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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이 Nov 27. 2022

전업주부의 자격지심

<나를 알아가는 글쓰기>

생산성. 그것이 문제다. 전업주부는 돈을 벌지 않으니 하루를 열심히 살아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사실 스스로는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크다.


남편은 전화해서 늘 뭐하냐는 말부터 묻는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한 말일 테지만 괜한 자격지심이 발동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집안일을 하거나 아이들을 챙기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뭐하냐는 말이 곱게 들리지 않는다.

나는 집안일을 완벽하게 하지도 못하고 요리를 잘하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아이들 교육에 열정적이지도 않다. 뭐하나 뛰어나게 잘하지도 않으면서 집에서 노는 사람? 일단은 내가 나를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이런 마음이 금주 전에는 더욱더 심했다.


사실 금주 전이나 지금이나 나의 양육과 살림을 하는 방식에 큰 변화는 없다. 다만 항상 깨어있으니 아이들을 방치하는 시간이 줄었고, 잘 시간이 다 되어 배고프다는 아이의 밥을 챙겨주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다. 아니 엄청 피곤하고 귀찮지만 해줄 수 있는 용의와 정신이 있다. 마른 체질의 아들이 배고프다고 했을 때 귀찮다는 이유로 밥을 챙겨주지 않는 것은 나의 죄책감만 가중시킨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나 자신을 합리화시킬 수 없다. 양육자가 아이 끼니를 챙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강박은 많은 엄마들이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금주를 한 후 저녁시간에는 거의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한다.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거나. 나를 위해 하는 일들은 나에게만 생산적이다. 나를 계발할 수 있는 시간들이지만 그만큼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이기에 이기적인 엄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죄책감이 든다.

하지만 남편은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실 때 자격지심이 들지 않을 것이다. 누가 봐도 생산적인 일을 했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다. 나 또한 남편이 열심히 일을 했으니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너무 잦다는 것이 불만이지만, 남편은 떳떳하게 자기만의 시간을 즐긴다. 그것이 너무 얄밉기도 하면서 부럽다.


어느 날은 남편이 나에게 이기적이라는 말을 했다. 발단은 하나밖에 없는 차를 누가 쓰느냐에서 시작되었다. 출퇴근이 불편하여 차가 필요했던 남편과 아이들 픽업과 수영을 가기 위해 차가 필요했던 나. 아이들을 픽업하는 것에 양보하는 건 몰라도 수영을 가기 위해 차를 놓고 가라고 했을 때는 경멸하듯 나를 쳐다보았다. 특히 여름방학 때 마찰이 심했다. 나에게는 일주일에 두 번 가는 수영이 유일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양보할 수 없었는데 남편은 힘들게 일하는 남편보다 어떻게 너의 운동이 더 중요하냐며 나를 비난했었다. 남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지만, 자신의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꼬웠다. 내가 돈을 벌지 않는 이상 남편의 일보다 중요한 것이 아이들 일 말고는 없는 것인가? 내가 돈을 벌더라도 남편보다 적게 번다면 남편의 일보다 중요한 가치를 가질 수 없을 듯하다. 돈은 우리 가족의 생활에 꼭 필요하지만, 나를 계발하는 시간은 가족에게 필수요소가 아니기에 난 영원히 죄책감과 자격지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그날 결국 내가 차를 썼지만,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회사까지 데리러 오라는 남편의 전화가 귀찮기도 했던 반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자격지심에 늦은 저녁 1시간 걸리는 거리라도 차를 끌고 나갈 수밖에.


어머님은 아들이 혼자서 일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신다. 그런 어머님이 이런 나의 행태를 아시면 뭐라고 하실까?

어머님은 자식들이 클 때까지 일을 하셨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형님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신다.

“일하면서 애들까지 키운다고 고생이 많다”

어머님이 형님을 위로하려 하신 말씀이 왜 나에게 죄책감을 들게 만드는지. 형님은 돈도 잘 벌고 아이들이 공부도 잘한다. 그 와중에 어머님, 아버님을 살뜰히 챙기시니 이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차별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정황들이 어쩔 수 없이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시댁에만 가면 더 작아지고 자격지심이 폭발하지만 난 형님처럼 할 수 없다. 형님처럼 시댁에서도 당당하고 싶지만 못하는 것을 인정하고 부족하고 모자란 며느리로 사는 것이 속 편하다. 거기서 생기는 자격지심은 내가 자초한 일이니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전업주부들이 나처럼 자격지심이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살림을 잘하지 못해도,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시댁을 잘 챙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긍심을 갖고 당당할 수 없을까?

마흔이 넘어서야 나의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요즘 만족도는 최상이지만, 나 혼자만의 즐거움과 행복으로 마음 한편이 무겁다. 떳떳하게 나만의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나만의 시간을 생각하며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전업주부로서는 턱없이 부족한 삶이지만 나 자신에게만큼은 최선인 삶을 살고 있다. 당장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주부로서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면 나를 성장시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떨까?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된다면 아이들에게도 좀 더 나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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