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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Jul 02. 2021

엄마의 생일 챙기기

예전에는 엄마가 다섯 손가락 생일을 잘도 기억하셨다. 뿐만 아니라 그 다섯 손가락 짝까지 다 챙기셨다.

내게도 매년 빠지지 않고 하얀 봉투에 돈을 넣어 연필로 또박또박 쓴 ‘생일 축하한다, 우리 아들 엄마가 사랑한다’ 라는 글귀와 함께 주셨다.

안 받겠다고 계속 손사래 치는 나와 기어코 쥐어주고야 말겠다는 엄마.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 끝에 나는 제 풀에 지쳐 그 봉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늘 자식과 그 짝의 생일을 그렇게 챙겨왔다. 엄마 집 안방에는 특정한 날짜에 여러 번 크게 동그라미를 치고 그 밑에 ○○의 생일이라고 진한 글씨로 메모를 한 달력이 걸려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달라졌다. 치매 증상이 나타난 언제부터인가 엄마의 기억은 깜박깜박하기 시작했고 자식의 생일을 놓치기 일쑤였다. 엄마는 그게 겸연쩍었던지 말씀하셨다.


“나이 칠십까지가 사람이지, 팔십부터는 사람도 아니어야.“


엄마는 탄식과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엊그제도 엄마 집에 들렀는데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정신없어 가지고 생일마다 다 잊어뿌렀다. 올해는 니 생일도 잊어뿔고, 유월 열이틀 날 새벽 5시에 낳았는데 올해는 잊어뿔고 돈도 안줬단 말이다.”

엄마는 무슨 잘못이라도 한 양 풀 죽은 목소리로 말하며 상당히 미안해하셨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되려 야단치듯이 말했다.

“아니, 이날 평생 기억을 해준 것만도 고마운데 무슨 그런 소리를 해요. 아휴! 제발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요!”

자식의 생일을 기억 못해 미안해하는 엄마를 보며 ‘정말, 못 말리시겠네’ 라는 마음과 함께 엄마의 낙(樂)이라면 낙인 자식 생일 챙기는 일을 놓치는 게 잦아져 되게 아쉬워하는 엄마의 모습에 안쓰럽고도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내 생일을 놓치다보니 나도 내 생일을 모르고 지나갈 때가 있었다. 우리 엄마 생일을 챙겨줄 외할머니는 돌아가신지 오래이다.

삶은 늘 그 자리에 머문 거 같으면서도 시간은 바삐 지나간다. 총총히 사라지는 시간과 다사다난한 생활에서 정작 기억할 일은 기억하지 못하고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될 일은 머리에 담아두고 사는 건 아닌지...,

문득 엄마의 한숨소리가 무겁게 들린다.



엄마가 왜 내 생일을 기억해야 하는가? 생일을 깜박하고 지나친 게 왜 미안해할 일인가? 정성껏 한 끼 밥을 대접하고 선물을 드려야 하는 건 엄마가 아니라 우리가 해야 될 일 아닌가?

아이나 배우자 생일은 케이크 불을 끄고 파티를 여는 등 호들갑을 떨며 요란스러운 이벤트를 벌이더니만 정작 나를 낳아준 부모에게는 그냥 건성건성 넘어가기 일쑤이지 않는가.

배우자 생일을 어쩌다 깜박하면 섭섭하다느니 어쩜 그럴 수 있냐며 온갖 투정을 부리는데, 그 잊혀지지 않는, 살을 째는 산고를 겪은 날을 기억해주지 않는다며 서운해하는 엄마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산고의 고통 뒤 꽃같이 태어난 자식을 보고 엄마는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뱀이 조 이삭을 먹는다는 궁핍했던 시절, 배를 움켜쥐며 한 바가지 물로 배를 채웠을 울 엄마, 생각하면 아리고 가슴 먹먹할 일이로다.

세월은 가파르게 흘러가고 엄마의 생신날 대신 기일날을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르는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바람이 그치지 않음을 한탄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라도 내 생일을 돌려줘야 되겠구나!

내가 태어난 날이 아니라 나를 낳은 엄마의 출산일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날로 말이다. 내가 태어난 날에 대해 기억을 하려 발싸심을 하는 엄마의 수고로움을 내가 대신 덜어줘야 할 차례이다. 뒤늦은 깨달음에 나도 모르게 빙긋이 웃음이 나왔다.

그럼에도 엄마는 내년에도 내 생일을 기억하려 애쓰실 것이고, 달력 날짜의 동그라미는 점점 커지고 까맣게 진해지며 여러 번 덧칠이 되어져 갈 것이다. 엄마의 숙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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