있어서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배짱이 생겼다.


처음 여행을 갔다 온 지 몇 개월이 지난 요즘 다시 혼자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 에너지를 충전하고 나를 돌아볼 수 있다. 그 시간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도 얻는다.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편안한 안정감을 느낀다. 내가 있을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혼자만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혼자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지만 매번 그렇게 거창할 수 없다. 혼자 카페에 가서도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산책을 하거나 운전을 할 때도 온전히 혼자일 수 있다. 찜질방을 좋아해서 열기 가득한 방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앉아 있으면 옆에 사람들이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스마트폰도 스마트워치도 없는 곳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아이들 초등학교가 집에서 좀 멀어서 매일 데리러 가야 하는데 일부러 20분 정도 일찍 도착해 차 안에서 책을 읽는다. 비까지 내려주면 멋진 카페가 안 부럽다. 집에 혼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좁은 공간에서 느끼는 아늑함은 또 다르다.


남편은 혼자 있는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나와 다르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쉬는 날에도 통화하느라 바쁘고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어떨 땐 남편이 너무 앞만 보고 질주하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다. 외향적이든 내향적이든 혼자만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혼자만의 시간에서 자신을 좀 더 알아갈수록 지향하고자 하는 삶에 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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