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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Jun 24. 2021

고기도 안 사주는 자식

엄마는 고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한 번씩 식사를 할 때면 육고기 음식점에 간다.

생선보다는 주로 돼지고기나 오리고기, 갈비탕 등 이런 종류를 선호한다.

특히 고기를 잡수실 때는 항상 상추에 싸서 드신다. 틀니라 잘 안 씹어진다고 하면서도 상추를 리필하면서까지 고기를 연신 싸 드시곤 한다. 

지난주에는 삼겹살을 먹었으니 이번주는 오리고기를 골랐다.

엄마의 취향을 잘 아는데, 이번에는 오리고기를 잡수시고 싶을 것이다.

식사를 하기 전 근교로 드라이브를 가서 한적한 공원에서 거닐며 산책을 좀 하자고 한다. 운동도 할 겸 배가 출출하기를 기다려 더욱 맛있게 식사를 하기 위함이다.

적당히 시간이 돼서 오리고기집에 들어갔고, 저만치 사람 없는 데로 골라 자리를 잡았다.

일단 1마리를 시킨 다음 고기가 충분히 익은 걸 확인한 후 엄마에게 “오케이!” 하며 싸인을 보냈다. 엄마는 “배고프네, 얼른 먹자.” 라고 말하며 쌈을 크게 싸서 입에 넣으셨다.

나도 흐뭇한 모습으로 열심히 먹기 시작하였는데 얼마 안가 1마리가 동이 났다.

그래서 추가로 1마리를 더 시켰다. 처음에는 양이 많은가 싶더니 엄마는 의외로 먹성이 좋으셨다.

“아따, 맛나네!“ 라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고기를 잘  드시는 걸 보고 새삼 힘없고 체구가 작은 노인이라고 음식마저 적게 드신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엄마가 말했다.

“요즘 고기를 통 못 먹었더니 맛나다. 고기도 한 번씩 먹어야 하는디.., 고기를 첨 먹는다.”

네? 

나는 그 순간 민망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주위를 들러보니 다행이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는 거 같았다. 

엄마는 평일과 토요일에는 주간보호센터에 가는데 거기서 저녁식사까지 하고 집에 오시니 주중에 어쩌다 들른 거 외에는 자식과 정기적으로 식사하는 날은 일요일뿐이다.

보호센터에서는 반찬이 어떻게 나오나 궁금하여 넌지시 여쭤보면 그곳에서는 주로 채식 위주로 식단을 짜서 제공하는 거 같았다. 물론 반찬투정 이런 것은 전혀 없으셨다. 어쨌든 나는 엄마를 만날 때마다 항상 고기를 먹었다.

지난주에도 삼겹살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 식사를 했다. 그런데 ‘고기를 통 못 먹었다니, 고기를 처음 먹는다니, 누가 들으면 도통 고기도 안 사드린 줄 알겠네’ 라고 억울한 생각마저 들려고 할 때, ‘아하, 그렇지!’ 라고 씨익 웃고 말았다.

졸지에 불효자라는 누명을 쓸 뻔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엄마가 단기기억장애가 있는 치매환자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엄마는 그날 낮에 있었던 일도 기억을 잘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해명 차 엄마에게 “저번주에 ○○ 부근에 있는 고추장삼겹살집에 가서 돼지고기를 먹었잖아요.“ 라고 말하니, 엄마는 ”아, 그랬냐?“ 라고 반문하며 당신도 민망한지 씨익 웃는다. 그리고 남은 고기가 아까워 2마리를 다 해치우고 후식으로 누룽지까지 다 잡수신 다음에 엄마는 ”배가 든든해야 잠도 잘 오고 좋다. 내일까지 배가 든든~~하겠다. “ 라며 흡족한 표정을 지으셨다.

엄마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오니 저 멀리 따스한 어둠이 엄마의 가냘픈 어깨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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