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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롬 Apr 02. 2024

나는 캥거루족입니다.

내 나이 35살 

나는 여전히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캥거루족이다. 


나에겐 한 가지 꿈이 있었다. 

결혼만큼은 내 힘으로 하자! 

넉넉지 않은 형편에 부모님께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버는 돈의 30% 이상은 반드시 저축하려고 노력했고 

2년 만에 2천만 원을 모았다. 

요즘 시대에 2천만 원으로 결혼하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에겐 생에 단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큰돈이었고 노력으로 얻은 귀한 결과물이었다. 


다행히 결혼할 때 양가에서 격식을 차리지 않길 원하셨고 

예단비, 값비싼 예물 없이 필요한 것만 갖춘 채

우리는 35만 원 19 평남 짓 되는 작은 월세집에서 소박하게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오랜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세탁기 냉장고 등 신혼살림 장만과 결혼식 비용에

2천만 원은 고스란히 투자되었다.

사실상 남은 돈 없이 제로베이스에서 새 살림을 시작했다. 

신랑도 20대 후반, 사회생활을 시작하자마자 결혼을 했기에 

모아둔 돈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둘 다 돈을 벌고 있어서 생활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신랑이 영업직이라 생활비를 거의 주지 않은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스스로 가정을 꾸려나갈 정도는 됐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고는 달라졌다... 


아이를 낳으면서 나는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오롯이 남편의 벌이로만 살아야 했다. 

걱정이었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생활비를 못 받으면 어떡하지.. 매일을 불안에 떨며 살았다. 


그때부터였다. 

캥거루족이 된 건... 


부족한 생활비를 채우기 위해 아이를 맡겼고

부족한 살림살이를 부모님의 도움으로 채워갔다. 

아이의 옷을 사야 하지만 돈이 없어 망설일 때 

"내 손자니까" 라며 대신 내주셨고

내 옷이 후줄근하다며 대신 사주셨다. 


내년이면 달라지겠지 

내년이면 내가 부모님께 은혜를 갚을 수 있겠지 기대해봤지만 

난 여전히 부모님의 도움을 거절하지 못하고 

죄송한 마음만 간직한 채 부모님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35살 나는 캥거루족이다. 

아무리 벌어도 달라지지 않는 형편에 

캥거루족을 벗어날 수가 없다. 


부모님의 주머니는 따뜻하지만 

커버린 내가 감당하기엔 부끄럽다.. 

그 주머니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더 낮아지고 작아진다. 


내가 이 주머니를 벗어나는 날이 올까 

제발.. 독립을 할 수 있는 내일이 오면 좋겠다. 

35살 난 캥거루족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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