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롬 Apr 02. 2024

깨버린 미래

띵동. 이른 아침부터 찾은 보험회사 고객센터. 

오래전에 가입해 놓은 10년 납짜리 종신보험 하나를 깼다. 

3년만 더 채우면 만기수익을 얻을 수 있었지만 이는 해지를 향한 내 의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망보험금 4600만 원. 결혼 전 먼 미래를 위해서 가입했던 상품이었다. 

아이를 낳은 이후부턴 줄곧 '내가 죽으면 아이에게 도움이 되겠지?'라는 위로를 안겨주곤 했다. 

이것저것 비교해봐도 그대로 유지하는 게 더 좋아 보였던 종신보험을 깬 건 다름 아닌 '오늘'때문이었다. 

약 10만 원의 한 달 납입금. 

아이보험에 내 보험, 생활비만으로도 빠듯한 오늘에겐 4600만 원짜리 먼 미래는 무거운 짐일 뿐이었다. 

내가 죽은 뒤, 아이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당장 오늘 그 보험료 때문에 아이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생활비의 압박이 올 때마다 납부 부담감이 몰려오며 당장 해지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뛰어올랐지만 '그래도 만기수익이 4천만 원이 넘는데 일단 놔두고 보험계약대출을 하자~'라며 버텼다.  

중간에 갚지 못하더라도 결국에 얻을 수익금이 더 크기 때문에... 란 생각이었다. 

하지만 7년이 지나고 결국 난, 먼 미래보다 오늘을 택했다. 

일단 오늘에 집중하자. 

해약금 중 계약 대출금을 빼고 나니 손에 남는 건 170만 원뿐... 

허탈했다. 계약 대출금으로 내가 썼으니... 라며 애써 위로해봤지만 마음 한구석에 새겨진 허탈감을 감출 순 없었다. 

내일, 한 달, 일 년, 10년 오지 않을지도 모를 미래를 잘 살기 위해 나는 오늘을 희생시킨다. 

당장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돈이 아깝다는 핑계로 참으며 예금, 적금, 보험을 들어놓는다. 

쓰지 못할 돈들만 쌓아 놓느라 당장 쓸 돈이 없다.

그렇게 먼 미래에 웃기 위해 오늘은 눈물을 삼킨다. 


미련해 보였다. 미래를 위해 마냥 오늘을 희생시키는 모습이 아둔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 더 똑똑하게 생각한 척하며 오늘을 택했다. 

하지만 그렇게 깨버린 미래 대신 오늘의 행복 얻을 수 있을까... 

사실 그것도 의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혼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