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사실 아파"

27살 대기업 직장인, 마음의 병 치유기 - 마지막화

by 오터

첫 병원 진료에서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했다.

“가족들에게 힘든 걸 말해본 적 있나요?”

“아니요. 가족들은, 특히 부모님은 절대 모르셔야 해요.”


한국에는 K-장녀라는 말이 있다. 나 또한 그랬다. 그동안 연재하면서도 쭉 언급했던 ‘실망시키지 않는 딸의 모습’이었다.

든든한 모습으로 24살에 대기업에 입사해 인정받고 지내는 딸의 모습은

갱년기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아빠도, 항상 걱정이 많던 엄마도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랬던 딸이 2년 만에 우울증, 공황장애, 불면증 쓰리 콤보라니.

지구 끝까지 비밀로 해야만 했다.


하지만, 달라진 딸의 모습은 부모님을 속이기에 역부족이었다.

처음에는 젖살이 빠진 건 지 우려하던 딸의 몸무게는 5KG가 넘게 빠졌고,

사람들 속에 있는 걸 가장 좋아하던 아이는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 가면 입을 다물었다.

사실 난 고향에 가면 가족들을 모아 식사 대접하는 걸 좋아했다. 단돈 10만 원으로 다 같이 모여 근황을 공유하는 일도,

예쁜 립스틱을 바른 할머니가 외출을 하는 모습이 어찌 보면 내가 사회생활을 이어 나가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처음 공황장애가 발병했을 때는 단지 완전히 낯선 사람들 속에 섞여있는 게 힘들었다.

그런데 증상이 더더욱 심해지자 친구들 속에 앉아있는 게, 더 나아가 가족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하는 순간조차

숨이 막혀 쓰러질 것 같았다.


너무나도 들키기 싫은 모습이었다. 내가 아픈 건 내가 해결하면 됐고, 누구에게도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씩 주최하던 가족 모임을 세 달에 한 번씩으로 줄였고, 그 가족 모임 중에도 입을 여는 순간이 드물어졌다.

할머니는 항상 “얼굴이 틀렸다.”며 걱정하셨다.


두 달 전, 설 연휴에 엄마가 문득 물어봤다.

“힘든 일이 있니?”

그냥 이유는 모르겠다. 더 이상 숨길 힘도 없었고, 숨기면 다른 곳이 아픈지 캐물어볼 것 같았다.


“사실 나 정신과에 다녀. 공황장애랑 불면증이래.”

이 순간에도 거짓말을 했다. 차마 우울증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걸 봤으나 못 본 척했다.

같이 있던 동생은 아무렇지 않은 척 “요즘 젊은 사람들 대부분 그렇대. 약 잘 먹고 병원 잘 다녀.”

“그래, 고맙다.” 는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왔다.

설거지를 하며 엄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집에 들어왔다. 호탕한 아빠답게 “나 왔다~” 하며 귀가를 했다.

“조용히 좀 해! 딸 병원 다닌대.” 엄마가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화를 냈다.


아빠는 놀랐지만 “보약 해 먹여야겠네.”라는 말과 함께 “괜찮아.” 한 마디를 남겼다.

아빠는 딸이 힘들어할 때마다 보약 해 먹으라며 용돈을 보내왔다.

아빠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였다.


엄마한테 말했다.

“병원 가니까 10대 애들부터 50대 아줌마, 아저씨들까지 환자 나이대도 다양하더라. 약 잘 먹고 안 죽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애정 표현 하나 못 하는 무뚝뚝한 장녀의 위로였다.

keyword
이전 09화브런치를 통한 극복 여정 공유하기